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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29일(토) ㅣ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마리안느와 마가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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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소록도 43년 헌신 두 이방인 백의천사
 
 
 

‘소록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작은 사슴 모양 섬이라는 뜻의 예쁜 이름을 가진 섬.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이 섬은 한센병 환자들의 주거지로 알려졌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이 섬에 들어와 요양원을 세웠고, 조선총독부가 자혜병원을 개원한 이래로 전국의 모든 한센병 환자들이 이 섬으로 강제로 격리 수용되었다. 완치할 수 있고 전염성이 낮은 질병임에도 한센병 환자에 대한 핍박은 광복 뒤에도 지속됐다.

1960년대 소록도에는 6천 명의 환자들이 있었지만, 의료진은 고작 5명뿐이었다. 전쟁 직후 참담한 이곳에 오스트리아의 젊은 간호사 두 명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은 43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평생을 봉사한 이태석 신부의 아름다운 행적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듯이, 우리가 가난하고 힘겨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외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편지로 시작한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는 ‘항상 기도 안에서 만납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라고 끝맺음하는 이별의 편지다. 2005년 11월 70대의 노인이 된 그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그렇게 훌쩍 떠난다.

과연 세상에 이런 존재들이 가능한지 놀라울 뿐이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몸소 입증한 그녀들은 자신이 다큐멘터리 때문에 주목받는 것을 원치 않아 한사코 영화 제작을 거부했다고 한다. 윤세영 감독과 기획자로 이름을 올린 김연준 신부는, 병이 든 몸을 이끌고 고향에서 친척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하지만, 마리안느는 거의 카메라 앞에 등장하지 않고, 마가렛은 수줍게 등장하여 “그때는 이미 떠났고, 보고 싶지만, 마음속에서 만난다”고 고백한다.

영화에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부재에 가슴 아파하는 환자들의 솔직한 인터뷰가 담긴다. 한센병 환자들이 냉대받던 시절의 흑백 사진과,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난한 나라에서 헌신하기로 하고 섬에 들어온 아름다운 여인들의 옛날 사진이 삽입되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환우의 2세로 태어나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헌신하는 삶에 감명받고 사제의 길을 선택한 신부와,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두 여인의 선행을 알고 직업적 소명에 대해 깨닫게 되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간호사 지망생들의 자기 고백도 담긴다. 누가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이들의 삶의 향기가 후대에도 큰 감동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을 영화는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 가운데 뼈아픈 것은 43년을 자원봉사로 낯선 땅에서 헌신한 두 이방인 간호사의 말년을 보듬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녀들은 이제 한국도 잘살게 되어 복지정책으로 환우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의료기술이나 장비도 충분하여 더는 자신들이 도와줄 것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소록도에 짐이 될 것을 우려하며 떠난다. 감사 인사를 받기도, 유명해지기도, 자신들이 알려지기도 거부하며, 그저 할 일을 했다고 말하며, 오히려 자신들이 소록도 덕분에 행복했다는 그들. 이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바로 저들의 모습일 것이다.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해 주거나, 감동적 장면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여 눈물을 뽑아내게 하는 흔한 휴먼 다큐멘터리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공간을 조용히 응시하거나, 잠시 말을 잊은 인물들의 표정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방식,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역사적인 시각에서 우아하게 연결하는 방식을 통해 작품 만듦새의 깊이를 더한다. 한 편의 시를 읽고, 오랫동안 사색에 잠기다 깊은 감동을 체감하게 되는 그런 영화적 경험이다.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녀의 시 구절에서 따온 몇몇 대사가 영화의 울림을 더욱 크게 만들어준다.

정민아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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