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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를 찾아서] 천도교 성지①-최제우 득도지 용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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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9 07:40:34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내 몸이 곧 한울님" 수운 선생 가르침 들리는 듯
 
 
 
어인 조화일까? 장대같이 내리던 장맛비가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천도교의 발상지 경주 현곡면 용담정을 찾던 날은 깨끗이 걷혔다. 어제까지 내린 비로 용담정 계곡의 물은 불어 폭포소리 우렁차고, 땀을 씻은 참나무 숲 소나무 그늘에는 주홍빛 하늘나리가 말간 얼굴을 드러내었다. 소쩍새 울음소리 들리는 용담정 골짜기에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운 하늘나리는 수운의 ‘슬픈 넋’을 대신 말하고 있음일까? 원효 일연과 함께 경상도가 배출한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요 천도교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아직 복권되지 않고, 그가 득도한 성지 경주 용담정은 쓸쓸히 세월을 삭이고 있다.  

◈태어난 땅에선 외면받아

너무 무심하였다. 근세사를 살아오면서 우리 민족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직접 뛰어들어 큰 힘을 발휘하였던 천도교의 성지를 찾는 일이 늦었다. 수운 최제우가 득도한 용담정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주 경주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경주시청 공무원은 대뜸 “용담정이 어디인지 무식해서 모른다. 지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탁음을 전화선으로 흘려보냈다. 원효 일연에 버금가는 동학의 창시자이자 천도교 제1대 교조 수운은 그렇게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기자에게도 공무원에게도 외면받고 있었다. 교세도 유독 경상도가 약하다. “쨍”하고 머리에 금가는 소리를 느끼며, 전화를 끊었다. 지인을 통해 용담정의 위치를 알아내고, 연락처를 받아 용담수도원장과 취재 일정을 잡았다. 수운의 붉은 넋이 깃든 그 길을 달려가면서 내내 죄송했던 마음을, 비온 뒤 청량함으로 여름차림을 한 용담정이 “괜찮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라고 위로하듯이 어루만져 주었다. 민초들의 아픔과, 민중들의 꿈을 천도교보다 더 밀접하고 깊게 담아냈던 종교가 또 있을까? 천도교가 발생한 용담성지의 녹음은 짙건만, 아직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다. 경상도 땅 경주가 1905년 천도교로 이름이 바뀐 동학의 발상지이자 수운 최제우가 태어나고 득도하고 묻힌 성지이기 때문에 더 경사스러운 도시이며, 더 풍부한 정신문화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때, 용담성지의 진정한 봄은 꽃필 것이다.

◈건천IC 나와 자동차 전용도로 이용

용담정은 경상도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갈 수 있다. 경부고속국도 건천IC에서 내려 경주 포항 방면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다가 2번째 터널에서 내려 좌회전(경주 시내와 반대 방향)하여 조금 가면 경주 디자인고등학교가 나온다. 거기서 300~400m만 가면 왼쪽 용담정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좌회전하여 올라가면 바로 구미산 용담정이다. 천도교에서는 용담정을 포함한 이 일대를 용담수도원으로 성역화하였다. 마치 자연속에 잘 단장된 전통마을같다. 대형버스도 여러 대 주차할 수 있는 널찍한 주차장을 낀 구미산 용담정은 지금은 성역화되어 있지만 수운 생시에는 참담한 은둔 장소였다. 한겨울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겨우 세 시간을 제외하고는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엄청난 추위와 싸우며 수운은 용담정에 홀로 남아 도를 구하였다. 바깥 세계와 단절한 채, 도를 구하지 못한 채 결코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던 ‘출간인부동귀(出間人不同歸)’의 각오로 6개월간 기도하던 수운은 1860년(경신년) 음력 4월 5일, 한울님을 만나는 종교체험을 하였다. 이를 통해 수운은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한울님이 다른 어느 초월적인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 안에 모시고 있음을 깨닫는 시천주(侍天主)를 갖게 되었다. 자신만 한울님을 모신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 나아가 우주의 모든 존재가 다같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 사상은 후천 개벽의 뼈대이다. 이 시천주 사상을 3대 교조 손병희는 ‘인내천’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시인 김지하·도올 김용옥 발걸음

수운 선생을 알리는 데 가장 열정적인 시인 김지하, 도올 김용옥은 이곳을 자주 찾는다. 최근에는 손학규 범여권 후보도 다녀갔다. 김지하 시인의 수운 사랑은 특별나다. 그는 스스로를 낮춰 “더러운 몸으로 성지에 오를 수 없다.”며 용담정을 찾을 때마다 곧장 용담정에 오르지 않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용담교에 멍석을 깔고 수운 선생께 참배를 올린다. 그만큼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천도교에서는 절을 하지 않는다는 박남성 용담수도원장의 조언을 따라, 용담교 건너 산기슭에 흐르는 청수를 떠와서, 수운 선생을 기리는 긴 묵념을 바쳤다. 수운은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며, 세상을 여는 도를 천명한다 하여 동학을 창시하였다. 수운이 강조한 시천주의 사상에 따라 아내와 남편 자식이 서로를 신처럼 대하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서로를 한울님처럼 귀히 대접하고, 배운자와 못 배운자가 서로를 천주처럼 모실 때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하는 데도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개판세상을 벗어나지 못할까. 수운의 시천주 사상이야말로 21세기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근본인지도 모른다. 무너져가는 왕조의 끝자락, 온갖 말기증상이 난무하던 시대에 학대받고 핍박받던 민초들에게 “내 몸이 곧 한울님”이라는 동학의 메시지는 마지막 남은 희망가였다.

◈1975년 오늘날 용담정 준공

수운의 포교방식은 검가를 부르며 검무를 추는 것으로 놀이형식의 포교였다. 교인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당시 올린 장궤에는 '문경새재를 넘으니 시천주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적혀있을 정도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세가 확장되자 동학은 사학(邪學)이라고 규정되었고, 나라에서도 수운의 후천개벽설이나 칼놀이 포교를 문제 삼아 대구 장대에서 좌도난정(左道亂政)의 죄목으로 효수시켰다. 1864년 3월 10일의 일이었다. 수운의 순교 이후 폐허로 방치되어 오면서 중건과 퇴락을 거듭하던 용담성지는 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성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천도교인들은 모금운동으로 1975년 10월 28일, 오늘날 용담정을 준공하였다. 용담정에는 수운 선생의 영정이 살아있는 듯 모셔져 있고, 선생이 남긴 단 한 점 유필이 걸려 있어 숙연함을 더해준다. 용담정 위, 사각정에는 부친인 근암공 최옥의 문집 근암집 목판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용담수도원 아래, 성지 입구 왼쪽에 수운 대신사 동상(1988)이 서있다. 오는 8월 1일부터 14일까지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천도교 체험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용담정에서 산책로를 따라 포덕문으로 내려오다보면 왼쪽 산기슭에 있는 돌바위에 오응선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응선은 수운의 효수형 이후 방치되어 오던 용담정을 복원한 인물이자, 황해도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천도교에 입도시킨 인물이다. 비바람에 닳아 겨우 읽을 수 있는 정도이다. 용담수도원으로부터 약 1km 아래로 내려오면 180여 년 전 수운이 태어난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용담마을이다. 하지만 어디서도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없다. 수운 생가는 사라지고, 이곳에는 유허비만 외롭게 서있다. 그로부터 또 약간 떨어진 산중턱에 수운의 유해를 모신 태묘가 있다. 태묘는 기가 막히는 절경을 자랑한다. 최근 경주지역 시민, 문화단체들이 수운 관련 성지를 제대로 성역화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천도교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의 고향인 포항(영일 신광)에서도 성역화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구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성사되지 못하였다. 조해녕 전 대구시장은 “우리 지역에서 원효 일연 수운이 600년 간격으로 위대한 탄생을 하였고, 그들이 대구문화의 뿌리인데도 연구가 부족하다. 특히 수운 선생은 한을 품고, 세상을 떴는데도 학문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연구 용역을 맡기려고 한 적이 있다.”며 수운복권운동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토하였다.

◈女奴를 딸·며느리 삼아

40에 생을 마감한 수운은 십대 후반에 아버지 근암공을 잃은 후, 3년상을 마치고 도를 찾아 3천리 방방곡곡을 다녔다. 십여 년을 걸으면서 수운은 팔도강산을 짓누르는 굶주림, 학대, 질병, 학정을 보았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주유팔로(周遊八路)를 통해 타락한 이기주의인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세태가 세상을 위기로 몰아넣었음도 보았다. 그래서 저서 ‘용담유사’에 매관매직을 일삼는 권력자, 돈을 산같이 쌓아놓고 있는 부자, 유리걸식하는 패가자, 뿌리없이 떠도는 걸인들까지 모두 자기 하나만 살려고 하는 타락한 이기주의에 물들어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적었다. 용담정에서 목숨을 건 정진 끝에 도를 얻은 수운이 우리나라 최초로 일으킨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성지는 더 알려지고, 더 우리 곁으로 다가와야 한다. 동학혁명, 3·1운동, 독립운동을 통해 잠자던 한민족의 독립정신은 깨어났고, 정신은 뿌리내려졌다. 수운은 링컨이 노예 해방을 주장하기 3년 전에 벌써 ‘사람은 모두 한울님’이라며 집의 종들을 해방시켰고, 여노 2명을 며느리와 수양딸로 맞아들였다. 행동과 이론이 똑같은 실천가였다. 천도교 발생성지 경주 용담수도원을 나서는데, 천도교도이자 문화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던 백범 선생의 외침이 크게 울려온다. “한 나라가 완전히 독립하려면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

글·최미화기자 magohalmi@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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