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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23일(수) ㅣ
  호주 한복판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다
성명 :안재붕 (nannaya7474@naver.com) 작성일 : 2018-04-21
23살 때, 나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고 했던가. 나의 첫사랑은 한국을 떠나 호주까지 갔다. 합격한 군대
도 제쳐두고 어학연수를 간다는 여자 친구를 따라 무작정 호주로 갔던 것이다. 여자 친구가 호주로
간 뒤, 1주일동안 호주로 꼭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말도 안
되는 사유로 부모님에게 꼭 가야겠다는 통보만 남기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나는 생
각했다. “내가 정말 미쳤구나.”
하지만 사람은 미쳐야 성장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여자 친구랑은 얼마 못가 헤어졌지만, 그렇
게 미친 듯이 간 워킹홀리데이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마트 청소부터 초등학생들 보모
아르바이트까지 대학에서는 해보지 못할 일들도 해보고, 내가 원하던 스포츠 마케팅 업무를 프로 야
구팀에서 1년 동안 해보는 등 나 자신의 성장 곡선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수직 상승이었다. 외적
으로도 많이 성장하였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내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도 많았다.
일을 하게 된 프로 야구팀에서 여러 또래 친구들을 만났고 미국인 동갑내기 친구 두 명과 친해져 호
주의 아웃백으로 일주일간 배낭여행을 가게 되었다. 군대에서 혹한기 숙영 훈련을 하는 것처럼 흙바
닥에 텐트를 치고 빵과 잼을 발라 먹으며 근처 해수욕장에서 몸을 씻곤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텐트
를 나왔는데 캥거루가 100미터 앞에서 누워 자고 있고, 차를 몰고 가다가 타조가 갑자기 날아들어
사고가 날 뻔한 위험도 있었지만 매일 매일 새로운 경험이라 일분일초가 흥미진진했다.
어느 날, 날이 어둑해져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매우 협소한 지역에 텐트를 치게 되었다. 텐트 안
에 간이 침상 두 개를 치고, 두 침상 사이의 바닥에 내가 눕게 되었다. 몸만 그 사이 공간에 누울 수
있고 팔다리는 간이 침상 밑에 넣어야 할 정도로 협소하였다. 미국인 친구들은 미안한지 나한테 연
신 괜찮으냐고 물어봤고, 나는 그들의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유머로 답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괜찮
아, 그냥 장애인이 된 기분이야.”
나는 그들의 웃음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휑하고 차가운 침묵만 나돌았다. 잠시 후, 그 차가움에 무
거움까지 한껏 얹은 목소리로 한 친구가 말했다.
“장애인?”
“응, 지금 팔다리를 쓸 수 없거든. 장애인이 되어버렸어.”
한 번 더 웃기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가 화를 참으면서 말했다.

“You don’t make fun of disabled. (장애인으로 농담하는 거 아니다.)”

그 순간, 부끄러움이 온 몸을 뒤덮어 나는 마비가 된 것 같이 눈을 뜰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현재 육군 병장이다. 호주를 가느라 포기했던 군대를 28살에 접하게 되었고, 89년생인 나는 군
대에서 처음으로 96년, 97년생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신기함 반, 놀라움 반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아마 그들도 나를 똑같이 느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입대한 나로서는 가끔 ‘어
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욕설이 섞인 장난을 친다. 하지만 그것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친근함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잃어버렸던 순수함을
느낀다.
그러나 가끔 “장애인이냐?” “장애인같이 못 하네.” 등등 장애인을 언급하면서 놀리는 경우가 부지
기수이다. 같은 나이대의 미국인 친구들은 ‘장애인’을 같은 인간이자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반
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비하와 놀림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무런 필터링 없이 자신의 생각과
관념을 내뱉는 어린 친구들의 언어 사용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 미성숙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3월 28일, 한국은행은 한국이 올해 국민총소득 3만불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 발표하였다. 3만불 시
대를 맞아 사회복지와 환경 등에 신경 쓸 여력이 많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민의식은 사회
복지 등의 세금만으로는 3만불짜리로 만들기 어렵다. 우리 스스로가 내적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그
리고 그것을 우리의 다음 세대가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해야 된다. 개개인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진정으로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 5년 후, 10년 후의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단
호하게 “장애인으로 농담하는 거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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