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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5일(일) ㅣ
[이웃사랑] 가정폭력 시달리는 김은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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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00:05:04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30여년 계속된 남편 폭력에 마음도 멍들어
 
 
 
지난 1월 남편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김은자(가명) 씨는 척추관 협착증이 심해져 제대로 거동할 수 없다. 김 씨가 의자를 짚고 겨우 일어서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그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아마 전 죽었을 거예요." 김은자(가명`68) 씨는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지난 1월 김 씨는 30여 년을 함께 산 남편에게 이유없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만취한 남편은 수면제를 먹고 잠든 김 씨에게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김 씨는 "수면제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며 "집 밖으로 뛰쳐나와 보니 옷은 제대로 입지도 못했고, 얼굴은 피범벅이 돼 있더라"고 했다. 응급실을 찾은 김 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온몸은 멍투성이였고, 터진 입 안에서 피가 흘렀다. 왼쪽 갈비뼈가 부러져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퇴원한 김 씨는 그 길로 집을 나와 따로 방을 구했다. "몸에 난 상처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데,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낫질 않네요."

◆남편의 전 부인과 세 아이까지  돌봐

남편은 하루도 술을 거르지 않았다. 술에 잔뜩 취하면 늘 김 씨에게 저주와 욕설을 내뱉었다. 술이 깨면 "잘못했다"고 빌고, 다시 술을 마시고 폭언을 퍼붓는 일상이 반복됐다. "바깥에서는 봉사활동도 하고 성품이 좋다고 소문난 사람이었어요. 남들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집 안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죠."

30대 후반까지 미혼이던 김 씨는 집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남편을 만났다. 당시 남편은 삼 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집안 꼴이 엉망이었어요. 집 안팎을 청소하고 밀린 빨래를 다 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죠. 그때라도 남편과 함께 살면 고생길이 열린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몇 달 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중년 여성이 집에 왔다. 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남편의 당시 부인이었다. "남편은 제게 '아내가 없다'고 속였던 거예요. 전 부인이 세상을 뜰 때까지 8개월간 제가 병구완을 했어요."

이후 김 씨는 친정에서 돈을 빌려 슈퍼마켓을 키웠다. 삼 남매를 대학에 보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판매할 물건이 담긴 상자 수십여 개를 직접 날랐고, 자전거에 실어 배달을 했다. 남편은 생계를 이으려 아등바등 일하는 김 씨를 본척만척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환갑이 지났더군요."

◆유방암으로 죽을 고비 넘겼지만…

남편의 술버릇은 점점 나빠졌다. 술에 취하면 극도로 난폭해졌고, 옷이나 이불에 실례를 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세 아이가 독립하자, 심한 손찌검이 시작됐다. 김 씨가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멀다는 게 이유였다. 10여 년 전에는 남편의 폭행으로 전치 4주 진단을 받기도 했다. "분위기가 험악하다 싶으면 위험할 만한 물건을 모두 숨겼어요. 그러면 주먹질을 하거나 발로 마구 차기도 했죠."

숨죽여 살던 김 씨는 2012년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간과 폐, 늑막까지 전이돼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항암화학요법과 함께 15차례에 이르는 방사선치료를 받은 후에야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암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상태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무리하게 몸을 움직였던 후유증도 심했다. 허리 디스크 질환으로 통증이 심하고, 닳아버린 무릎 관절은 인공 관절로 대체했다.

"마구잡이로 폭행을 당한 그날 이후 가정폭력 피해여성쉼터에서 머물다가 3개월 만에 집에 갔어요. 아예 제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현관 자물쇠를 바꿨더군요." 김 씨는 어렵게 문을 열고 필요한 살림살이만 챙겨서 나왔다. 전 재산이던 500만원으로 사글세를 구했고, 남편과는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다. 변호사 선임비와 소송 비용 등은 우선 빚을 내 충당했다. "땡전 한 푼 없지만 지금은 남편이 눈앞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

이혜진 기자 hattch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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