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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토) ㅣ
[베낭 메고 세계 속으로] 러시아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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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아시아에서 유럽을 느낀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독수리 전망대서 바라본 전경. 2012년 건설된 전체 길이 2.1㎞ 세계 최장 사장교인 금각교가 보인다.
 
유럽풍 건물로 이어진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
 
혁명광장. 혁명탑과 동상 너머로 스베틀란스카야 대로가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잠수함.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토크. 인구 약 60만 명의 항구도시이며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빠르다. 가까운 거리와 루블화 가치가 많이 떨어진 덕분에 새로운 여행지로 부상하는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태평양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부터 점점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태평양 함대기지가 있는 군사 요충지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보낸 군수품들을 들여오는 태평양의 주요 항구였으며 횡단열차를 이용해서 군수품을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대부분 여행자들에게 꿈의 코스인 러시아 횡단열차의 시작과 끝 지점이며 아시아에서 유럽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김해공항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러시아항공이 주 6회 운항을 하며 비행기로 1시간 50분 거리이다. 러시아 하면 심리적으론 굉장히 먼 곳처럼 느껴지지만 물리적으론 매우 가깝다. 2박 3일이나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오기에도 딱 좋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서면서 엔진 출력을 최대로 높인다. 몸이 뒤로 밀리자 이내 지상을 박차고 오른다. 필자는 이 구간을 10여 회 다녔는데 갈 때마다 중간중간에 기류가 심해 동체의 흔들림이 심하다. 밤늦게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향하지 않고 갈 때마다 가끔씩 찾는 트리니티 아이리쉬 팝으로 갔다. 이곳은 조그만 무대에서 보컬이 흥겨운 음악을 뿜어대는 유명한 클럽이다. 춤을 추는 사람들과 다바이(러시아말로 건배)를 외치며 연신 잔을 비우는 사람들로 언제나 열정이 묻어난다. 보드카와 소시지를 안주 삼아 흥겨운 음악에 같이 어깨를 맞춰본다.

다음 날 오전에 블라디보스토크 중앙에 위치한 혁명광장으로 갔다. 과거 극동지역에서 소비에트정권을 위해 싸웠던 병사들을 위한 기념탑이 있다. 도시의 중심가인 스베틀란스카야 대로의 시작 지점으로 각종 행사를 치르는 장소이며 주말에는 반짝 시장이 열린다. 광장 바로 옆 큰 빌딩은 연해주 주청사이며 맞은편에는 기차역이 자리 잡고 있다. 주청사 반대편에는 잠수함 박물관이 있다. 볼거리가 한곳에 모여 있어 걸으면서 느긋하게 관광할 수 있다.

잠수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함 10여 척을 침몰시키며 맹활약한 것으로 전한다. 기관실, 조타실, 어뢰실 등 좁지만 세밀하고 오밀조밀한 모습이 볼만하다. 잠수함 옆에는 전쟁 때 숨진 병사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넣었다.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일 년 내내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꽃’이 별모양의 한가운데서 빛나고 있다. 잠수함 박물관을 지나 10여 분 걸어가면 독수리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다리 건너편 루스끼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루스끼섬을 연결하는 금각교가 한가운데서 독특한 모습을 연출한다. 이 장면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대표하는 그림이다. 금각교는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건설되었으며 전체 길이가 2.1㎞로 세계 최장의 사장교이다.

저녁식사를 위해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관에 들렀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종업원들이 싹싹하게 잘 대해주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친절하지가 않다. 신참인 듯한 종업원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주문을 받길래 “아가씨는 언제 왔어요?” 하고 물으니 “그건 왜요. 1년 넘었어요” 하면서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내가 올해 여기 네 번째 왔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라고 하니깐 종업원이 얼굴을 붉히며 금세 주방으로 사라진다. 산삼주를 파는데 병째로는 비싸고 양도 많고 해서 그램(g) 단위로 팔기도 한다. 평양소주 한 병과 산삼주 200g을 시켜 명태 무침과 해물탕을 안주 삼아 잔을 비우니 어느새 취기가 오른다. 냉면으로 마무리하고 숙소로 향했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어제까지만 해도 종일 우중충한 날씨였는데 오늘은 하늘이 시리도록 파랗다. 이런 날씨에는 바닷가가 최고다. 농반진반으로 러시아는 좋은 3가지(여자, 보드카, 흑빵)와 안 좋은 3가지(남자, 날씨, 도로)가 있다고 한다. 나쁜 것 중 날씨가 해결되었고, 아름다운 여성들은 그대로 있으며 보드카는 쉽게 구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샤마르 해변으로 갔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해수욕장 중 제일 크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숙소 잡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날씨까지 좋으니 사람들로 넘쳐난다. 현지인들은 주말이면 싸온 음식으로 요리해 먹는다. 가족 단위로 가벼운 운동이나 게임을 즐기면서 느긋하게 휴일을 즐긴다. 어렵게 구한 민박집은 해변을 낀 2층이다. 창문을 여니 길게 이어진 해수욕장과 그 너머로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있다. 수영복 차림에 캔맥주 한 개를 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아슬아슬한 토플리스 차림의 여성들이 사방에 있어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으면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할 뻔했다.

러시아에 많이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모스크바, 하바로프스크, 캄차카,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등 다양한 곳에서 여행 경험을 했다. 러시아인들은 운전자의 교통질서, 여성과 어린이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몸에 밴 듯하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지나가는 차는 무조건 선다. 흡연율은 높지만 지정된 장소 이외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사람들로 인해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러시아인들은 한번 친해지면 의리와 정은 꽤나 깊이 오래간다. 필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귄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친구들은 차량 등 여행에 필요한 전반적인 편의를 제공한다. 이 친구들이 한국에 여러 번 다녀간 적도 있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는 활동적인 여행에 관심이 높았지만 차츰 유적에 빠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현지 문화에 눈길이 더 간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글 사진 황병수(여행가·영남대병원 방사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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