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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2일(일) ㅣ
[진중권의 새論 새評] 당명 없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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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TK의 안철수 지지는 후보에 한정

‘특정 후보 싫어서’ 인물 선택한 상황

安 캠프에서 구악 척결하기에 따라

지역주의 청산 소중한 계기 될 수도

차도 없고 면허도 없기에 학교가 있는 영주시 풍기에 있을 때는 주로 택시를 이용하게 된다. 그때마다 기사분을 통해 자연스레 대구경북 민심의 동향에 관해서 듣게 된다. 듣자 하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투표 안 하겠다던 지역의 어르신들이 요즘은 ‘반드시 투표장에 나가서 안철수를 찍겠다’고 하신단다. 그 이유인즉 ‘호남당도 싫지만 문재인은 더 싫다’는 것이란다.

물론 좋아서 찍는 게 아니라 싫어서 찍는 증오 투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문재인이 싫어 안철수를 찍는 데에는 그 나름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사실 호남 사람을 싫어하는 것보다 차라리 문재인을 싫어하는 게 훨씬 건전하지 않은가. 문재인 덕에 TK와 호남이 연합을 할 수 있다면, 나라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의 청산에도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에 한국의 보수는 진보에 대한 혐오를 즐겨 지역에 대한 혐오로 포장하곤 했다. 지역감정만큼 원초적인 감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모처럼 진보에 대한 ‘정치적 혐오’와 지역에 대한 ‘인종적 혐오’가 서로 분리된 것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두 혐오가 분리됐다는 것은 그 두 혐오가 그동안 정치 논리 때문에 결합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진보에 대한 ‘혐오’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은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특정 정치 세력을 극도로 싫어할 권리가 있다. 반면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는 다르다. 출신 지역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을 들어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이른바 ‘문재인 포비아’ 덕분에 한국의 보수가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에서 후보를 빌려다 대선을 치르는 아주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안철수의 정책이나 노선, 공약이나 철학이 좋아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싫어서 안철수를 찍는다는 것은 분명 정상적 상황도 아니고, 최선의 선택도 아니다. 하지만 차악이 최소한 최악보다는 낫다.

이번 선거에서 고무적인 것은 지역주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당 후보가 TK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PK에서 그 못지않은 지지세를 누리고 있다. 그 사이에 두드러지는 것은 차라리 세대 간의 대결이다. 이마저 완화되어 머잖아 한국의 정치는 지역과 연령의 차이를 넘어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정상화될 것이다.

안철수 후보 역시 보수 민심의 움직임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암시하고, 사드 반대 당론을 찬성 쪽으로 뒤집고, 선거 포스터에는 아예 당명을 지워버렸다. 유명한 디자이너의 혁신적 아이디어라고 하나, 그 어떤 디자이너도 광고주 위에 있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당명의 제거는 광고주의 주문으로 보는 게 옳을 게다.

안철수에 대한 TK의 지지는 후보에 대한 지지이지 정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보수 후보들은 그를 다시 지정당의 테두리 안에 가둬두려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안철수를 찍으면 박지원이 대통령 된다.’ 이 때문에 당명을 감추고 후보 개인을 부각시키는 혁신적(?) 포스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나름 지역의 한계를 넘으려는 처절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걱정되는 것은 안철수 캠프의 행태다.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장은 안철수 후보의 대구 유세에서 색깔론 공세를 폈다. “문재인 찍으면 누구한테 먼저 가겠는가. 김정은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문재인은 우리 전북 인사들을 차별했다.” 한마디로 TK와 호남에서 각각 척결해야 할 구악들을 반복하고 있다.

안철수에 대한 TK의 지지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극복하고 영호남이 화합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색깔론이라는 TK 고질병에 지역감정이라는 호남당의 고질병을 더해 외려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캠프 하기 나름이다. 다만 캠프는 안철수 후보의 슬로건이 한때 ‘새 정치’였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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