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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4일(일) ㅣ
백석이 사랑한 여인 기생 '진향'…『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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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9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1936년 운명적 첫 만남 3년간 뜨겁게 사랑하지만 백석은 다시 만주로 떠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승은/ 책이 있는 마을

최근 한 예능 프로에서 시인 백석이 지극히 사랑했지만 말 한마디 못 걸어 보고 친구의 아내가 된 ‘난’이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첫눈에 반한 여인을 보고 싶어 경남 통영에 세 차례나 갔었고, 실연의 아픔을 술과 시로 달래던 그가 남긴 시는 통영 충렬사 앞 ‘백석 시비’로 남아있다. 뚜렷한 이목구비, 긴 목, 큰 키로 뭇 여성을 설레게 하던 당대 최고의 모던보이 백석이 사랑한 여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불을 지핀 셈이다.

한편 이 여성만큼이나 백석의 여인으로 유명한 이가 바로 길상사가 된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시주한 기생 진향(眞香)이다. 그는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하는 여러 여성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여인으로, 자야(子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소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문학인과 대중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시인 백석과 그가 사랑했다고 알려진 여인 기생 진향의 달달하고 애절하고 비극적인 로맨스 소설이다. 작품은 시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기생 진향의 시각에서 서술됐다. 지은이는 특별한 작품발표 경력이 없는 신진 작가 이승은이다. 저자는 자야의 자전적 에세이 '내 사랑 백석', 안도현의 ‘백석평전’ 등을 참고해 시인과 기생의 사랑을 풀어냈다고 한다.

소설은 이들의 사랑이 끝난 뒤, 만주로 간 백석과 5년간 연락이 끊긴 진향이 대원각을 찾아온 송지영으로부터 두루마기를 돌려받으며 시인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명 진향의 어린 시절 집에서 부르던 이름은 하늬, 본명은 김영한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잃고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 속아 알거지 신세로 기생이 된다. 기명 진향은 그의 스승 금하 하규일 선생이 붙여준 이름이다. ‘자야’라는 아호(雅號)는 훗날 백석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또 생전 김영한 여사는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했으니,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나타샤=진향=자야'라는 공식을 기억해야 한다.

소설 속 진향은 기생이 되기 전, 하늬일 때 그의 집에서 소년 백기행을 만난다. 이때 기행이 집에 두고 간 '테스' 책은 두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신여성인 진향의 꿈을 대변하는 장치다. 가난 때문에 결혼한 남편이 초야도 치르지 않고 우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면서 과부(寡婦)가 된 영한은 조선권번(券番)으로 간다. 이후 금하 선생으로부터 국악의 바탕을 전수받아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고 예기로 인정받는다. 소년과의 만남이 기억으로 남을 무렵, 재능을 높이 여긴 해관 신윤국의 도움으로 그는 1935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해 해관이 홍원형무소(함흥)에 투옥됐다는 소식을 듣고 유학을 포기하고 함흥으로 나선다. 이곳에서 국수를 먹으러 온 백석을 우연히 또 보게 된다.

한편 진향은 면회가 금지된 해관을 만나게 해 줄 ‘높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권번에 다시 찾아간다. 이곳에서 이들의 세 번째 만남이 이뤄진다. 극적 재회는 운명적 만남을 강조한다.

실제 이들의 첫 만남은 영한이 기생이 된 뒤인 1936년이다. 당시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있던 백석이 동료교사 송별회를 하러 함흥관에 갔을 때다.

"오늘부터 진향 당신이 내 몸을 맡아주오."

성급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파격적으로 시작된 이들의 연애는 3년간 이어진다. 백석이 만주로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지만 백석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자야는 자신을 두고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린 백석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운명으로 여기고 청진동으로 이사한다. 다시 자야를 찾아온 백석은 청진동 집에 함께 살며 살림을 차린다. 백석은 만주에 함께 가자고 하지만 자야는 류춘기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끝내 그를 혼자 떠나보낸다. 1939년, 이렇게 이들의 3년은 끝이 난다.

북방의 작은 방에서 시인과 기생이 나누던 애틋한 추억과 사랑싸움, 고난과 반대에도 백석이 자야를 택하고 다시 서울로 간 이야기, 청진동 집에서 키운 사랑 등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문학적 재구(再構)다. 이 연인의 뜨거운 사랑은 대범하고 낯뜨겁기까지 하다. 대담한 사랑과 동거생활에 대한 묘사는 사랑한 연인이었지만 헤어져야 했던 두 남녀, 특히 자야의 슬픔과 기다림은 더욱 극대화했다. 이 밖에 책은 실존 인물, 지명, 역사적 사건, 작품 등을 언급해 이야기를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책 마지막 부분 소개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백석의 작품 가운데 마지막으로 발표된 시다. 독립 이후 그는 북한으로 가 두 번 결혼하고 1996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월북시인이 아니라 평안도 정주가 고향인, 분단 전에 북한에 머무르고 있었던 재북시인이다. 1987년 해금으로 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질 무렵 자야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진향은 그가 자전 에세이를 펴내면서 '백석이 사랑한 여인'으로 주목받았다. 광복 이후 각계 인사들과 교분을 쌓고 영향력을 펼쳐오던 그는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주인이 된다. 대원각의 원래 주인에게 대원각을 돌려주겠다고 했던 진향은 별안간 '무소유'에 감동해 1987년 갑자기 법정 스님에게 희사한다. 길상사와 대원각이 애틋한 사랑의 표상처럼 인식된 것도 이때부터다. 기생 진향은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고, 길상사에는 길상화 공덕비와 사당이 자리 잡았다. 백석 평전을 쓰고 자야 여사와 한동안 왕래했던 영남대 이동순 교수는 추천글에서 "기생과 시인, 승려를 엮으려는 세간의 시도는 비속하고 무리한 엮어내기"라며 "백석이 알았다면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하며 거기서 이름을 빼라고 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는 콘서트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번에는 소설이다. 사실 관계를 떠나, 백석 시인,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때, 문학적 상상으로 백석을 다시 만나보는 건 어떨까. 416쪽, 1만5천원.

이지현 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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