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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17일(수) ㅣ
전기장판 켜도 발이 시려… 차디찬 쪽방서 오들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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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00:05:03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르포] 혹한에 힘든 사람들…방 앞 수도관 언 지 오래, 설거지도 못한 그릇이 수북
 
11일 오후 6시 10분쯤 대구역 3번 출구 인근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선 채로 음식을 먹고 있다. 한모(64`오른쪽) 씨가 카레밥을 비비고 있다. 홍준헌 기자
영하 10℃를 밑도는 거센 한파에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추위를 피할 따뜻한 집과 음식, 가족이 있는 이들에게 한파는 스쳐 지나가는 겨울의 심술일 테지만 차디찬 냉기를 홀로 버텨야 하는 이들에겐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혹독한 시련이다. 지역 쪽방촌과 노숙인들은 힘겨운 겨울나기 중이다. 갖가지 복지 서비스와 지역 사회의 나눔 봉사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녹이기엔 역부족이다.

◆바닥만 간신히 데운 방, 두꺼운 옷과 털모자로 버텨

한낮 기온이 영하권에 머문 12일. 강추위에 바깥출입은 엄두도 못 내는 쪽방촌 주민들은 3.3㎡ 남짓한 좁은 방안에서 털모자와 두세 겹씩 껴입은 두꺼운 외투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찬 기운이 방 안을 가득 채워 이불을 뒤집어써야만 간신히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연탄 한 장도 아까운 주민들은 쪽방 지원단체 '행복나눔의 집'이 제공한 전기장판으로 견뎠다.

대구 중구 대신동 한 여인숙에 머무는 석모(53) 씨는 누우면 머리와 발이 벽에 닿을 정도로 좁은 방에 홀로 앉아있었다.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방안에서 석 씨는 털모자를 쓰고 온몸을 이불과 두꺼운 외투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 방구석에는 빈 통조림과 어지럽게 늘어놓은 옷가지가 가득했다.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근근이 살고 있는 석 씨는 얼마 전 빙판길에 넘어지는 바람에 쉬고 있다. 생활비도 다 떨어져 찬밥과 김치로만 끼니를 이어간다.

석 씨는 "기초생활수급비까지 받으면 더 이상 자립하지 못할 것 같아 신청도 하지 않았다"면서 "날씨도 추운데 몸까지 아파 힘들지만 열심히 일해서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동대구역 인근 쪽방에 사는 노모(73) 씨도 전기장판과 이불에 의지해 추위를 버티고 있었다. 노 씨의 반려견 '몽이'도 추위를 견디기 힘든지 이불 속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밥솥은 비어 버린 지 오래였고, 방 앞 싱크대엔 수도관이 얼어 설거지를 하지 못한 그릇이 냄새를 풍기며 쌓여 있었다. "여름보다 겨울이 훨씬 힘들어요. 전기장판 위에서도 발이 시려 견딜 수가 없어요. 추위가 빨리 지나가야 바깥 구경이라도 할 텐데…." 노 씨가 말끝을 흐렸다.

쪽방의 월세는 10만~15만원 수준. 하지만 워낙 수입이 적어 월세를 내면 주머니는 거의 바닥 난다. '행복나눔의 집' 등 쪽방지원단체가 생필품을 지원하고 공동샤워장`세탁실도 제공하지만 모두를 돌보기엔 힘이 부친다. 고한용 행복나눔의 집 팀장은 "쉼터에 오지 않고 홀로 추위를 견디는 분들이 많아 수시로 찾아 보살피고 있다"고 했다.

◆언 발 참아가며 거리서 끼니

11일 오후 대구역. 대구역사 안 쓰레기통을 뒤지던 노숙인 조모(55) 씨가 누군가 먹다 남긴 음식을 집어들었다. 주위를 살피던 조 씨는 청소부를 발견하곤 멋쩍은 듯 음식을 쓰레기통에 내려놨다. 손에 묻은 양념을 바지에 닦던 그는 누군가 쓰레기통에 음식을 버릴 때마다 주워 먹기 바빴다. 서울 출신이라는 조 씨는 퇴직금으로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한 뒤 갈 곳을 잃었다. 이후 전국을 떠돌다가 대구까지 흘러와 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 마련해준 보금자리에 잠시 머물고 있다.

조 씨는 "너무 추워서 바깥에서는 도저히 지낼 수 없다. 일을 하고 싶어도 나이가 너무 많다며 다들 거절한다"며 "다음 달 말까지는 그나마 대구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오후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 휴게실에는 노숙인 20여 명이 엎드려 잠을 청하거나 TV를 보고 있었다. 이곳 이호준 센터장은 "겨울에는 찬 바람을 피해 실내에 머물려는 노숙인이 많다 보니 센터가 항상 붐빈다"고 설명했다.

오후 6시가 가까워오자 노숙인들이 일제히 대구역 3번 출구 앞 광장으로 향했다. 무료 급식을 먹기 위해서다. 김치와 카레라이스, 어묵 국물을 받아 든 노숙인들은 역사 구조물에 식판을 놓고 줄지어 선 채 허겁지겁 음식을 삼켰다. 5분 만에 그릇을 비운 노숙인들은 한 번 더 배식을 받고자 다시 줄을 섰다. 노숙인 한모(64) 씨는 "얇은 양말 하나만 신고 있어 발이 너무 시리다. 이제야 오늘 첫 끼를 먹는다"고 했다. "눈물이 자꾸 나네요. 바람이 너무 차갑습니다." 노숙인 이모(61)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글 사진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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