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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이야기가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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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00:05:00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자주 걷는 편이다. 하루에 만 보를 걷자며 다짐하고 있다. 걷기 좋은 곳이 주변에 참 많다. 집을 나서서 포항운하를 왕복하고 나면 약 8천 보가 된다. 좀 변화를 주고 싶은 날은 바닷길을 따라 걷다가 송도 솔밭으로 들어간다. 도시 숲 조성공사를 마친 뒤에 제법 볼거리까지 곁들여져 있다. 폐철도 부지에 만든 도시 숲길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덕수공원 입구에서 작은 굴까지 이어지는 길은 소풍 다녔던 옛 생각을 나게 한다. 요즘은 한 번씩 효자역으로 가서 대잠네거리까지 걸어본다. 덤으로 불의 정원도 볼만하다. 마음을 먹고 하루를 내면 청림에서 출발하는 호미곶 둘레길도 일품이다. 그동안 숨겨놓았던 해안 벼랑의 보석 같은 모습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녹색 생태도시를 꿈꾸는 포항시의 ‘그린 웨이’ 조성사업은 시민들의 삶에 닿을 만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걷는 길들이 봄을 맞아 싱그럽기만 하다.

현재 포항의 도심 자리는 원래 물길이 만든 땅이었다. 형산강이 바다를 만나면서 섬을 만들었고, 물길을 따라온 사람들이 땅을 일구며 살기 시작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물풀 사이를 달리고, 샛강을 건너뛰었다. 그들의 걸음이 쌓이고 쌓여서 푸른 길이 되었다. 그저 걷기만 한 게 아니라 만나는 사물과 수없는 대화를 하고 나름의 이름도 붙였을 것이며. 때로는 이야기를 만들어 함께 나누었을 것이다.

산책을 할 때면 문득문득 그곳에서 오롯이 살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형산강 둑길을 걸으면 연일 외가를 오가던 잠수교가 그려진다. 남부경찰서, 그 곁에는 구강이라는 이름의 제법 큰 못이 있다. 샛강이 흐름을 멈추어 둠벙이 된 곳이었다. 못 가에는 키 큰 미루나무가 울타리처럼 줄을 서 있었다. 둠벙에는 쇠물닭과 개개비가 물풀 줄기를 엮어 집을 지었다. 봄철 산란기가 되면 가물치와 메기가 물풀에 몸을 비벼댔다. 아이들 사이에는 그 못에는 지킴이가 있다느니, 달 밝은 밤에 못 가로 기어 나온 것을 보았다느니 조금은 오싹하면서도 흥미를 더해주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포항운하를 걸을 때면 항상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포항운하 자리에 있었던 딴봉에는 심술꾸러기 장사가 살았다고 한다. 늘 약한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하루는 형산강에서 낚시를 하다가 늪에 살고 있던 지킴이에게 혼쭐이 난 뒤에 그 못된 버릇을 고쳤다고 하였다. 형산강, 섬 안 곳곳에는 이런 이야기가 강물처럼 흘렀다. 새를 쫓으며, 물고기를 잡으며, 소금을 고며 부르던 노래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이야기와 노래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포항운하로 막혔던 물길이 돌아왔다. ‘그린 웨이’사업으로 숲길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이 아쉽다. 함께 살았던 이야기와 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도시 숲길을 걷는다. 시민과 자연을 잇는 그린 웨이를 걷는다. 그 길 위에서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김일광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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