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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제3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특선-배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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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0 13:53:56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어느 날 통로 현관 앞에 폐기 처분하듯 마구잡이로 끌려 나온 이삿짐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속 불편한 사람이 오물을 토해내 놓은 듯 뒤죽박죽이었다. 꽤 괜찮은 물건들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은 끄는 건 윤이 자르르 흐르는 장 단지였다.

  “장 단지가 참 곱네요.” 했더니, 이삿짐센터 인부가 “필요하면 가져 가이소” 한다. 탐이 나는 단지를 골라 얼른 엘리베이터 입구에 가져다 놓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다 싶어 주인을 찾았더니 만날 수가 없다. 인부의 말이 장독의 주인은 윗집 할머니라고 했다. 순간 흠칫했다. 횡재했다고 좋아하던 마음이 싸늘히 식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단지를 슬그머니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장 단지로 인해 어르신의 외로움이, 병증이 나에게 옮겨붙을 것 같아 께름칙했다. 인부들은 이삿짐을 마구잡이로 트럭에 싣고 있었다. 버려지는 가재도구가 마치 윗집 할머니 모습 같아 짠했다. 윗집에 올라가 보니 할머니가 계실 때는 벨을 눌러도 열리지 않던 문이 활짝 열려 속살을 훤히 드러내 놓고 있다.

  우리 집 위층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다. 층간 소음으로 갈등이 잦은 요즘 아래층에 사는 우리로선 시끄럽지 않아 좋았다. 윗집 할머니가 어떤 분이실까 궁금했다. 이사 떡을 돌리는데도 유독 윗집만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도 늙어서일까, 은근히 마음이 쓰였다. 그 후로도 먹을거리를 들고 찾아갔지만,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앞집 얘기로는 원래 할머니는 바깥세상이 두렵다며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우연히 할머니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교사 출신으로 정년퇴직해 혼자 살고 있으며, 명문대를 나와 성공한 두 아들이 있다고 했다. 하루는 분리수거장에서 여느 어르신과 달리 기품이 있어 보이는 할머니를 만났다. 내심 반가운 마음에 “혹여 우리 윗집 어르신이 아니신가요?”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경계하는 표정으로 낯설게 나를 바라보았다. 가냘픈 체형에 외로움이 묻어났다.

  할머니 뵙지 못한지 몇 달이 지났나 보다. 뜻밖에 할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손질하지 않은 반백의 머리는 어깨 위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고, 옷매무새도 전에 뵙던 모습과는 달랐다. 귀도 어둡다는 분이 물 내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며 우리 집에서 물을 쓰고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랫집에 와 물을 사안은 아닌 것 같아 “어르신 윗집에 가셔서 물어보시지요.” 했더니 이미 확인을 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시설에 들어갈 것을 권했더니 자식들 체면 깎인다며 말도 못 붙이게 했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그 자식들은 알까? 내 안의 신체적 변화도 감지하지 못하고 밖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니 보통 일은 아니었다. 역시나 본인은 치매 증상을 갖고 있어서 정신이 없다고 했다. 일흔을 조금 넘은 분이다. 다른 노인들처럼 아파트 단지 내의 노인정이라도 나가 사람 냄새를 맡고 살았더라면 저리되지는 않았을 텐데. 많이 배웠다는 게 되레 이웃과 어울리는 데 걸림돌은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저 지경인데 누구도 돌보는 기척이 없다. 정신없는 중에도 아들 체면 생각하고 시설입소를 거부하던 할머니는 병증이 심해지자 그 아들 손에 의해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이게 어디 윗집 할머니만의 일일까. 오늘따라 묵묵한 윗집의 동정이 썰렁하기만 하다.

배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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