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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17일(목) ㅣ
  6·25 참전 전몰용사 대우이래도 되나
성명 :이문학 (munaki@hanmail.net) 작성일 : 2017-08-02
6·25 참전 전몰용사 대우이래도 되나

                                                              이 문 학 /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필자의 숙부(생존 시 88세, 당시 하사, 전투병)는 지난 1929년 5월 7일생(생존 시 88세) 출생해 지난 1952년 6월 5일 대한민국 육군으로 입대 후 6·25 전쟁 중이었던 지난 1953년 6월 22일 강원도 양구군 수립지구 전투에서 전사(戰死)했다.
고인은 당시 고단하고 극빈하였던 가정의 사정으로 초등학교 문전에도 가보지 못하고 그중 그의 맏형은 아사(餓死)하여 가사를 도맡아야 할 난감한 처지였음에도 면사무소와 지서 직원 및 동네 이장이 전해준 입대통지서를 전달받고 6·25전란 중인 지난 1952년 6월 5일 제1훈련소에 입소했다.
당시 경상북도 봉화에서 군용트럭으로 안동을 거쳐 포항에서 미(美) 해군함을 이용해 약 300여 명의 신병이 함께 승선해 한국군 장교의 인솔로 제1훈련소(제주도)에 입소를 했다고 전해 듣고 있다.
당시 신병들의 식사량은 겨우 한 끼가 한 숱 가락 정도로 때워야 할 형편으로 허기져 고구마 뿌리 캐먹고 구정물 통을 뒤져 먹을 정도로 너무 궁핍하고 열악한 훈련소 시설과 여건에서 훈련을 마쳤다 한다.
당시 전황을 기록으로 살펴보면,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의 제1차 공세로 인해 아군의 북진이 저지되고, 이어서 제2차 공세와 제3차 공세(신정 공세)에 밀린 아군은 1951년 1월 중순 평택~제천~단양~삼척을 연결하는 선까지 철수를 했다 한다. 이에 아군은 다시 1951년 1월 또 다시 반격작전을 전개해 현재의 휴전선 부근까지 진격했으나, 정전 회담에 따라 전선이 교착됨으로써 피아간 고지 쟁탈전이 치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고인은 지난 1952년 11월 14일 2보충대(춘천지구 수용대)로 전속되어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전란 통에 복무를 하다 다시 같은 해 11월 7사단 8연대로 전속되어 낮에는 중공군과 북한군에 밀리고 야간에는 미군이 조명탄을 쏴 올려 다시 북진을 감행하는 행군을 하였던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고인은 입대 전 평소 생떼 같았던 성격으로 남한테 뒤지지 않는 성격이었으나 적진의 고지는 높아 아군의 동선 및 상황 파악이 수월했으나, 아군의 진지는 대체로 고지가 낮아 적군의 이동 상황을 파악하는데 매우 어려운 실정이어서 고인이 소속된 부대의 전우들의 피해가 상당했다는 참전자들의 목격담에서 쉽게 확인 할 수 있었다.
고인은 다시 같은 해 11월 24일부로 11중대로 배속되어 6·25동란 중 전투에 전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였다고 판단이 된다. 당시 휴전 협정을 불과 7일 앞두고 중공군 135사단은 대대급 규모로 7사단이 지키고 있던 425고지를 공격해 왔다고 한다. 남한 전력의 30%를 생산하던 화천 발전소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당시 7사단의 중대장 김 모 대위는 부하 160여명과 함께 백병전을 벌여 중공군 950여 명을 사살하며 고지를 지켜냈다는 기록도 있다.
고인도 1950년 10월 18일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여 김일성대학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는데 공로를 세웠다는 제7보병사단 8연대 소속으로 최전방에서 맹렬히 전투 중 지난 1953년 6월 22일 강원도 양구군 수립지구(미  수복지구) 중동부 전선의 938고지는 휴전선을 앞두고 한 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치고 밀리고 치고 밀리고 가장 치열했던 ‘938고지에서 적의 포탄 낙하로 인해 흉부 파편창(破片創)’으로 피 끓는 당시 24세의 꽃다운 청춘에 전장 터에서 몸을 바치고 산화했다.
고인은 태백산하 산간오지 벽촌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변변한 논밭 한 떼기 없이 어렵게 화전 밭 일구며 고단한 삶을 유지하며 극빈한 빈농의 2남으로 출생한 후 23세에 군대에 입대해 불과 1년여 만에 어머님 아버님께(소인의 할머니 할아버지) 안부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그 이듬해 아직 만물의 잎이 피기전인 이른 봄 재봉다리가 되어 면사무소의 직원에 의해 고인의 초막집으로 전달이 됐다.
고인의 가정은 풍지 박산이 나고 고인의 맏형은 양식이 없어 아사(餓死)하고 숙모는 가출하고 가사의 비탄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후 군인 유가족증이 수여되고 어렵사리 고난의 한 많은 세월을 이어 오다가 고인의 아버님과 어머님(소인의 할아버지 할머니)과 고인의 형제들이 생전에 고인에 대해 변변히 생일이나 기일에 제사 한번 올려 드리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한 평생 한을 품고 사시다 차마 눈을 감지 못하시고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한데 그 전란이 발발한지 어언 67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조카인 필자기 환갑을 넘는 나이가 되도록 당시 전시 상훈법에 의한 ‘가 수요증’이라는 것과 재봉다리(고인의 화장분)를 전해 받은 후 여태까지 훈장은커녕 어느 누구의 참전 용사증이나 호국 영웅기장 하나 수여하지 않는 것이 현 대한민국의 보훈실정이다.
지난 2011년 10월 1일 국방부는, 6·25 전쟁 참전자 중 서훈 누락자 추가 서훈 계획을 공고하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공적을 세우고도 무공훈장은 받지 못한 자에게 서훈함으로서 수훈자들의 자긍심과 명예를 고취하고 국민의 호국정신을 함양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으나 필자의 고인에 대한 서훈 신청을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서슬 시퍼런 역대 정권의 갑(甲)질이자 새 정부에서 청산하고자 하는 적폐(積幣)의 하나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2007년 국정감사 후속조치로 지속적인 유가족 찾기 시행지시 및 국가 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0303호 및 6·25 전쟁 전사자 유해의 발굴에 관한 법률 제8924호 및 행안부  6·25 전사자 유가족 찾기 협조사항 통보 등을 근거해 그간 육군본부에서 ‘선배전우 명예선양 활동’의 일환으로 “6·25전사자 및 무공훈장 유가족 찾아주기”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선배전우 명예선양활동’을 위한 유가족 무공훈장 대상자 명단을 살펴보면, 6·25참전 당시 전사자, 명예제대, 만기제대, 실종, 전공상 전사, 전공상 전역, 불명, 의가사, 병력 면제자, 순직자 등 전 참전용사에 대해 죄다 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소인은 어렵게 사정사정 해가며 관계 부서에 고인의 병적 기록을 찾고 찾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사를 했는지를 집안에서 전혀 모르고 있다가 전사자 통지서, 전사자 화장 보고서 등을 통해 명백한 6·25참전 전사자임이 확실하고 서훈 누락자로 판명되었음에도 추서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다.
정당한 사유 없이 실종자 등에 대해서도 수여하면서 전쟁 중에 전사한 참전 용사가 확실하고 분명함에도 터무니없이 추서거부를 위한 공적심의라는 것을 통해 “개인적인 전투 공적이 없다.”며 거절하고 있다. 이는 또 하나의 적폐이자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팽개쳐 놓고 있었던 역대정권의 막강한 갑(甲)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육군본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봉화군에만 283명이라는 6·25참전용사 무공훈장이 수여 대상으로 확정되어 유가족 찾기를 하고 있었다. 또 전선에서 전사자 유골을 찾아 DNA 검사를 통해 유족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으면서도 후손이 명확한 자료(전사통지서, 고인의 병적증명서, 제적등본, 육군 기록정보 관리단 회보서, 육군본부 전사자 병적확인 회보서, 전사자 화장 보고서, 군인유가족 기장수여 증서 사본, 유가족 증명서 사본, 사단장 위로서신, 연대장 위로서신, 육군본부 민원회신서, 육군본부 민원회신 훈장기록 확인 회보서, 춘양면장 육군참모총장 전사 급여 관련 통지서 사본, 6·25전사자 추가서훈 민원회신서, 육군본부 ‘선배전우 명예선양활동’을 위한 업무협조사항 공문)를 제출해도 묵묵부답이다.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같이 조국의 부름을 받고 구국전선에서 몸 바쳐 조국과 민족을 지키시다 호국영령으로 산화하신 고인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무려67년이란 세월이 눈물겹게 지났지만 뒤 늦게나마 지하에 계신 고인에게 자긍심과 명예를 드리고 전쟁영웅(?)에 대한 마지막 최소한의 배려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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