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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1일(화) ㅣ
[광장] 요원의 불길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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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1 00:05: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1960년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수상
중국 헤이룽장성 곳곳의 농가에서는 거둬들인 노란 옥수수를 말리고 있었다. 샛노란 옥수수가 작은 산을 이루고 온 마당을 덮고 곳간을 그득하게 채웠다. 물론 그것으로 겨울을 날 양식으로 삼는 게 아니다. 옥수수를 팔아서 양식과 생필품과 아이들 학용품도 사야 한다. 옥수수값에 비해 옥수수를 팔아서 구입해야 할 물건은 무섭다 할 정도로 비싸다. 그래서 이곳에서 가족농 형태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옥수수 농사가 끝나고 나면 마른 옥수수대는 잘라서 집으로 들여놓는다. 가축들 사료나 연료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옥수수밭에는 옥수수의 거센 뿌리와 질긴 잎사귀, 줄기의 일부가 남는다. 그런 것들은 밭에서 좀체 썩지 않는다.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이듬해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밭에 불을 질러서 그것들을 태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불탄 뒤 남은 재는 비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밭을 불태우면 막대한 양의 연기와 미세먼지가 발생하고 마을과 사람의 안전을 위협할 수가 있으며 기후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지방정부에서는 옥수수밭에 불을 지르지 못하게 규제를 하고 있다. 헤이룽장성 빈현의 빈안진 진청에는 붉은 바탕의 플래카드에 흰 글씨로 쓴 구호가 선명했다.

“밭작물 소각 금지! 우리의 발전과 생태계와 농업을 위하여! 옥수수를 잘 이용하면 수익을 얻지만 태우면 벌을 받는다!”

하지만 농부들은 옥수수밭에 불 지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뿌리를 일일이 파낼 수도 없고 줄기와 잎사귀를 치울 일손도 없으며 비료도 농약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스름이 밀려오는 늦은 오후 옥수수밭에 불을 지르는 농부들이 있었다. 쥐불놀이하는 아이들이 쓰는 것 같은 깡통에 불을 담아 끝없이 넓은 들판에 남아 있는 옥수수 잎과 줄기, 그루터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연기로 빨갛게 지는 해에 햇무리가 졌다.

처음에는 앞에서 가는 차의 번호판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앞에서 가는 차가 트럭인지 승용차인지 식별되지 않았다. 종내에는 새까만 어둠에 우유처럼 연기가 섞여들어 천지가 카페라테 빛깔이 되었다.

이윽고 어둠이 밀려오고 나서 달리는 차의 양쪽 차창으로 불타오르는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불은 곳곳에서 타올랐다. 옥수수가 불이 되고 연기가 되었으며 대지라는 무대 위 불길한 불의 춤으로 변했다. 헤이룽장성 성도인 하얼빈의 중심 대로에도 옥수수 연기가 들어찼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였다.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지난여름 휴가철에 도로변에서 사먹은 찐 옥수수, 극장에서 먹은 팝콘, 청량음료에 들어간 감미료, ‘치킨’의 튀김옷, 닭을 튀기는 기름, 닭이 먹는 사료가 모두 옥수수에서 나왔을 것이다. 옥수수는 어디에나 임재(臨在)했다. 모습이 불과 연기와 미세먼지로, 음식으로, 생필품과 학용품으로, 옥수수 그 자체로 계속 순환되고 바뀌었을 뿐.

농부들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도 옥수수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료와 농약, 물뿐 아니라 부산물 처리에 옥수수값이 훨씬 넘는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옥수수가 주는 이익은 누군가가 독과점해서 가져가고 그것이 가진 엄청난 위험성과 환경 파괴라는 부작용은 잘 알아볼 수 없도록 잘게 나뉘어 지구촌 곳곳에, 우리의 삶과 후대로 분산되어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그것을 어찌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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