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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3일(토) ㅣ
나무꾼 강사가 되다④…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최우수상-홍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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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2 00:05:04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신학대 교수 앞에서 종교 강의, 독학 30년 만에 꿈 이뤘다
 
삽화 이태형

나는 천상 촌놈이었다. 강남에서 내 집도 마련하고 강의도 나가며 자리를 잡았는데 서울이 싫어지기 시작하였다. 찌는 듯한 열대야도 싫었고 이웃과 주차 문제로 다투는 것도 싫어졌다.

한적한 시골로 가서 책이나 실컷 읽고 글이나 쓰며 살고 싶었다. 아내에게 넌지시 귀촌 이야기를 꺼내었더니 질겁을 하며 반대를 하였다.

나는 강의가 없는 날 경기도 일대를 누비며 이사할 곳을 물색하였다. 드디어 양평의 한적한 마을에서 빈 농가 주택을 발견하였다. 주인을 찾아 계약을 하고 다음 날 아내를 태우고 구경을 시켰다. 아내는 질겁을 하였다. 도깨비가 나올 것 같다며 반대를 하였다. 집을 팔아 절반을 줄 테니 이혼을 하든지 결정을 하라고 다그쳤다. 아내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4년 동안 신학교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마침내 합의를 보았다. 이혼 대신 이사를 하고 4년 동안 신학 공부를 위해 따로 떨어져 지내기로 하였다.

진달래가 피를 토하듯 피는 춘사월 이삿짐을 싣고 양평 양동면 금왕리로 이사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대부분 서울이 좋다고 시골을 떠나는 판국에 시골로 귀촌을 하니 이상하게 보는 것이었다. 아내는 서울에 방을 얻어 신학교에 다니고 나는 막내를 데리고 홀아비 생활을 하였다. 토담집 아궁이에 불도 때고 병아리도 기르며 전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큰아들은 입대를 하고 딸아이는 지방대학 기숙사로 떠났다.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처럼 지냈다.

강의를 하면서 보람도 아주 컸다. 일개 병장으로 제대한 내가 각군 사관학교에서 수많은 장병들에게 강의를 할 때는 감개가 무량하였다. 꿈은 정말 반드시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한 날이었다. 전국의 유명한 목사님들과 신학대학 교수님 수백 명 앞에서 강의를 한 것이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듯하였으니 주눅이 들 것도 같았으나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사자후를 토하였다. 종교가 필요한 이유와 동서양 종교의식의 차이점과 종교의 역할에 대하여 무려 2시간이나 열변을 토하였다.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강의를 마치고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훔치었다. 독학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비로소 꿈을 이룬 것이다. 산골 나무꾼 출신 소년이 종교에 있어 최고의 실력을 갖춘 신학 박사들 앞에서 두 시간이나 박수를 받으며 열변을 토했으니 말이다.

명강의는 남의 것을 도용하거나 이미 책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강의를 하면 빵점이다. 박수도 받지 못하며 나중에 횡설수설이 되면 모두 나가버린다. 망신을 도매금으로 하고 강의료는커녕 점심 대접도 받지 못한다. 독창적 강의와 체험, 해박한 지식과 정확한 판단으로 정곡을 찌르고 심금을 울려야 명강의라 한다. 나는 주로 동양철학과 한학을 절절히 섞어 깊이를 조절하고 유머를 개발하여 중간중간에 폭소를 제공한다. 개그성이 많으면 깊이가 적고 학술성이 많으면 흥미를 상실한다. 실제로 강의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시련과 봉사도 보람이다

술 익자 체 장수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귀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기업체들이 여기저기서 부도가 나고 근로자들이 실직자가 되었다. 서울역에는 노숙자들이 늘어나고 상인들은 장사가 안되어 울상을 지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이 산업강사들이었다. 기업들이 어려워지니 교육을 줄였다. 잡혀 있던 강의도 취소되고 섭외가 오지 않았다. 뜻이 맞는 강사 몇이 모여 무료 강의를 다니기로 하였다. 노숙자 쉼터나 봉사단체를 다니며 무료 강의를 다녔다.

분당의 한 교회 부속 건물을 얻어 청소년스쿨 교실을 열었다. 무슨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을 모아 대안교육을 하였다. 강사 한 명이 하루 2시간씩 강의를 하였다. 나는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동양철학과 인간의 소양 교육을 하였다.  

외환위기 기간에는 모두들 힘이 들었다. 집에 깊이 간직한 금붙이를 모두 내다 팔아 가정도 돕고 나라의 위기를 구하는 데 힘을 모았다. 나는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 강의 시간 배정을 받았다. 아내의 생활비와 등록금, 딸의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을 벌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다.

촌놈 출신이라 다시 아주 예전 직업을 붙잡을 수 있었다. 산림청에서 실시하는 숲 가꾸기 사업장에 인부로 일거리를 얻었다. 기계톱으로 간벌을 하고 목재도 운반하며 일을 하였다. 사람들은 마이크나 잡고 글을 쓰던 사람이 어찌 그리 산을 잘 타고 톱질을 잘하느냐고 의아해하였다. 나는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원래 촌놈이고 열네 살 때부터 나무꾼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숲 가꾸기 사업은 홍천군과 양평군 관내의 산에서 주로 하였다. 도시에서 몰려온 실직자들도 많았고 인근 주민들도 너도나도 참여하였다. 나는 땅도 사지 못하였고 직업도 사실상 유명무실하여져서 가까스로 일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각종 사고와 화젯거리도 많았다. 홍천에서 온 나이 지긋한 사람이 하소연을 들어 달라고 하였다. 사기꾼에게 마을 사람 열 명이 사기를 당하여 파산 지경이 됐다고 하였다. 어느 날 서울 신사 한 사람이 마을 옆 도로변에 밭을 계약하고 공장을 짓는다고 하였다고 했다. 보증을 서주는 사람들에게 취직을 시켜준다고 하여 아내들 몰래 보증을 서주었는데 농협에서 각각 1억원씩을 대출받아 모두 10억원을 가지고 행방을 감췄다고 하였다. 놀란 당사자들은 공장 지을 밭에 실어다 놓은 자재를 집에다 옮겼다는 것이다. 행방을 감춘 사기꾼 아내가 나타나 절도죄로 고소를 했다고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아내들은 이혼을 하네 마네 하며 남편들을 탓하고 어느 가정 하나 성한 가정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홍 선생님 소문 들으니 의협심이 강하고 불의를 보고 못 참으며 글을 쓰신다고 들었는데 신문사에 하소를 하여 주시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허허 난 법도 잘 모르고 변호사도 아닌데 딱하네요."

듣고 보니 안타까워 밤에 사연 그대로 적어 농민신문사와 몇 군데 신문사에 제보를 하여 주었다. 서울의 S신문과 몇 군데 신문에 실리게 되었다. 농협 중앙회에서 감사가 나오고 발칵 뒤집혔다.

어느 날 밤에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당신이 홍○○라는 사람이오?" "그렇습니다만?" "좋은 말로 할 때 홍천 사건에서 발을 빼세요. 변호사법 위반으로 쇠고랑 찰 수가 있으니까!" 전화는 협박성이었다. 대강 짐작이 갔다. 홍천 사기꾼이나 그 일당의 소행으로 여겨졌다. 잠잠해지는 사건을 다시 들추어내고 농협에 감사까지 나와 불씨를 살려 놓았으니 내가 미웠던 것이다.

아내는 남의 일에 제발 참견하지 말라며 무서워 떨었다. 신학교를 나와 전도사가 된 아내는 다른 사람이나 전도를 하였다. 나와는 종교적 견해로 자주 의견 충돌을 빚었다. 아내의 충고도 있고 해서 남의 일에 나서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런데도 도저히 넘어가서는 안 되는 사건이 있었다. 양평의 한 마을에 사는 산판 인부가 나에게 조카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려달라고 하소를 하였다. 약간 모자란 듯한 조카가 있는데 농협에서 천만원가량의 융자를 쓰고 살다가 소 네 마리를 팔아 갚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해 가을 천만원을 다시 갚으라는 통지를 받았다고 하였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영수증 용지를 보여주니 영수증 용지가 아니라며 다시 갚으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9월 19일 자는 2017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작인 홍원주 씨의 '나무꾼 강사가 되다⑤'가 게재됩니다.>

※매일시니어문학상은

전국 언론사 최초로 매일신문이 제정해 운영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학상 공모전입니다. 당선작 발표일(매년 7월 7일) 기준, 만 65세 이상이며, 미등단 및 등단 10년 이하인 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공모 부문은 논픽션(200자 원고지 100매 이상), 시(7편 이상), 수필(5편 이상) 등 3부문이며, 작품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2018년도 매일시니어문학상은 2018년 5월 초순 모집공고를 내고, 6월 초순 마감하며, 7월 7일 매일신문 창간기념호에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매일신문은 시니어문학상을 통해 선배 세대의 지난했던 삶을 기리는 한편, 문학작품을 통해 선후배 세대가 공감과 감동의 폭을 넓혀 함께 더 나은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홍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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