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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이런 꼴 보려고 촛불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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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00:05:00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김기식 사태’는 몇 가지 중요한 판단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은 국회의원의 잘못된 행동이 ‘관행’을 따른 것이라면 문제 삼지 않아도 되는지, 그 잘못된 행동이 주요 직위를 맡아서는 안 될 정도의 하자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도구로서 ‘국민의 눈높이’와 ‘평균적 도덕성’의 기준은 어떤 것이고 그것은 누가 정하는지, 그 행동이 위법이라는 ‘객관적 판정’을 내리는 주체는 누구인지 등이다.

청와대의 대답은 명쾌하다. 피감기관의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김기식의 행동은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이었으며, 국민의 눈높이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으며, 김기식의 도덕성이 일반적 국회의원의 평균적 도덕감각을 밑돌지는 않으며,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오만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해석’과 ‘판정’의 독점이다. 청와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엿보게 한다.

하나씩 따져보자.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지만, 관행이었으면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인가? 청와대는 이런 ‘해석’을 합리화하기 위해 19`20대 국회에서 김기식과 같은 경우가 167차례나 됐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모두 그랬는데 왜 김기식만 문제 삼느냐는 소리다. 그러나 지금은 관행이란 이유만으로 관행이 용서되는 시대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놓고 김기식에 대해서는 “당시 국회의 관행이었다면 야당의 비판과 해임 요구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한다.

이는 심각한 자기 부정이다. 과거 정부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자부(自負)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문 정부 식으로 말하면 김기식의 과거 행적은 적폐다. 그런 적폐를 관행이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문제 삼지 말라는 것은 ‘도덕적’인 문 정부가 할 소리는 아니다. ‘적폐 진영’과 한통속이라는 자인(自認)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리 들으려고 ‘촛불’들이 촛불을 들진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행동이라도 용인될 수 있는 국민의 눈높이와 평균적 도덕성 기준에 이르면 더 할 말을 잃는다. 국민의 눈높이와 국회의원의 평균적 도덕성에 비춰 김기식의 행동은 문제가 없다는 청와대의 언급은 청와대가 문제가 없다고 하면 정말로 문제가 없는 것이란 소리다. 국민의 눈높이도 국회의원의 평균적 도덕성도 청와대가 정한다는 오만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누가 그런 자격을 줬나? 이렇게 하라고 ‘촛불’들이 촛불을 들었을까?

국민의 눈높이는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추상적 실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구체적 측정은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편에게는 낮추고 상대편에게는 높이는 이중 잣대로 이용되기 십상이다. 여론조사는 이런 위험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다. 물론 여론도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론조사는 국민이 생각하는 국민의 눈높이를 구체적 수치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는 분명히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김기식의 사퇴 찬성은 50%를 넘었다. 청와대의 ‘국민의 눈높이’와 국민의 ‘국민의 눈높이’는 이렇게 다르다.

오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기식이 법을 위반했는지도 청와대가 판단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김기식의 외유성 출장이 ‘공적인 목적의 적법 행위’라고 했다. 조 수석이 판사라도 되나? 실소가 나오는 것은 이렇게 적법 판결을 내려놓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적법 여부의 유권해석을 의뢰했다는 점이다. 조 수석의 판결이 실수라는 것인가 아니면 김기식 카드를 접기 위한 출구작전인가? 어쨌든 이런 비상식을 보려고 ‘촛불’들이 촛불을 든 것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는 문 대통령이 지난 2월 5일 선물한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가 걸려 있다고 한다. 춘풍추상은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줄인 말로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워야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가 빙긋이 웃는 듯하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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