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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촌닭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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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2 00:05:00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1960년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수상
가을의 시작이라는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덥다.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오기 전까지는 견뎌야 할 것이다. 그 사이에 있는 게 말복이다. 통상적으로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고 바로 올해가 그러한 경우인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삼복에 먹는 음식은 주로 더위에 지친 몸을 보하는 것으로 이때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것이 닭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국 곳곳에 ‘가든’이 생겨나고 ‘마이카족’이 된 가장이 식구들을 차에 태워서 가든의 정원이 아닌 방 가득히 둘러앉아 닭백숙을 시켜먹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가든 간의 맛이나 가격 차이는 많지 않았다. 닭이라는 재료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고 닭백숙이나 닭볶음탕의 조리기법이 복잡하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해가 지나면서 가든의 닭백숙은 몸에 좋다는 한약재가 들어갔다는 식으로 첨가물이 진화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닭의 ‘신분’이 토종닭, 촌닭, 산닭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 국민이 소비하는 그 많은 닭을 대량 사육하려면 양계장 아니면 안 될 것이고 양계장의 닭이라는 게 큰 차이가 날 것 같지 않음에도.

토종닭이야 재래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데 가든마다 너도나도 다 토종닭을 취급한다 하니 ‘차별성’ 있는 촌닭이 등장했다. 촌닭은 전통과 ‘토속성’ 면에서 토종닭보다 더 앞선다는 것일 텐데 나는 가든 간판에서 촌닭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웃음을 터뜨리기만 했지 실제로 들어가 먹어본 적은 별로 없었다. 어린 시절 구식 혼례를 치를 때 보자기에 묶여 중인환시리에 끌려나와 있던 닭의 두리번거리는 눈이 떠올라서였다.

산닭은 산에 놓아 기르던 닭을 잡아서 조리해준다는 의미인데 ‘살아 있는’ 닭과 인상이 겹치기도 했다. 내가 몇 번 갔던 어떤 ‘산중 가든’에서는 실제로 산에 닭을 놓아 기르다가 손님이 오면 주인이 쫓아가 그중 한 마리를 ‘생포’해서 손님 앞으로 데리고 왔다. 손님 보는 앞에서 장모가 사위 대접할 때처럼 닭 모가지를 비틀고 손님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곧 조리되어 나왔다. 방 바깥에서 이따금 산닭들이 우는소리를 들으며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육식동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닭뼈를 훑던 기억이 난다.

그때 가든에서 굳이 닭 앞에 토종과 촌, 산을 가져다 붙인 이유는 그것이 소비자에게 오염되지 않고 옛날 그대로의 맛을 내며 푸근한 인심을 덤으로 준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런 ‘마케팅 기법’은 유력하게 통용이 된다. ‘농부가 직접 재배해서 가져온 채소’라고 낡은 칠판에 써놓고 다듬어지지 않은 채소를 판매하는 대형 마트의 식료품 매장을 연상해 보면 쉽다. 채소는 농부가 재배하는 것이지 어부나 나무꾼이 재배하는 게 아닌데 굳이 우리 모두의 황금기인 초등학생 시절을 연상케 하는 칠판에 적는 이유는 뭘까.

세계화 덕분에 가축, 농산물의 품종은 단일화되고 농업은 산업화되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야채 주스에 들어가는 채소의 원산지가 서너 개의 대륙에 걸쳐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재료는 유럽이나 중남미에서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격 경쟁력이 다른 모든 경쟁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농업, 음식점이 살길은 어디에 있을까. 혹시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잠시 잊어버렸던 ‘촌닭’에 있지는 않을까.

내가 말복에 먹는 닭백숙의 닭이 바로 그 지역에서 생산된 것임을(지역 특산) 식당에서 명백히 표시했으면 좋겠다. 다른 식재료 또한 근처에서 어떤 농부가 재배한 신선한 것이고 (산지 직송) 음식에 불필요한 첨가물을 넣지 않으면서 (무첨가)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 것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것이라고 한다면 더 맛있을 것이다.

성장기에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왔던 세대가 이미 장년이 되었고 소비재, 서비스 산업의 최대 소비자가 되었다.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할 방법은 그들의 고향, 농촌과 어촌과 산촌에 남아 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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