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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블레이드 러너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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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3 00:05:13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고전+현대 시너지 효과 3시간 서사 디스토피아 SF
 
 
레이건 집권으로 시작된 미국의 변화는 할리우드에도 전해져 미국 영화산업은 블록버스터 제작 시대로 재편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1982년에 두 편의 중요한 SF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 한 편은 역대 최고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엄청난 흥행성공이라는 영광의 길 위에 섰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은 관객의 외면은 물론 복잡한 스토리와 알 수 없는 결말, 그리고 난해한 메시지 때문에 비평가들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영화였다.

유토피아 SF인 전자는 레이건 시대의 대표작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전세는 역전되었다. 디스토피아 SF인 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는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고, 1990년대에 불어닥친 컬트 영화의 최선봉에 섰으며,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명성이 붙은 채 영화팬들 사이에서 신화가 되었다. 철학자들이 앞다투어 이 영화의 애매모호한 결말을 이해하느라 갖가지 이론들을 가져다 해부하였으며, 후대의 SF 영화들과 재패니메이션은 이 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그들의 열렬한 존경을 표하였다.

전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이며, 후자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이 35년 만에 만들어졌다. ‘시카리오’ ‘컨택트’ 등 주류 장르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미스터리와 SF를 내놓았던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가 용감하게도 이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전작의 배경이 2019년이었던 바, 영화적으로는 30년 후에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인간과 리플리컨트(복제인간)가 혼재된 2049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는 리플리컨트와 자신을 둘러싼 비밀이 존재함을 깨닫고 오래전 블레이드 러너로 활약했던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찾아 나선다. 한편, 리플리컨트가 인류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월레스(자레드 레토)는 자신이 개발한 미래 식량의 성공으로 타이렐사를 손에 넣고 전 우주를 식민지화하려고 리플리컨트와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가진 K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1982년 오리지널을 경험한 영화팬들에게는 과연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다. 데커드 역할의 해리슨 포드가 나이 들어 은둔 생활을 하는 인물로 그대로 등장하고, 그의 뒤를 잇는 K를 ‘라라랜드’ 이후 최고 주가의 올리는 라이언 고슬링이 맡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원작을 경험하지 못한 현대 젊은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복잡한 이야기일 것이며, 블록버스터임에도 액션이 많지 않은데다, 드니 빌뇌브 특유의 서서히 긴장감을 조여 가는 관조적 서사 진행 스타일로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영화는 걸작이다. 기존의 SF 블록버스터의 장르적 관습을 뛰어넘어 예술적 경지로 블록버스터를 끌어올리며, 인간 존재의 정체성과 다문화주의, 기후변화가 만든 환경문제, 신계급 구조, 인공지능(AI)의 미래 등 현대사회의 근심들을 다양하게 끌어안아 캐릭터와 서사에 녹여내었다.

하드보일드 형사물이 누아르 및 SF 장르와 만나고, 그 위에 시각효과의 효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인간의 상상력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스크린 위에 입증한다. 고전성과 현대성이 멋지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구세대 리플리컨트와 신세대 리플리컨트 간의 괴리감,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진화한 AI의 존재, 디지털 복제인간의 구현 등 자아와 존재에 대한 철학적 요소로 풍부하다. 이 작품은 또다시 현대 철학자들의 마음을 흥분시킬것이다.

작가주의 블록버스터의 정점으로 보이는 이 영화는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현대 관객들은 사이버펑크 SF가 무엇인지 경험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전편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음악을 맡은 거장 한스 짐머의 참여로 영화는 원작이 가진 장엄하고 숭고한 아우라를 이어간다.

이 작품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과 창조 신화에 대한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관이 탄탄하게 완성되었다. 인간의 탄생과 창조를 둘러싼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떠도는 3시간가량의 대서사시는 한 권의 철학 서적을 읽는 것만큼 지적인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정민아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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