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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어머니 소묘(素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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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3 00:05:00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박남일
(1) “이거, 아범 글이더라.” 어머니가 건네신 건 나의 두 장짜리 전상렬 시집 서평이 실린 ‘대구예술’ 낱장이었다. ‘저한테 책 있으니 필요 없어요’란 말을 꿀꺽 삼켰다. 신문지 책 나부랭이를 한데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뜯어 넣다 눈에 띄었을 자식의 얼굴. ‘아이고야, 갸를 불구덩에 밀어 널 뿐했네’ 하며 거둬들이셨을, 그리고 식구들 손 안 가는 은밀한 데다 여남은 날은 좋이 건사하셨을 그 정성이란, 지쳐 돌아온 탕아를 끌어안아 등 토닥여 주는 그 모정과 무에 다르랴. 불 앞에서 당신은 하염없이 자식 생각하셨으리라. 난분분한 연기에 기침 쿨룩이며, 시종여일 엉뚱하기만 한 자식의 삶을 안쓰러워하셨을까. 바람 수그러져 불길 야울야울 오를 때면 이름 석 자 다시 들여다보며 홈홈해지셨을까. 그것도 잠깐, 난데없이 나타난 새카만 도둑괭이에 흠칫 놀라 ‘이끼나, 여기가 니 집이가’ 발그레 타들어가는 부지깽이 휘두르셨을까. 눈 깜짝할 새 어른 키 높이 흙담엘 사부랑삽작 뛰어올라 너붓거리는 호박잎 새로 상(相)통 내미는 놈에게, 욱신대는 정강이 지그시 누르며 선망의 눈길 보내셨는지.

(2)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배웠건만 지금도 알쏭한 게 있으니, 고대 국가의 형벌 중 투기죄에 관한 것이다. 투기(妬忌)라, 여자가 자기 가슴에 돌을 던지다? 부여의 법 중에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조목이 있고,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本紀)’에는 ‘중천왕(中川王)은 사랑하는 후비 관나 부인(貫那夫人)이 왕비에 대해 투기한다 하여 그녀를 자루에 넣어 강에 던졌다’고 돼 있다. 아무리 가부장권이 엄한 사회였다 하더라도 강샘이 죄라는 것도, 더욱이나 살인과 어금지금한 것이었다니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술과 친하신 선친은 여색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거개가 대구사범학교 동기들과 함께한 사진들 중 전혀 색다른 흑백 사진 한 장. 청도 남산 중턱의 낙대폭포(落臺瀑布)쯤일까. 바위옷이 듬성듬성하고 ‘태순’이란 이름자가 괴발개발 새겨진 절벽 앞. 들마루 위에 러닝 팬츠 바람의 중년 남자 다섯과 새파란 아녀자가 앉았다. 셋은 뒤쪽에서 싱긋거리고, 가슴께를 줄무늬 스카프로 가리고 보잇한 빛깔에 잠자리 날개같이 하르르한 원피스를 걸친 여인은 입 꾹 다문 아버지와 유들유들 웃음 짓는 남정네의 팔을 감은 채, 못물 들여다보는 낚싯대처럼, 얼굴 뺀 윗몸을 베슥이 숙이고 있다.

그 사진을 반백 년은 좋이 간직하고 계신 어머니, 세상 여인들이 당신 같기만 하다면 난해한 투기죄도 없었을 것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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