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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26일(목) ㅣ
[매일 파워 인터뷰] 대구서 변호사 개업 이기광 전 울산지방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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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00:05:00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재판정서 마음의 상처 많이 봐, 이겨야 할 사건 맡고 싶어"
 
중증장애의 시련을 딛고 '넉넉한 인품의 판사'라는 평을 받고 있는 이기광(64) 전 울산지방법원장이 올해 2월, 32년 법관생활을 마치고, 최근 대구에서 변호사로 새 삶을 시작했다. 박노익 대기자 noik@msnet.co.kr
 
농약중독 사고 전인 대구고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기광 법원장. 맨 뒤줄 가운데 노태율 동기. 노 씨는 몸이 불편한 이 법원장을 업어서 병원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었다.
‘넉넉한 인품의 판사’로 알려진 이기광(64) 전 울산지방법원장이 만 32년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최근 대구에서 변호사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법관생활 중 26년을 대구지법과 대구고법에서 일했고, 김천에서 근무한 2년 6개월을 합치면 29년 가까운 시간을 대구경북에서 보낸 만큼, 대구에서의 변호사 개업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판사로서의 삶은 내 인생의 엄청난 행운이었고, 큰 보람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지나치게 오랫동안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부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고,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각오와 감사의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하지만 이 법원장의 ‘행운’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시골출신이라는…’ ‘중증장애인이라는…’ ‘지방대학 졸업생이라는…’ 불안감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남보다 더 열심히 더 잘하려는 노력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는데, 나의 이런 노력이 어느 정도의 결실을 가져오고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항상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 이 법원장의 솔직한 토로였다.

온갖 좌절과 시련을 포기의 핑계가 아닌 인생의 디딤돌로 삼아온 이 법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이 법원장은 1955년 경북 군위군 효령면 병수리에서 6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대부분 농촌이 그랬던 것처럼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매일매일, 계절마다, 해마다 하는 일이 똑같았다. 1960년대 중`후반 농촌은 변화와 역동성이라곤 찾기 어려웠던 그런 시기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소를 끌고 풀을 먹이러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되니까, 망태기보다는 지게를 지고 소 풀을 먹이러 가는 것이 더 어른스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게를 만들어 달라고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지게를 지면서 이 법원장은 여섯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첫째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거운 지게를 잘못된 방향으로 지고 일어서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균형감을 맞춰야 한다. 셋째 지게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넷째 절제해야 한다. 짐을 너무 많이 싣게 되면 움직이지 못한다. 다섯째는 인내였다. 끝까지 가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여섯째가 제일 중요한 교훈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농사꾼 체질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곳(군위)을 떠나 대구로 나가야겠다는 것이 간절한 열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골 애가 대도시에 혼자 나가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부모님의 만류로 군위에 남게 되었고, 불만과 좌절감에 빠졌다. 대구로 진학한 여학생들을 마주치게 될까 봐 피해 다니기도 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동네 아저씨가 농번기에 농사일을 도와주러 왔다가, 그 집 가족들과 이 법원장의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동네 아저씨는 아내를 잃고 힘들게 자녀들을 키우고 있었다. 이 법원장은 그런 상황이 마뜩찮았고 자신도 모르게 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고 말았다.

엄했지만 장남인 이 법원장에게는 관대했던 아버지가 그날만은 달랐다. 아저씨가 돌아간 뒤 평생 잊히지 않을 만큼 혼이 났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어이없는 농약중독 사고

농사일을 도와야 하는 시골에서 공부에 집중하기란 힘들었다. 또 제도상 시골학생이 대구의 명문고에 진학하기란 더 어려웠다. 명문고는 같은 계열의 중학교 출신을 우선 선발하고(경북중→경북고, 계성중→계성고), 그 나머지를 경쟁시험으로 뽑기 때문이었다. 이 법원장은 선생님들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입시를 앞두고 4개월 동안은 공부에만 집중했다. 경북고에 1차로 지원해 탈락하고, 2차로 대구고에 지원해 합격했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짧은 기간이지만 간절하고 절박하게 공부하니까 통하는구나’란 생각에 처음으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나도 뭔가 할 수 있겠다’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 법원장의 고교시절 출발은 행복했다. 입학할 때 “시골출신인 나는 다른 애들과 경쟁에서 어느 정도일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1학년 생활을 해보니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커졌다. 그래서 2학년 여름방학 때 부족한 영어를 보충하기 위해 군위 집에도 안 가고, 대구 친척집에 머물렀다.

시골에서 쌀을 한 가마니를 보내왔다. 이 쌀은 화물회사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습기가 차서 벌레가 생기고 말았다. 쌀 한 톨이 아까운 시대였다. 농약 상의 조언에 따라 농약을 천에 싸서 쌀가마니 곳곳에 넣어두었다. 쌀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이 농약이 새어나와 쌀을 오염시켰고, 이 쌀로 밥을 해먹은 사람들이 모두 농약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발목이 처져 발끝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된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군위 집으로 급히 갔습니다. 당일 한방병원에서 침을 맞고, 그 다음 날 의성 탑리에 있는 유명한 한의원을 찾아가는데 이미 걷기 힘든 상태가 됐습니다. 리어카를 구하러 간 사이 의식을 잃었고, 여러 병원을 거쳐 경북대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상당기간 원인 불명이었고, 농약중독 사고로 밝혀진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아파도 휴학을 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희망과 기대에 차서 시작한 고교생활을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해 9월 1일부터 11월 21일까지 결석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연필은커녕 숟가락조차 못들 정도로 마비증세가 악화되었다. 어쩔 수 없이 1년 휴학을 했다.

“지속적인 치료로 이듬해 봄 손이 움직이고 앉아있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자, 부족한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완치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릴 수 없었죠. 목발 대신에 막대기를 짚고 다닌 것도, 한 번 목발을 짚게 되면 평생 의존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려움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시련과 좌절을 딛고 판사가 되다

1년 뒤 복학할 때는 이미 고 3이 눈앞이었다. 목발 대신 여전히 막대기를 짚었고, 책가방은 외할머니께서 들어주셨다. 학교 친구와 후배들이 불편한 이 법원장을 도왔다. 학교 앞 모자 가게 아저씨는 비가 올 때면 업어 등교를 시켜주셨다.

“불편함은 나의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일,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과 배려를 받았고, 그분들과 우리 사회에 진 빚이 큽니다.”

농약중독 사고로 인한 장애와 휴학에 따른 좌절을 만회하는 길은 ‘좋은 대학 가는 것’이었다.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지만 장애 완치가 어렵다는 걸 알고 법학으로 방향을 정했다. 명문대에 3번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재수`삼수 시절 중학교 때 영어교사였던 이도수 선생님을 만났다. 이 선생님은 학원 강사를 하며 대학원에 다녔고, 지금은 경상대 명예교수로 정년퇴임을 하셨다. 이 법원장의 어린 시절, 농약중독 사고, 재수`삼수, 사법시험 공부, 판사생활 등을 지켜본 이 선생님은 이 법원장에 대해 ‘내가 존경하는 제자’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명문대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위암 진단을 받아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 해 영남대 천마장학생(77학번)으로 입학하고, 12월이 되어서야 민법총칙을 처음 구입해 150쪽 정도 읽어봤습니다. ‘세상에 사람이 이런 생각을 다 할 수 있구나! 대단하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법학이 나한테 맞는 학문이라는 느낌이 확 왔습니다.”

가정형편상 사법시험 공부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생활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과외수업을 해야 했다. 대학 3학년이 되면서 더욱 절박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때 같은 동네에서 자취를 하던 아내를 만났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지만, 이 법원장의 형편상 결혼과 인생을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사법시험 1차에 도전하기로 했다. 준비가 부족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번에 실패하면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과 절박감이 들었다. 방학이 시작되면서 과외수업을 끊었다. 두 달만이라도 시험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세수는 1주일에 한 번만 했다.

처음 도전한 1차 시험에 합격한 그 해 2차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준비가 부족해도 경험 삼아 시험을 치러 볼 수도 있었지만, 이 법원장이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 하는 탓에 그만두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과외 전면금지 조치를 내렸다. 어쩔 수 없이 사법시험 공부에 전념해야 했다. 이렇게 대학졸업 2년 만인 1983년 사시 25회, 연수원 15기로 판사가 되었다.

▶패자의 아픔을 헤아리는 판사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판사가 되어 군산지법으로 첫 발령이 났다. 매일신문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이렇게 보니, 이 법원장은 판사 임명 및 퇴임 직후 32년의 간격을 두고 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인연이 생겼다.)"

"인터뷰에서 기자가 ‘판사로서 포부가 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왔죠.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지킨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어색하고 그래서 ‘욕먹지 않는 판사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답변은 신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이 법원장은 그 이후 “판사는 어떤 포부를 가져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욕먹지 않는 판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진실의 편에 서서 약자를 돕는 판사는 몰라도 '약자의 편에 서는 판사'도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구약성경 신명기 1장 17절에서 오랜 고민의 결론과 일치하는 구절을 발견했다.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하나님)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그동안 법대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원고는 사필귀정을 외치고, 피고는 존경하옵는 재판장님께서 현명한 재판을 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사필귀정과 현명한 재판이 충돌하는 셈이죠. 재판은 승패가 나뉘기 마련입니다. 절대적인 진실은 원고와 피고, 하나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판사는 진실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할 뿐 절대적인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판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확인된 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보험사 차장이 지점장을 상대로 한 소송은 이 법원장의 넉넉한 인품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례 중 하나다. 보험사 차장은 같은 사건으로 두 번이나 소송을 해 대법원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는데, 세 번째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경우 사건을 기각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법원장은 보험사 차장을 판사실로 불러, 개인적 억울함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있지만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깊은 공감과 위로로 달랬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송 중독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끈 것이다. 시련과 역경이 이 법원장을 '넉넉한 가슴과 인품의 판사'로 단련시킨 것이지 모른다.

▶'이겨야 할 사건'을 맡는 변호사?

“법원을 떠나니 사람 만나는 것이 편안해져 좋습니다. 이전에는 (사람 만나는 것이) 조심스럽고, 그 때문에 상대방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32년 법관생활로 정말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또 변호사 업계가 상당히 어려운데 저는 그래도 이곳에서도 혜택받은 사람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길 사건'이 아닌 '이겨야 할 사건'을 맡고 싶습니다.”

이 법원장은 변호사 생활이 안정되면 새로운 의미 있는 일도 찾아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특히 어려운 상황의 청소년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체념적 삶을 살 때 이를 탈피할 수 있는 마음의 씨앗이 바로 꿈이었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꿈이 필요하고 의지가 중요합니다. 처한 현실을 피하지도 불평하지도 말고, 그 현실을 직시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만의 소중한 꿈'을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꾸길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꿈과 의지를 받아줄 여건을 갖춘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석민 선임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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