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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1일(목) ㅣ
[대구 근교 산의 재발견] 김천 수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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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백두대간 전망대
 
청암사, 수도암은 장희빈과의 암투에서 밀려난 인현왕후가 은거한 사찰로 유명하다. 사진은 수도암 대적광전. 매일신문 DB
 
수도암에 핀 자색 꽃무릇. 한상갑 기자

수도산은 이름에서 보듯 ‘도를 닦는 일’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산의 본래 이름이 불령산(佛靈山), 선령산(仙靈山)이었던 것을 보면 부처의 영기(靈氣)와 도인들의 영적 기운이 짙게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량의 기운과 수도(修道) 외 산맥의 가치에서도 스펙과 위용은 빠지지 않는다. 거창 의상봉과 단지봉~수도산~양각산~흰대미산을 잇는 12개 준령은 영남알프스의 산군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백두대간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적통(嫡統) 대접을 받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산세도 좋고 고봉 급(1,317m)이지만 주변 대간 줄기인 황악산, 가야산에 가려 관심을 받지 못했다.

◆청암사~수도암~정상코스로 오르다=청암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찰 경내를 잠시 둘러본 후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잡아 임도를 치고 올랐다. 30분쯤 지나니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가면 청암사계곡을 따라 수도암 갈림길~정상으로 오르고, 왼쪽 길로 접어들면 백련암을 거쳐 수도암~정상으로 연결된다. 무심코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는데 길이 흐릿하고 등산로가 끊어져 서너 번 ‘알바’를 했다. 알고 보니 청암사계곡 코스는 오래전에 폐쇄된 상태였다.

사전조사를 게을리 한 기자도 책임이 있지만 표지판에 이런 안내를 해놓았다면 이런 낭패는 없었을 것이다. 청암사에서 수도암 갈림길까지는 3.8㎞, 약 2시간 거리고 수도암에서 정상까지는 다시 2.4㎞를 더 가야 한다.

◆황악~덕유산 백두대간 한눈에=청암사를 출발한 지 4시간,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커다란 돌탑이 외로운 산객을 맞았다. 정상은 화려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사방을 활짝 열어 전망을 틔우고 있었다.

대덕산과 성산을 연결하는 수도지맥은 백두대간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탓에 대간의 족보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대신 조망을 열어 백두대간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북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황악~민주지산~덕유산에 이르는 대간 주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수도산을 ‘대간 전망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거침없이 남하하던 산맥은 괘방령, 황악구간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남진(南進)을 준비한다. 그 뒤로 경남의 산들이 파노라마를 그린다. 황석, 거망, 금원, 기백산이다. ‘거창의 산에는 실패가 없다’는 속설을 입증하듯 1,000m급 준령들이 위엄을 뽐내고 있다.

◆왕후의 인품`덕망 서린 인현왕후길=정상 등정을 마치고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하산은 수도암~인현왕후길 입구~수도리마을로 잡았다. 오는 길에 들른 수도암은 암자라기보다는 중급 사찰 규모였다. 요사채만 10여 동에 이르고 전체 면적도 축구장 두 개 넓이는 되어 보였다.

도선국사가 이 터를 발견하고 너무 좋아 사흘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대적광전 앞에서 아래를 조망하니 이 말이 절로 이해가 됐다.

인현왕후길은 바로 수도암 밑에 있다. 이 길은 당시 왕후가 거닐던 산책로를 김천시가 복원한 것이다. 숙종의 계비(繼妃)였던 왕후는 장희빈과 암투에 밀려 폐서인 된 후 이곳에 3년간 머물며 복위를 기원했다. 당시 인현왕후의 정치적 배경이었던 서인들은 이때 같이 몰락의 길을 걸었고, 그 자리엔 장희빈의 후견 세력인 남인들로 채워졌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궁중 암투에서 도태되긴 했지만 왕후는 어진 인품과 덕망으로 조정과 민간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갑술옥사 때 왕비로 복권=청암사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훗날 극락전을 중창할 때 시주록이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궁중 상궁 26명의 이름이 올라 있었던 것. 영남의 외딴 사찰에 궁중 여인들의 시주를 두고 추측이 난무했다.

어쨌든 이런 인연으로 청암사는 조선 후기까지 궁중 여인들이 사찰을 드나들며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인현왕후길은 호젓한 산길과 수도리계곡과 사찰이 어우러진 최적의 트레킹 코스다. 하산 길 수도리계곡에 발을 담그니 비복(婢僕)을 앞세운 왕후가 한적하게 숲길을 걷는 모습이 오버랩 된다. 왕후는 정치적 격변기에 유배의 울분을 기도와 산책으로 달래며 후일을 도모했다. 이런 기도, 풍수 덕인지 왕후는 1694년 갑술(甲戌) 옥사 때 복위돼 궁궐로 돌아갔다.

밤낮으로 자비를 베푼 부처의 덕인지,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이라는 풍수의 지세 덕인지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왕후가 불운을 딛고 앞길을 밝게 열어갔으니 이 터가 명당이었다는 것은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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