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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토) ㅣ
[내가 읽은 책] '나목'(裸木) (박완서/세계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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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9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그림: 김을련 작 '마을 쉼터'
계절을 입은 나무

                              박완서, '나목'(裸木) 세계사(2017)

부끄러운 계절에는 나무도 옷을 벗는가. 전쟁이 설움이요 가난이 죄이던 시절이었다. 6`25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민족의 비극을 한 여인의 사연으로 풀어 마음자리를 더듬어나간 박완서의 처녀작 '나목'(1970년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에 당선하며 등단)은 그렇게 헐벗고 앙상한 첫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잎이 다 지고 가지만 남은 처연한 나무를 우리는 기억한다. 박수근 화백의 '나무와 여인'에서 보았던 바로 그 이미지다.

1`4후퇴 후의 서울에서, 그 빈 들에서 살아내었던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박수근 화백의 모습 속에서 그렇게 옥희도 씨(소설 속 화백)라는 인물은 탄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경아는 누구인가. 전쟁의 참상을 겪었던 작가 자신의 거울(鏡)인가. 혹은 전쟁을 겪은 그 시대의 젊은이를 대표하는 인물인가? 그러나 필자는 상상할 수도 없다. 포탄을 맞아 피 범벅된 붉은 홑청 위에 해체된 형제의 몸. 끈적한 여름의 공포처럼 잔혹한 그 경험 속에서 경아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그렇지만 은행나무는 너무도 곱게 물들었고 하늘은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이 마당의 공기는 샘물처럼 청량하기만 한 것일까.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p.304) 전쟁과 가족의 죽음이 주는 극한의 충격 속에서 생사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경아의 아슬아슬한 마음을 보라. 보이지 않는가? 아직도 전쟁을 ‘쉬고 있는’ 이 나라는 무엇을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는 경아와 초상화부에 새로 온 화가 옥희도 씨의 꿈길 같은 짧은 만남은 노오란 은행잎처럼 찬란하지는 못했다. 갓 스무 살의 순수한 경아에게 아내와 다섯 아이를 거느린 옥희도 씨는 행복을 꽃피우기에 버거운 상대였을 테니까. 그들의 동행은 장난감 가게의 인형만큼이나 슬프다. 이렇게 작가는 겨울 속 여름과 노오란 은행나무의 가을로 이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훌쩍 세월을 뛰어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경아와 마주한다. 경아는 남편과 함께 옥희도 씨 유작전을 찾아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 앞에 선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중략)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p.376)

필자는 얼마 전 이모의 화실에서 한 그루 커다란 나무를 보았다. 굵다란 나무둥치 위에 막 돋아나듯 잎사귀가 한 잎 한 잎 그려지고 있었다. 박완서가 보았던, 그리고 자신의 필치로 다시 그려낸 나목에는 이제 잎이 돋기 시작한다. 이 시대의 작가는 봄을 확신하고 확신한다. 암울했던 시기에 꿈꾸었던 그 봄을 이제는 두 팔을 펼쳐 맞이하고자 함이다.

김서윤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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