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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19일(목) ㅣ
[장하빈의 시와 함께]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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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00:05:00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 꼭지

문인수(1945~ )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여생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주전자 꼭다리 떨어져 나가듯 저, 어느 한 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시집 『배꼽』 (창비, 2008)

---------------

막내둥이라는 뜻을 지닌 ‘꼭지’는 딸이 똑 떨어지고 아들 낳으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엔 ‘언년’ ‘말순’ ‘끝님’ 등과 같은 친척 말과 함께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달갑잖은 딸로 태어났으니 ‘꼭지’는 젖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해 불우한 시절을 보냈을 터! 게다가 지금은 수족이 다 떨어져 나간 몽당발이 같은 신세다. 그러한 ‘꼭지’가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은 모습으로,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마치 여생을 핥듯이. 꼬불꼬불한 길 끝에 앉은뱅이처럼 달랑 쪼그려 앉으면 어렵사리 살아온 과거의 기억이 노란 민들레꽃으로 피어난다.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하고 애통해하는 순간 ‘꼭지’는 이승을 가벼이 떠나는 새로 부활한다.

이렇듯 ‘달팽이[현재]-민들레꽃[과거]-새[미래]’로 비유된 ‘꼭지’는 질긴 비애와 파란곡절 많은 조선 여인의 표상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꼭지’가 살아온 내력이야말로 아직도 가난과 고통과 외로움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슬픈 가족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장하빈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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