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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명장이다] <13> 귀금속 명장 박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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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1 04:55:03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소치올림픽 당시 '김연아 국민금메달' 설계·제작해 뿌듯
 
박정열 귀금속 명장이 수십 년 된 자신이 만든 도구를 이용해 보석을 가공하고 있다.
"반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금속을 불에 녹이고, 수백 수천 번의 망치질과 끌질, 그리고 오랜 시간 광내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박정열(61) 씨는 40여 년간 금은 세공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판 귀금속 명장이다. 박 명장은 오늘도 공방 '진영사'(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 대구패션주얼리전문타운)에서 보석 세공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직업 진로교육을 위해 학교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아름다운 보석에 맘 뺏겨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박 명장은 17세 때 지인의 소개로 대구의 한 보석공방에서 일하게 된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은 어린 박 명장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두드리고, 연마하고, 줄질하는 귀금속 가공을 보는 순간 '아! 저거다' 싶었어요."

당시 체계적으로 귀금속 가공을 가르치는 곳은 없었다. 지금의 학원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어깨너머로, 내 감으로, 저건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면서 배워야 했다. "힘들었지만 고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니 재미있고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차곡차곡 기술을 익혀가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남보다 빨리 익힌 기술로 자수정 반지를 만들어 형수에게 선물했다. 박 명장은 아직도 그 반지를 가지고 있다. "형수가 일찍 유명을 달리했지만 의미가 있는 반지라 자신이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기술을 익힌 박 명장은 다른 공방으로 스카우트돼 5년쯤 일하다 공방을 차렸다. "기뻤지요. 그러나 공방은 기술만 가지고는 안됐어요. 마케팅과 경영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군 제대 후 하청일을 하면서 대회에 출전했다. "내 기술의 수준이 궁금했어요." 박 명장은 1992년 처음 출전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내 기술도 괜찮네'라는 생각과 함께 '나보다 잘하는 이들도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더 노력하자. 그 기능대회는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어 각종 국내 대회는 물론 일본과 유럽 대회에 출전해 입선하는 등 많은 경험을 쌓았다. "외국 트렌드를 읽었고,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명장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7전8기 끝에 명장

박 명장은 기술`디자인 연구와 함께 특허와 실용신안 등을 통해 공정 개선, 품질 향상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대한민국 최고가 되겠다며 기술을 연마한 지 30여 년이 흐른 2008년, 박 명장은 기능인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귀금속 명장에 선정됐다. 10여 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다.

"7전 8기 끝에 명장이 됐습니다. 명장이라는 것은 최고의 기술인에게 부여되는 자격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간단히 생각하고 섣불리 명장에 도전했다가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심사위원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내 탓'으로 돌렸습니다. 만약 그때 심사위원을 탓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지요."

박 명장의 노력은 그의 손가락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군데군데 침에 찔리고 망치에 맞아 검게 변하는 등 지난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다. 손가락 방향도 휘었다. "영광스러운 계급장입니다. 그러나 작업이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습니다"라며 웃어넘겼다.

그의 작업장에는 자신이 수십 년에 걸쳐 금속을 자르던 집게와 가위 등이 널브러져 있다. 장비들 역시 오랜 세월을 견디다 못해 날카롭던 끝이 다 무뎌져 버렸다. 직접 만든 도구라 애착도 가고 오래 세월 손에 익은 것이라 아직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박 명장은 기계를 보며 "나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나만의 노하우라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영감에 따라 디자인이 나오지요. 열심히 작업하다 보면 작품에 혼이 실리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추억을 담은 작품 제작

박 명장은 남들과 똑같은 것을 거부한다. '1품(品) 1디자인'을 원칙으로 한다. 반지 하나를 만들 때에도 생일이나 기념일, 또는 추억할 만한 의미를 담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다. 스토리가 있는 주얼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가게에는 단골손님이 많다. "'스토리가 있는 반지'를 만드는 것이지요. 기념일 등을 알려주면서 반지나 목걸이를 주문제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지, 귀고리에 의미를 담아 제작하면 소비자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박 명장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주제로 삼아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담아보려 노력한다.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주고,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그리고 메말라가는 우리네 마음을 풍요롭고 밝게 만드는 그런 모습을 담아보려 애씁니다"고 했다.

박 명장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014년 러시아 소치 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놓쳤을 때 네티즌 4만3천여 명의 마음을 담은 '국민메달'을 만들어 걸어줬는데, 제가 그 메달을 설계하고 만들었습니다"며 으쓱해 했다.

박 명장은 우리나라가 수년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귀금속 부문에서 세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지만 수출 1위를 유럽에 빼앗긴 점을 안타까워했다. 유럽 디자이너들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새로운 디자인들을 개발하고 있지만 국내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하나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공장에서처럼 빨리 만드는 것에 치중해 세계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로 키우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기술과 경험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대한민국 최고의 귀금속 세공 기술을 가진 박 명장은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가공 기술은 세계 으뜸입니다. 국제기능대회에서 매년 거르지 않고 메달을 따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하지만 귀금속 수출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전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 명장은 끊어진 역사를 다시 잇고 싶어 한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우리가 국제무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며 "제가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들을 모두 후배들에게 물려 줄 것입니다. 그것이 이어지고 이어지면 새로운 역사가 되겠지요.”

박 명장은 금은 세공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공예의 맥이 끊긴 이유도 있지만 기능인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와 정부의 지원 부족, 그리고 땀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기능인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고 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 "뛰어난 기술은 기능인이 우대받는 사회에서 나오고 그래야 세계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글사진 최재수 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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