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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29일(수) ㅣ
[세계의 창]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새겨보는 ‘자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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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1 04:55:03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모든 정부 내세운 ‘대학 자율권 확대’

재정지원 앞세워 획일적 평가 시도

탄핵 국면 기업 출연금 두고 논란

현실적 경험상 진정한 ‘자발’아냐

예전에 독일에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주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사는 곳 주변의 경치를 그리는 숙제를 내주었는데, 며칠 후 이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불려가서 아이 교육을 망치려 하느냐고 야단맞았다는 이야기다. 사연은 이렇다. 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하늘은 파랗게, 산은 초록색으로 칠하라고 자상하게 가르쳐서 학교로 보냈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색을 정해주면 안 돼요. 아이가 알아서 그리게 내버려두세요. 하늘이 노란색이건 산이 검은색이건 상관없어요”라는 것이었다. 정답 맞히기에 익숙한 한국식 교육으로 볼 때는 노란 하늘은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창의적 관찰이 필요한 어린아이에게는 이런 식의 강요와 지시는 금물인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거의 모든 고등학교가 주간도 아닌 밤늦은 시각까지 학생들을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잡아두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는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하고 있고, 학부모들은 이를 당연시할 뿐 아니라 기숙학교의 경우 심지어 “왜 자정 넘어까지 안 시키냐?”고 학교 측에 항의하는 사례까지 본 적이 있다. ‘야자’라는 약칭의 이 야간 자율학습은 대부분 어른들의 욕심과 자기만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억지로 이에 응하는 학생들에게 ‘야자’란 싫어도 해야만 하는 지겨운 ‘타율’ 학습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중에 적지 않은 학생들은 ‘야자’의 효과가 정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같은 반 몇 명 우수생의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해 들러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철든 나이 때부터 정년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교육현장에서 느낀 바로는 역대 정권마다 교육 개혁을 들고나왔지만 거의 대부분이 개혁이 아닌 개악으로 끝났다. 특히 그간 모든 정부가 ‘대학의 자율권 확대와 보장’을 외쳤으나 점점 더 획일화된 지표 평가 제도를 통해 자율은커녕 수많은 대학을 아무 특색도 없이 한 줄로만 세우는 결과를 만들었다. 재정 지원이라는 당근 겸 채찍에 맞출 수밖에 없다 보니 대학 행정도 본부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우리 교수는 스스로 무언가를 책임지고 하기보다는 정부기관과 학교 본부의 평가지표에 따라 성과를 내려고 학생들에게 득이 되는지 아닌지 따질 것도 없이 연구와 교육, 그리고 순수한 봉사에 이르기까지 그 평가점수에 주로 관심을 기울여오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된다. 학점 인플레를 막는다는 정부의 대학 평가 지침 때문에 거의 모든 대학이 상대평가를 도입하여 의무화함으로써 각종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그 한 예다.

우리의 교육 제도는 여건과 문화의 차이를 따지지 않고 미국식을 그대로 도입하다 보니 무늬만 미국식인 것이 꽤 된다. 미국의 대학들은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되 세세한 학사행정상 간섭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중앙정부는 대학 설립과 폐지 권한이 없으며 주정부가 인가 기준을 정하고 평가와 인준은 지역별 대학협의회가 그야말로 자율적으로 한다.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이 잘 구분되어 있으며 학교 정책과 교직원 인사 복지 방식도 대학마다, 전공마다 다르게 한다.

자율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학생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경험상 또 현실적으로 그게 진정한 자율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대통령 탄핵 국면 중에도 무슨 재단의 출연금이 자발적으로 낸 것이냐 겁박 때문에 낸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인 것도 ‘한국적 자율’의 모호성 때문이다. 수십 년간 정부기관이 또 지도급 인사들이 ‘자율’이란 말을 편리하게 또 왜곡하여 쓰면서 정치가 아닌 ‘통치’를 하다 보니 관치 금융, 언론 사찰, 관제 데모, 인사 개입이란 말이 공공연히 들린다. ‘왜곡된 자율’은 후세대에 정신건강상 명백한 해가 된다. 각급 교육현장에서부터 기관장에게 그리고 일선 교직원들에게 진정한 교육과 학문의 자율권을 줘보자. 권한과 책임을 엄격히 따지는 ‘참다운 자율’이라는 민주 교육을 잘 받게 될 것이다. 이러면 앞으로 어떤 대통령도 ‘기업의 자발적인 협찬’을 도모조차 못할 것이요, ‘제왕적’이니 ‘비선’이니 하는 말도 없어질 것이다. 북한과는 다른 대한민국 아닌가?

김우중 대구가톨릭대 중남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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