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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새論 새評] 나도 메갈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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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18:55:33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진중권 칼럼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현 카이스트 겸직교수

성차별 언행 자체 의식 못하는 남자들

‘남성혐오’ 메갈에 발끈 비열한 공격

견해 다른 웹툰작가 살생부도 만들어

‘여성들 왜 저렇게 화났나’ 먼저 살펴야

“여자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문구가 적힌 티셔츠 한 장으로 난리가 났다. 성우 김자연 씨는 이 티셔츠 사진을 올린 죄로 녹음한 목소리를 삭제당하는 변고를 당했다. 극성 마초들이 넥슨으로 몰려가 요란하게 항의를 했기 때문이다. 티셔츠에 적힌 문구는 정치적으로 완벽히 올바르다. 도대체 어디에 화가 난 걸까? 문제는 그 티셔츠가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메갈 사이트에서는 나 역시 ‘개저씨’나 ‘한남충’이라 불린다. 욕먹으면 솔직히 기분 더럽다. 게다가 난 그 욕을 ‘한국남자’라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진중권’이라는 고유명사로 먹는다. 사소한 말꼬리 잡아 애먼 사람 ‘여성혐오주의자’로 낙인찍는 게 페미니즘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항변해야 소용이 없다. 그래 봤자 감히 여성에게 페미니즘까지 가르치려 드느냐(‘맨스플레인’)고 타박이나 듣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감이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 판단은 판단이다. 메갈을 공격하는 남자들의 논리는 한마디로 ‘메갈은 여자 일베’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회적으로 배척해야 할 두 집단이 있다. 하나는 여성을 혐오하는 일베요, 다른 하나는 그것을 남성 혐오로 ‘미러링’하는 메갈리안이다. 이들은 이 두 극단만 사라지면 자기들처럼 양식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건전한 사회가 실현된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다.

이들이 모르는 것은, 메갈의 ‘미러링’이 그저 일베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일베는 큰 문제가 아니다. 메갈리안들이 설마 사회에서 아예 내놓은 애들 때문에 저러겠는가?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일베와 다르다고 굳게 믿는 남자들이 일상에서 밥 먹듯 저지르는 성차별적 언행이다. 나를 포함해 남자들은 종종 자기가 성차별 언행을 했다는 사실 자체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게 메갈에서 하는 ‘미러링’의 진짜 표적이다.

일베가 별나라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인가? 그들은 ‘한남충’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성차별적 언행의, 익명적이기에 더 노골적인 버전일 뿐이다. 일베는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자신은 일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야무지게 착각하는 빙산의 거대한 밑동이다. 설사 메갈의 ‘미러링’에 짜증을 내더라도, 동시에 헤아려야 할 것은 여성들이 대체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 하는 것이다.

메갈에서 미러링으로 던지는 남성 혐오에 발끈하는 남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대한민국 여성들은 그들을 그토록 발끈하게 만든 그런 류의 발언들, 아니 그 이상의 험악한 발언들을 지금까지 늘 들어왔으며,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듣고 있으며, 앞으로도 평생 듣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발언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평생 듣고 살았던 것이자, 나아가 그들의 딸들이 평생 듣고 살아야 할 것이기도 하다.

실도 여러 가닥 묶으면 밧줄이 되듯이 그 초라한 남근들이 다발로 묶여 큰 승리를 거둔 모양이다. 그들은 성우 김자연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가수 안예은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정의당의 공식논평을 내리게 했으며, 몇몇 웹툰 작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빛나는 승리를 논쟁과 토론으로 얻어냈다면 참 귀했을 것이나, 남의 밥줄 끊어놓겠다는 비열한 협박으로 얻어낸 양아치 같은 승리라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성우도, 가수도, 이제 SNS로 제 생각을 말할 수 없게 됐다. 기업체에서는 아예 작가들에게 SNS 활동으로 물의를 일으킬 경우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누가 대한민국을 저 남근 다발이 무서워 말도 못 하는 나라로 만들었을까? 이들의 정신과 감성이 일베랑 뭐가 다른가?

나 같은 ‘한남충’ ‘개저씨’의 눈으로 봐도 너무들 한다. 이제야 메갈리안의 행태가 이해가 될 정도다. 듣자 하니 이들이 자기와 견해가 다른 웹툰 작가들의 살생부까지 만들어 돌렸단다. 그 살생부에 아직 자리가 남아 있으면 내 이름도 넣어주기 바란다. 메갈리안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빌어먹을 상황은 나로 하여금 그 비열한 자들의 집단을 향해 이렇게 외치게 만든다. “나도 메갈리안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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