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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1일(수) ㅣ
[매일춘추] 항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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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4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꼭두새벽에 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들어올 시간이다. 이미 붉은 태양은 수평선 위로 힘차게 솟아올랐다. 소금기와 비린내에 전 남자들이 항구로 돌아오고 각기 건져 올린 수고를 어판장에 풀어놓는 아침이다. 마을에는 가자미, 도루묵, 새우잡이로 활기 넘치는 계절이 왔다.

수협 창구엔 오랜만에 집으로 송금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 거친 숨결 밴 품삯을 받아 가족에게 보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시린 풍랑을 몸으로 막아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한국으로 일하러 온 나이 어린 외국인도 있다. 세상 풍파에 맞설 것이 그 몸밖에 없는 저들에게 얼마나 오랜만에 온 안도의 순간이겠는가!

하지만 평화로움도 잠시, 조금 있으면 다시 난바다로 나가 벗어날 수 없는 파도 속에다 그물을 놓아야 한다. 한 잎 낙엽 같은 뱃머리로 끝없는 수평선을 헤쳐가야 한다. 그렇게 바람과 물결을 견디며 차츰 멀미를 잊어온 생애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도 참다 보면 익숙해져 가는 것이다.

방파제를 지나다 보니 돌 틈으로 게들이 게걸음으로 빠르게 걷고 있다. 옆으로만 가도 잘 달리는 모습들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반듯하게 전진하며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는 일은 맘과 달리 옆길로만 더듬을 때도 있다. 내게도 모양새 나게 직통으로 풀린 일은 없었다. 오래 기다리던 소식이 거품으로 날아가 버릴 때도 잦았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 옆으로 걸어도 나름대로 요령이 생기면 제 길을 잘 지키며 저 게처럼 빠르게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새가 지나가며 하루의 안부를 묻는 마을 곳곳에 그물과 통발들이 쌓여 있다. 수심이 보이지 않는 바닷속을 건져온 어촌 사람들의 이력을 읽으며 안개 낀 등대목욕탕으로 늙은 해녀들과 함께 들어간다. 물질의 쓰린 모래알을 털어내는 탕 안이 뿌옇다. 만개한 주름살에 바다 냄새를 헹궈내며 모처럼 갖는 휴식의 시간, 가리비 벌린 입처럼 왁자한 사람들이다. 질긴 휘파람소리로 받아낸 파도 소리 들리는 듯하다. 바다를 네댓 평 떼어온 것 같은 해수탕에 오래된 관절통을 풀어놓으며 긁힌 일상을 씻는다.

창 너머 언덕에는 믿음 직한 등대가 바다를 살펴보고 있다. 가쁜 숨을 돌렸던 배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늘 만선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항구다. 해감내의 바람이 부는 이곳을 나는 좋아한다. 이곳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자세를 좋아한다. 누군가, 파도를 닮은 힘찬 목소리로 부두를 채우는 순간, 여러 척의 배들이 달리기 주자들처럼 수평선을 향하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백점례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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