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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혁명 선율' 탄생, 러시아 현대사 반추하다…『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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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00:05:03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길고 잔혹했던 레닌그라드 전투 900일 동안 100만명 넘게 목숨 잃어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M.T. 앤더슨 지음/장호연 옮김/돌베개 펴냄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생애와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생애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반추하는데,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길고 잔혹했던 레닌그라드 전투와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페트로그라드로, 다시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명멸했던 사건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쇼스타코비치 “내 교향곡은 묘비다”

책의 줄기는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다. 190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안온한 삶과 작별하는 이야기부터 1975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70년의 세월이 시간순으로 펼쳐진다. 쇼스타코비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소개하며, 그와 교류했던 인물들과 당대 예술계의 풍경을 넓게 조명한다.

책 초반부이자 쇼스타코비치 청춘기에는 혁명의 기쁨과 내일에 대한 기대로 들끓는 젊은 예술가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하지만 혁명의 끝은 처참했다.

예술 분야 미래파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마야콥스키는 자신이 건설에 참여했던 세상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권총으로 자살했다. 쇼스타코비치의 동료였던 연극 연출가 메이예르홀트는 갖은 고문을 당한 뒤 처형됐고, 메이예르홀트의 부인이자 배우였던 지나이다 라이흐는 무단 침입한 괴한의 칼에 난자당하고 눈이 도려진 채 죽었다. 음악 애호가였으며 쇼스타코비치의 후견인이었던 붉은 군대 투하쳅스키 원수는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피와 죽음은 끝없이 이어졌다. 예술가와 지식인, 농민, 노동자, 군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처형당했다. 훗날 쇼스타코비치는 이렇게 회고했다. “내 교향곡은 대부분 묘비다.”

◇나치 독일의 공격을 견디기 위해 작곡

이 책의 핵심 부분은 ‘레닌그라드 전투’와 그 참혹한 가운데에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가 탄생하는 이야기다. 독일의 2년 반 동안에 걸친 레닌그라드 포위 공격과 굶주림, 추위로 100만 명이 넘는 러시아 시민들이 죽었다.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나치의 포위 공격과 소비에트 독재라는 이중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 스탈린 독재는 자유로운 영혼을 짓누르는 유령 같았고, 숙청 위협은 그림자처럼 그의 머리 위에 도사리고 있었다. 1941년 쇼스타코비치는 독일의 포위 공격으로 초토화된 레닌그라드 시민들을 찬양하고 추모하기 위해 ‘교향곡 7번’ 작곡에 들어갔다. 이곡은 쿠이비셰프에서 사무일 사모수트가 지휘하는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1942년 3월 5일 초연됐다.

소비에트 당국은 이 곡을 반(反)나치 투쟁의 찬가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곡에 담은 정신이 나치에 대한 저항인지,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스탈린에 대한 저항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거나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던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이 곡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었고 다시 살아갈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나아가 이 곡을 들은 세계인들은 러시아의 곤경에 뜨겁게 공감했고, 광범위한 원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러시아가 길고긴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끝내 무릎 꿇지 않은 도시 레닌그라드

이 책은 잔혹한 적들 앞에서 끝내 무릎 꿇지 않은 도시 레닌그라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시를 봉쇄하고 지독하게 몰아붙이는 독일군에 죽음으로 저항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불굴의 정신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 속에서도 당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음악과 예술과 문학을 아끼고 사랑하는 문명인임을,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간임을 증명하고 보여주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투에 임했고,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도왔다. 전투가 이어진 900일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죽고, 거리마다 집집마다 매장하지 못한 시체가 뒹굴고, 집에서 기르던 동물을 잡아먹고, 식인 행위까지 은밀히 저질러졌지만, 끝내 그들은 살아남았다. 역설적이게도 문화예술의 도시 레닌그라드를 파괴한 인물은 히틀러가 아니라 스탈린이었다. 자신을 3인칭 ‘스탈린 동지’로 지칭하기를 즐겼던, 변덕스럽고 포악한 독재자 스탈린은 무모한 5개년 계획과 숙청으로 러시아 전역에 피바람을 일으켰다.

지은이는 “레닌그라드를 파괴한 것은 스탈린이고 히틀러는 그저 마무리했을 뿐이다. 이 책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은 인류의 두 적 스탈린과 히틀러의 범죄를 고발하는 책이다”고 말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스탈린의 압제 아래 쇼스타코비치가 유배되거나 망명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그를 타협과 순응으로 목숨을 부지한 겁쟁이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는 정부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신 쓴 선전 기사에 기꺼이 서명했다. 자신의 친구들을 수없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밀경찰 NKVD의 악단을 위해 활기찬 춤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충성스러운 스탈린주의자였을까, 반체제 인사였을까? 기회주의자였을까, 소신 있는 사람이었을까? 지은이는 이렇게 답한다.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살아남으려고 애썼다.”(481쪽)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친구들을 도우려고 애썼고, 대공포 시대에 감옥에 갇히거나 죽은 무고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려고 최선을 다했다. 전쟁 후 스탈린이 또 다른 숙청을 준비하는 기미가 보일 때 스탈린과 그 부하들을 은밀히 조롱하는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고, 그렇게라도 조롱해야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이 목숨을 부지한 방식을 수치스러워했다고 한다. 내키지 않는 선택과 굴종을 강요받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조건에서 살아가는 제3자가 함부로 평가할 일은 아닐 것이다. 546쪽, 2만2천원.

▷지은이 M. T 앤더슨은…

196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보스턴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소설 쓰기, 만화 그리기, 컴퓨터 어드벤처 게임에 빠져 청소년기를 보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역사소설 ‘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천연두 파티’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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