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도 제2부> 3. 히바의 노예시장
천년의 도읍을 지키기 위해 이중으로 두껍고 높게 축조한 히바의 성벽. 짧고 부드러운 짚을 넣어 말린 흙벽돌로 채워져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의 이슬람 신학교였던 ‘아민 칸 마드라사’가 지금은 호텔로도 사용되고 있다.
히바에 밤이 오면 원한에 사무친 노예귀신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저주받을 노예시장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대로 남아 후대로 전달되어 왔고 처절했던 현장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히바는 실크로드 교역의 거점으로 번성했다. 물자가 풍부했고 그 때문에 항상 외적의 침공에 위협을 받았다. 히바는 도읍을 지키기 위해 이중의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다. 그러나 그 안쪽 성내에는 번영과 쇠퇴의 역사가 반복되어왔다. 공포의 노예시장이 존재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낙타를 탄 대상들은 볼 수 없고 오가는 여행객들만이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메우고 있다. 히바의 내성인 ‘이찬 칼라’는 이미 기원전 4세기 무렵 건설되었다. 성벽은 짧고 부드러운 짚을 넣어 말린 흙벽돌로 채워져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몇 번이고 고쳐지면서 주위에는 물을 채운 참호도 생겼다. 성벽은 까마득하게 높다. 이 장치는 외침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노예시장의 개설로 막대한 부를 챙긴 역대 칸들이 내부에서 성 밖으로 노예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히바성의 동문을 찾았다. 다른 이름으로 ‘노예의 문’으로도 불린다. 칸이 궁에서 이 문까지 나와서 죄수들에게 형벌을 선고했으므로 ‘왕의 문’이라고도 했다. 역대의 칸들은 공포정치를 했었다.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이나 고문을 시행했다. 예를 들어 당시에는 엄하게 금지하고 있던 흡연과 음주의 죄를 범한 자들은 입을 귀까지 찢는 형벌을 가했다. 그들이 마치 언제나 히죽히죽 웃는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도록 했다. 죄가 중한 죄인들은 공개처형했기 때문에 출혈사가 많았다고 한다.

히바는 중앙아시아에서 최대의 노예시장이 있었던 도시로 알려져 왔다. 역대 히바의 칸은 그들의 부를 키워주는 중요한 무역물자인 노예를 보충하기 위해 주변의 마을을 습격해서 주민이나 여행자들을 잡아들여 충당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동문의 외벽에는 엄청난 수의 노예가 족쇄에 묶여 있었고 노예상인들이 금품이나 가축들과 물물교환의 방법으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히바의 번영은 결국 노예들의 피와 땀에 의해 구축됐다고 볼 수도 있다. 히바를 키운 바탕이 된 노예시장이었으나 한편에서는 히바 칸국의 멸망과 러시아의 속국이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것이 중앙아시아 일대가 최근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단서가 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19세기 초순부터 많은 러시아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히바는 이들을 잡아 노예로 팔아넘겼다. 러시아인 노예 해방을 구실로 군대를 파견해 온 러시아는 1873년, 만3천 명의 병력을 보내 공략함으로써 결국 히바를 전면 항복시켰다. 베일에 싸였던 공포의 오아시스도시는 실체가 드러났고 노예시장도 없어졌다. 당시 파견됐던 러시아 장교 등의 보고에 의하면 러시아인 노예는 3천 명 정도였고 그 외에도 약 3만 명 정도의 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건장한 러시아인 남자노예는 낙타 4마리에 팔렸다고 한다. 노예들은 카라코람 사막을 넘어온 투르크족이나 초원의 카자흐족에게 팔렸다.

잔혹한 역사의 현장인 그곳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아케이드 회랑처럼 길게 축조된 히바의 동문에는 일용잡화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같은 자리에 불과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철거렁 거리는 쇠사슬에 묶이고 연결된 노예들이 팔렸을 것이다. 노예로 끌려와 혹독한 노동과 죽음을 맞아야 했던 수많은 슬픈 애환이 담겨있는 장소에 서있으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사람들의 왕래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냉기가 느껴진다. 그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노예시장으로 끌려와 마치 물건처럼 분류되어 남녀 할 것 없이 비참한 노예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노예들이 수용되어 있던 작은 공간에는 쇠창살이 처져 있고 얼룩진 벽에는 오랜 원한의 탄식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노예들은 팔려가기 전에도 가혹한 육체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거대한 마드라사(신학교)나 사원의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끌려온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칸이 피살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어졌으나 지금은 호텔로 사용하는 건물도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의 이슬람 신학교였던 ‘아민 칸 마드라사’의 변신이다. 많을 때는 99명의 기숙학생이 있었던 신학교가 35년 전부터는 여행자를 위해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과연 이 호텔에서 숙박을 해보면 어떨까. 밤이 되어 꿈속으로 원한에 사무친 노예귀신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아니지, 노예가 된 나를 구하려고 백마 타고 온 아름다운 히바의 공주, 그 말을 함께 타고 높은 성벽을 뛰어 넘는 꿈.                    

글·사진: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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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 : 2012년 04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