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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 2. 설원속의 꿈, 끝없는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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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아! 바이칼…여기저기서 탄성, 자던 사람들도 창가로 모여들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역사를 만나는 것도 큰 재미다. 블라디보스토크역.
 
 
4인용 침대 열차 쿠페에서 함께한 여행자가 가져온 음식과 기념품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된다.
일상에서 벗어나 모험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멋과 낭만이 있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실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발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중앙역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고풍스러운 외관을 자랑해 동화 속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스크바를 종착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이곳이 열차 여행의 시작점이다. 역에는 대장정의 꿈에 부푼 사람들이 넘친다. 중국인 보따리 장수 부대, 휴가를 받은 태평양함대의 수병, 자식을 만나러 왔다 시베리아 벽촌으로 돌아가는 촌로, 사랑의 낭만 기차여행을 즐기는 연인들,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사연을 품고 탑승한다.

여행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은 시간이다. 러시아의 역에는 시계가 많이 걸려 있으나 모든 시간의 기준은 모스크바 시간대이다. 즉 모스크바와 7시간의 시차가 나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예매했다면 실제로는 완전히 어두워진 밤 10시가 돼야 출발한다.

내가 탑승한 열차의 이름은 시베리아호. 차장의 안내로 객차에 오르니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복도 한편으로 늘어선 10개의 객실이 보였다. '쿠페'라고 부르는 4인용 객실에는 2층 침대 2개가 양쪽 옆으로 붙어 있고 침대 사이에 작은 탁자가 놓여 있다. 혼자 여행할 때는 낯선 사람과 객실을 함께 써야 한다. 종종 처음 만난 남녀가 한 객실에서 며칠을 부부처럼 함께 지내는 흥미로운 경우도 볼 수 있다.

기차에 오르는 순간 잠자리 문제는 해결되지만 먹거리와 씻을 일을 준비해야 한다. 식사는 차량마다 비치된 사모바르(뜨거운 물을 끓이는 기구)로 컵라면과 즉석밥, 통조림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끓인 물로 우려낸 차 한 잔과 함께 창밖 설경을 보는 여유도 즐길 수 있다. 좁은 화장실에서 세면은 가능하지만 머리를 감을 때는 곤란하다. 세면대는 마개가 없어 골프공 등으로 막아야 물을 받아 머리를 감을 수 있다. 기차 안에서는 식당차, 차내 판매, 중간역에서의 매점과 차장이 판매하는 차와 견과류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일주일 이상을 밤낮없이 운행하는 횡단 열차에서 승무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차량 한 칸마다 두 사람의 여자 차장이 차내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관리한다.

기차가 출발하면 차장은 손님에게 베개 커버, 침대 시트, 수건 등을 나누어 준다. 차장은 열차 내 청소, 승객과 열차의 관리는 물론 얼어붙은 얼음까지 제거하고 물을 보충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작업복으로 무장한 채 객차 화장실과 복도, 객실을 청소한다. 여러 승객이 어지럽힌 온수통 주위를 쓸고 닦을 때는 영락없는 청소부 아줌마였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승객들도 기차가 출발하면 곧 친해진다. 맥주나 보드카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객실을 옮겨 다니며 여행자끼리 어울리는 모습도 보였다. 짧고도 긴 시간이지만 나의 로망이 된 기차 여행이 일상이 되는 순간 객실은 나의 안방, 서재나 다름이 없었다. 시베리아 벌판은 영하 40도이지만 열차 안은 언제나 22도를 유지하여 따뜻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특히 객실을 같이 쓰는 사람과는 친해질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여행 동안 사랑을 꽃피우기도 해 '열차 로맨스'는 러시아 영화나 소설의 아름다운 소재가 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잇고 피부색, 나이, 언어를 넘어 새로운 문화의 교류를 가져온다.

차창 사이로 새로운 하루의 아침이 열리자 또 다른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진다. 미녀의 다리처럼 늘씬한 겨울 자작나무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 뒤로 흰 눈옷을 입은 산들이 그림 같은 정경을 선사한다.

26세의 미인 나샤가 동승하면서 새로운 여행 친구가 생겼다. 그녀에게 과일과 빵 등 음식을 얻어먹고 나는 준비해간 하회탈 목걸이와 거울을 선물로 주었다. 또 그녀는 엽서와 마트료시카 열쇠고리를 주었다. 나샤가 "러시아의 자랑거리 세 가지는 아가씨, 보드카, 빵이고, 망신거리 세 가지는 남자, 도로, 기후"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한동안 웃음을 멈출 수 없었지만 그만큼 해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슬로 투어이다. 계속 횡단하는 일정보다는 도중에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카잔 등 경유지에서 관광하는 것도 좋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이르쿠츠크까지 장장 75시간을 달리자 새벽녘에 차내가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침엽수림 사이로 하얗게 얼어 누운 거대한 호수가 조금씩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 바이칼∼"이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자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창가로 모여들었다.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기차 오른쪽으로 바이칼 호수가 나타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면 볼 수 있는 차창 밖의 풍경 중 가장 아름답다. 아침 햇살 아래 영롱이며 반짝이는 바이칼의 모습은 성스럽게 보였다. 가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드는 시골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들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열차는 이르쿠츠크까지 7시간 동안 바이칼을 따라 바람처럼 달렸다. 정차하는 역마다 상인들이 말리거나 구운 생선을 플랫폼에 들고 와 좌판을 벌여 팔았다.

이르쿠츠크에서 36시간을 달리면 노보시비르스크역에 도착한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군사, 과학과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1939년 건축된 노보시비르스크역은 하늘색 기차 모양의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정차하는 역들의 독특한 외관에서 철도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문화임을 느낄 수 있다.

열차는 우랄산맥을 넘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진입하고 있다. 모스크바로부터 1천777㎞ 지점에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가 있다. 볼가강을 지나 우랄산맥을 넘은 지 오래다. 톰스크를 출발해 노보시비르스크를 통과한 열차는 모스크바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초원이 지평선과 마주친 것처럼 보이지만 평평한 대지에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서 얻는 삶의 여유로움과 평소 관심밖에 두었던 새로운 세상과 자연에 감탄하는 반가움은 바로 기차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 차창으로 지나치는 자연의 속삭임까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참 바쁜 세상살이, 살붙이마저 마주 대할 시간이 자주 없는 이 시대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허허롭기만 한 우리의 심신을 어루만져 준다.

어떤 여행자에게는 로맨틱하고 황홀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언제쯤 모스크바에 도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이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선물과 느낌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것을 여행에서 만난 러시아인들의 순박함 속에서 알았다.

안용모 경일대 석좌교수`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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