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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내일학교 입학하는 만학도 장계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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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2 00:05:04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배움에 나이는 숫자일 뿐, 86세 초교 새내기의 설렘
 
1932년생 최고령 합격 ‘감격’

한글 받침 헷갈려 받아쓰기 진땀

딸이 예쁜 필통과 연필 선물로 줘

내달 10일 첫 수업 ‘두근’

귀 어두워 선생님 말 안들릴까 걱정

교실 맨 앞자리에 앉혀 달라고 할 것

어릴 적 소박한 꿈을 가진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성주군 벽진면 한 시골마을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는 손바닥만 한 농토를 일구고 할머니는 길쌈을 했다.

소녀는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했지만 2, 3개월 다니다 그만뒀다.

“여자애가 무슨 학교를 다녀.”

생계가 어려웠던 부모가 딸의 공부를 마뜩잖게 여겼다.

소녀는 다른 친구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할머니의 길쌈을 돕거나 조카를 돌보며 꿈 많은 10대를 하릴없이 흘려보내야만 했다.

나이 20세가 되면서 대구 침산동으로 시집을 갔다. 고등교육을 받은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2남 2녀를 둔 엄마가 됐다.

하지만 자식 두 명은 10살도 못 넘긴 어린 나이에 하늘로 떠났다. 엄마는 가슴에 자식을 묻고 눈물을 삼키며 살았다.

남편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쳤다. 대인기피증이 생긴 남편은 1989년 63세에 하늘로 떠났다.

남은 아들자식은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세월을 보낸 엄마는 어느새 86세 할머니로 얼굴이 쪼글쪼글해졌다.

이제 남은 피붙이라곤 60대 맏딸뿐이다. 엄마는 맏딸에 의지해 10여 년째 함께 살고 있다.

“남들처럼 자식을 잘 키우고 싶었는데….”

공부를 새로 시작하면서 파란만장했던 장계순 할머니의 인생사는 다시 시작된다.

◆“못 배운 게 천추의 한” 다시 배움의 길로

할머니는 평생 눈물 마를 날 없이 살다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 어릴 적에는 책상에 앉아 붓을 드는 게 꿈이었다. 학교 선생님을 꿈꿨고 면사무소 서기도 되고 싶었다. 할머니는 어릴 적 꿈은 이룰 수 없었지만 배움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조심스레 만학도 교육 과정인 대구내일학교를 노크했다. 평생 시험을 처음 쳐본 할머니는 지난 1일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127명 모집에 148명이 응시한 초교 과정에 당당히 붙었다. 합격자 평균 나이는 67세. 48세가 가장 적고 86세인 장 할머니가 최고령이다. 지난해엔 84세가 최고령이었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내 생애 이런 기쁜 날도 있는가.” 할머니는 생시인지 꿈인지 다시 확인하고는 한없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파란만장했던 기억의 아픈 파편들이 오버랩되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더. 이 나이에 주책도 없지.” 할머니는 겸손해했다. 배움을 얼마나 열망했으면 자신의 처지를 나무랄까. 딸은 합격 선물로 어머니에게 예쁜 필통과 연필을 사주었다. 공책과 신발도 곧 사줄 거란다.

◆“딸은 내 스승” 공부에 매진했던 할머니

사실 할머니는 경로당에 자주 나갔다. 어느날 다른 할머니가 대구내일학교 팸플릿을 들고 왔다. 할머니는 뭔지 잘 몰랐지만 팸플릿을 들고 집으로 왔다. 딸에게 보여줬더니 딸이 “엄마, 못 배운 게 한이잖아, 한번 응시해봐”라고 용기를 주었다. 할머니는 주저하다가 결국 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우리 딸이 고마운 내 선생님이지.” 할머니는 시험을 앞두고 딸에게 공부를 배웠다. 교육청에서 보내준 수백여 예상문제를 풀었다. 딸은 “엄마가 처음 문제를 접했을 때는 묻는 질문을 파악하지 못했다. 객관식에 단답식 낱말을 쓰고 단답식에 객관식 숫자를 쓰기까지 했어요. 많이 답답했죠.” 그래도 할머니는 자존심을 버리고 딸에게 진지하게 배웠다.  

지난 8월 19일 시험에 응시한 할머니는 딸이 지도한 대로 시험을 쳤다. “받아쓰기가 좀 힘들었지. 한글 받침이 ‘ㅅ’ 인지 ‘ㅈ’인지 헷갈리더군. 허허.”

◆“마음 설레요” 입학 기다리는 할머니

“학교에 가면 교실 제일 앞자리에 앉혀달라고 해야지. 선생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서지. 왼쪽 귀가 많이 어두워 선생님 말이 안들릴까 걱정이니까. 그리고 좋은 동무들도 많이 사귀어야지.”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학교 가는 게 마냥 기쁘다. 21일 대구내일학교 입학식이 있다. 할머니는 딸과 손잡고 입학식에 갈 예정이다. 8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처음 가는 입학식이다. 할머니는 입학식 후 10월 10일부터 명덕초등학교에 개설된 대구내일학교 성인반 수업을 받는다. 할머니는 이천동 집에서 10분 걸어나와 대구도시철도 3호선을 대봉교역에서 탄 뒤 명덕역에 내려 학교까지 5분 정도 걸어 등교해야 한다. 할머니는 학교를 잘 다니기 위해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귀가 좀 어둡지만 정신은 또렷하다. 말도 또박또박 정확하다. 10년 전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로 눈도 잘 보인다. 단지 5, 6년 전 고관절 부분 이상인지 거동이 약간 불편할 뿐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외출할 때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아침, 저녁 운동도 한다. 신천변을 따라 하루에 1시간 이상 걷는다. 할머니는 유모차를 끌고 혼자 등교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부는 계속…자서전 쓰고 싶어”

할머니는 신문 보기를 좋아했다. 경로당에 가는 이유도 신문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신문은 교과서였다. 글은 딸에게 배웠지만 해독은 신문을 통해 넓혔다. 신문이 좋아 경로당 신문을 자주 집에 들고왔다. 할머니는 경로당 어르신들의 못마땅해하는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딸은 “엄마가 신문을 자주 봐 정신 건강을 아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는 기억력이 대단하다. 뭘 한 번 들으면 까먹지 않는다. 남의 집 사람 생일이나 기제사 날짜까지 다 파악할 정도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한자도 배우고 싶어 한다. 학교 가면 천자문 정도는 떼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손재주도 뛰어났다. 복지관에 나가면 한지공예로 손거울이나 목걸이를 잘 만들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진학할 계획이다. “공부를 마치면 힘겨웠던 인생사를 글로 남기고 싶어.” 할머니는 글을 배워 자서전 하나 남기겠다는 새로운 꿈을 가지고 있다.

글 사진 김동석 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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