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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 100주년 기획, 혁명의 도시 페테르부르크를 가다]<3>혁명과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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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1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칼보다 강한 펜' 고리키·톨스토이·도스도토옙스키의 저항 문학
 
톨스토이의 생가
 
티흐빈코에 수도원묘지에 있는 도스도옙스키 묘
 
세미요노프 광장은 도스도옙스키의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시베리아의 중노동형으로 감형됐던 곳이다. 알렉산더 2세를 암살했던 소피아 페로프스카야를 비롯한 4명의 혁명가들의 사형이 집행된 곳이기도 하다.
 
1900년에 막심 고리키가 톨스토이의 영지를 방문했을 때 모습
피의 일요일 사건이 계기가 된 1905년 러시아혁명에서는 러시아국립발레단의 발레리나들까지 총파업에 동참했을 정도로 차르체제에 대한 민중들의 증오는 극에 달했다. 한편, 피의 일요일 사건(1905년 1월 22일) 현장에서 가까스로 죽임과 체포를 피한 가폰 신부는 작가 막심 고리키의 집에 숨어 있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가폰은 지금 내 집에 잠들어 있다. 그는 더 이상 차르도 교회도 신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1만 명의 푸틸로프 공장 노동자들이 성자로 떠받드는 사람으로 노동자들을 참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고리키가 가폰 신부에 대해 쓴 글이다. 나중에 가폰 신부는 유럽으로 망명했다가 러시아로 돌아와서 사회혁명당 당원들에게 차르의 스파이로 몰려 암살당한다.

1905년 혁명의 주역인 가폰 신부를 숨겨줬던 작가 고리키는 피의 일요일 사건 현장에도 함께 있었다. 당시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로 국제적인 명성이 자자했던 고리키는 이전에도 민중들의 투쟁 현장에 직접 참여해 수차례 감옥 신세를 지기도 했다.

고리키는 대부분의 작가들과는 다른 배경에서 자랐다. 고아로 조부모 밑에서 자라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러시아 전역을 방랑했고 온갖 잡일을 하면서 십 대를 보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그는 배에서 접시닦이로 일할 때 요리사로부터 러시아어를 읽는 법을 배워 문학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스물한 살 때는 비참한 삶을 비관해 자신의 복부를 향해 권총을 당겨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의 필명인 고리키는 '쓰린 사람'이란 의미이다.

피의 일요일 사건 이후 고리키는 대중선동혐의로 구속되지만, 국제적인 석방 압력에 시달린 차르는 고리키를 러시아에서 추방하게 된다. 유럽으로 망명한 고리키는 레닌과 가까워졌고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면서 강연과 출판을 통해 혁명운동을 위한 모금활동에 주력했다. 유럽에 망명해 있던 러시아혁명가들이 발행했던 신문들의 재정적 지원은 많은 부분이 고리키에게서 나왔다. 고리키는 혁명 후 언론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소비에트 권력에 맞서 유일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작가였다.

고리키처럼 러시아 문학가들의 세계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절대 권력과 폭력, 부정에 맞서왔던 전통이 이어져왔다. 노동자들의 대부였던 가폰 신부 또한 어릴 때부터 작가 톨스토이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다. 신학교 시절부터는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동자들을 돕는 실천을 해왔기 때문에 노동자들 사이에서 강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톨스토이가 책을 통해 가르친 핵심내용은 사랑과 무소유, 평화이다.

전쟁과 평화의 작가 톨스토이는 1905년 혁명 당시에는 러시아의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귀족신분이지만 언제나 농민복장을 하고서 들판에서 일했고 학교를 열어 인근의 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쳤고 농민들이 원하는 서류나 탄원서를 직접 써주기도 했다. 기근이 들면 언제나 톨스토이의 집 앞에는 굶주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톨스토이는 작가이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랑을 실천한 성인이었다. 비록 차르체제를 부수진 못했지만 홀로 차르체제에 맞섰던 거목이었다. 심지어는 레닌까지도 “톨스토이는 러시아혁명의 거울”이라면서 존경을 표했다. 그에 대한 러시아 민중들의 존경심은 그가 죽으면서 금방 드러난다.

1910년 11월 7일 이른 아침, 톨스토이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고 잠들었다. 다음 날 전 러시아와 전 세계 신문들은 그의 사망소식을 일면의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톨스토이의 사망소식을 접한 러시아 전역은 그의 뜻을 기리면서 숙연해졌다. 당시 이탈리아의 카프리섬에서 망명 중이던 고리키는 톨스토이의 죽음을 아주 애통해했다. “위대한 영혼이 떠났다. 러시아 전체와 러시아적인 모든 것을 품었던 영혼이 떠나갔다”라고 썼다. 톨스토이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 인근에서는 수천 명의 농민들이 모여들어 자신들의 친구였던 톨스토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했다. 톨스토이의 사망소식을 접한 수도 페테르부르그의 두마(의회)에서는 의원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묵념을 올린 뒤 폐회를 선언하기도 했다. 또한 모든 대학들도 휴강을 하고 톨스토이를 기리는 집회를 열고 시위를 벌였다.

당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모든 민중들이 성인으로 추앙했던 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차르정부조차도 그의 삶에서 티끌만한 어떤 불법적인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톨스토이는 죽기 전 차르정부와 러시아 정교회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당시 러시아가 소유한 부의 3분의 1을 축적했던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하자 톨스토이를 돌연 파문시켰다. 톨스토이의 파문은 러시아 민중들의 교회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켰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나면서 교회는 소비에트정부와 러시아 민중들에게서 엄청난 핍박을 당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평화와 무소유의 철학은 당시 인도의 혁명가 간디를 감동시키면서 인도에서 비폭력 평화주의적 저항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젊은 간디는 인도를 영국의 식민지 통치 하에서 해방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터전을 잡고 생활하던 간디는 톨스토이의 조언을 듣기 위해 직접 편지를 썼고 톨스토이의 답장을 받게 된다.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궜던 공동농장의 이름도 '톨스토이농장'이었다. 인도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은 불복종 비폭력 평화주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조언을 톨스토이에게서 받는다. 인도로 돌아간 간디는 비폭력 평화주의를 그대로 실천했고 1947년에 인도는 해방됐다. 톨스토이의 길이 옳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작가는 도스토옙스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직접 혁명운동에 가담했다가 시베리아에서 혹독한 십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가 묻힌 티흐빈스코에 묘지에는 지금도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도스토옙스키가 잠든 묘비석 앞에 서있다. 총을 든 군인들 앞에 서서 얼굴을 가리고 죽음을 기다리던 작가의 절박한 순간들이 나의 뇌리에 영상처럼 스쳐 지나고 있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죄의식, 자유, 해방, 진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꿈꾸던 위대한 작가가 이곳에 잠들어있다.

1849년 4월 22일과 23일, 갑자기 60명 이상의 젊은 인텔리들이 경찰에 체포돼 ‘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요새에 구금되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해 기소된 15명에게는 총살형이라는 극형이 선고됐다.

당시 러시아 문단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쉐프스키’서클의 모임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젊은 지식인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 ‘러시아 정치체제의 변혁과 토지분배를 통한 농노해방’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모임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에는 유럽에서 사회주의 이론을 전공하고 돌아온 급진적인 혁명가 스페쉬네프가 있었다. 그는 다른 비밀모임을 꾸려 차르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무장봉기까지 계획했고 도스토옙스키까지 끌어들였다. 물론 젊은 도스토옙스키도 혁명에 대한 확신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1849년 11월 16일 아침, 세미요노프 광장에서는 페트라쉐프스키만 얼굴을 드러내고 모두 얼굴이 가려진 채 형틀에 묶여 사형집행관들의 사격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격명령이 떨어지기 직전에 궁전에서 사신이 왕의 명령서를 들고 오면서 사형집행이 중지되고 모두 시베리아에서 4년에서 10년의 ‘카토르가’(중노동형)형으로 대체됐다.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살아남았던 사형수들 중 두 사람은 이날의 공포로 인해 정신이상자가 돼 평생을 살아갔다. 시베리아로 끌려간 도스토옙스키는 5년간의 중노동형과 카자흐스탄에서 5년간의 군대의 강제징집 등으로 십 년을 보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곳에서 참기 힘들었던 것들은 무엇보다도 페테르부르그에서의 작가로서의 사회적 위치 등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경멸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또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잔혹한 환경 속에 내던져진 상태에서 감수해야 했던 고통의 나날들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만난 민중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는 그의 문학작품의 보고였다. 민중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깊은 고찰은 어느 작가도 따라갈 수 없는 문학의 최고경지라 극찬할 수밖에 없다.

하영식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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