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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학습] 신숭겸 장군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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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07:01:42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왕건 구한 고려 개국공신 충절 기려
 
 
 
대구 불로동-지묘동 일대는 통일 신라 말기 왕건의 고려군과 견훤의 후백제군이 벌인 팔공산 전투의 핵심 지역으로 당시 전투의 치열함을 반영이라도 하듯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소는 이 전투에서 왕건의 목숨을 구하고 전사한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고려의 개국공신 장수 신숭겸을 기리기 위한 유적이다. 927년(태조 10) 후백제의 난입으로 위기에 처한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왕건은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군과 격전을 치렀는데, 이 전투에서 고려군은 완패하여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신숭겸이 왕으로 변장한 후 전투에 나와 후백제군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고, 이를 틈타 왕건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소수의 신하들과 탈출할 수 있었다. 왕건은 신숭겸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지금의 춘천)에 예를 갖추어 묻어주었고, 전사한 자리인 지묘동 일대에는 지묘사, 미리사 등의 사찰을 세워 명복을 빌게 하였다.

이후 1607년(선조 40)에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고려가 멸망한 후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 표충단 및 충렬비를 세워서 신숭겸의 충절을 추모하였고, 1871년(고종 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진 뒤부터는 후손들이 재사(齋舍)를 새로 지어 지켜오고 있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를 중심으로 불로동-지묘동 일대에는 당시 전투와 관련된 지명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가 위치한 ‘지묘동(智妙洞)’은 신숭겸이 왕건 대신 죽기로 각오하고 왕건의 복장을 한 데서 나온 것으로, 그의 지혜가 기묘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표충사 앞쪽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왕건의 정예군이 크게 패하였던 고개’라 하여 ‘파군재’라 부르고 있다. 파군재 남쪽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하여 잠시 앉았다고 해서 ‘독좌암’이라 부르며, 표충사의 뒷산은 ‘왕산(王山)’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대구에 남아있는 안심, 무태, 반야월 등의 많은 지명이 당시의 정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어, 가족과 함께 팔공산 전투의 흔적을 따라 답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신숭겸 장군 유적지 Q&A

△팔공산 전투가 일어난 배경은 무엇인가?

왕건과 견훤의 세력 다툼이 한창이던 신라 말기에, 신라-고려의 연대를 붕괴시키기 위해 견훤이 신라의 수도 경주로 난입한 일이 발생했다. 견훤의 접근에 놀란 신라가 구원을 요청하자 왕건은 먼저 1만 명의 군대를 파견하고 자신도 5천 군사를 이끌고 출발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견훤이 경주를 처참하게 유린한 후 회군하던 시점이었고, 팔공산은 양측 군대 노정의 중간에 있었다. 이후 양측은 팔공산을 배경으로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생사를 건 전투를 치러야 했다.

△팔공산 전투의 전개 과정과 전쟁 이후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뒤늦게 신라에 도착한 왕건은 견훤의 후백제군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들이 돌아가는 길목인 팔공산 기슭에 군사를 매복하여 기습 공격하려 했다. 신라를 유린하고 귀환길에 오른 후백제군은 여기서 고려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고려군의 매복을 미리 눈치채고 오히려 고려군을 포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고려의 장군 신숭겸과 김락이 죽고, 많은 군사가 전사했으며 왕건 자신도 간신히 몸을 피해 도망가기에 이르렀다. 이 전투를 시작으로 종래 표면상 유지되던 왕건과 견훤 두 세력 간의 평화가 깨어지고 무력충돌이 격화되었는데, 후삼국사 전체를 통하여 볼 때 팔공산 전투는 통일전쟁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는 촉매제였다고 볼 수 있다.

◆ 팔공산 전투와 관련된 재미있는 지명들

△무태=팔공산 기슭에 도착한 왕건과 그의 군사들은 지금의 서변동 무태를 지나게 되는데, 팔공산 전투 당시 지금의 서변동에는 왕건의 고려군이, 동변동 일대에는 견훤의 후백제군이 대치하면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무태라는 지명은 이곳부터는 견훤의 군대가 매복해 있을 수 있으므로 태만하지 말고 각별히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변을 흐르는 동화천에는 살내라는 또 다른 지명이 붙어 있기도 한데, 이는 견훤의 후백제군과 왕건의 고려군이 치열하게 싸워 두 진영의 화살이 강을 이루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파군재=동화천을 경계로 지금의 서변동에는 왕건의 고려군이, 동변동 일대에는 견훤의 후백제군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계속하여 밀리던 고려군이 지원군을 얻은 후 전세를 회복하여 팔공산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군이 계획한 여러 가지 전술이 모두 후백제군에 간파당하고 무너져 고려군은 완패하였으며, 왕건은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수와 군사를 잃고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의 치욕적인 패배로 이곳을 임금이 무너진 고개란 뜻의 ‘파군재’로 부르게 되었다.

△안심=팔공산 전투에서 크게 패한 왕건이 도주하던 중 나무하러 올라가던 나무꾼을 만나 그에게서 주먹밥을 얻어먹게 되었다. 나중에 나무꾼이 나무를 지고 다시 그 자리에 내려와 보니 왕건이 사라졌는데, 그리하여 그곳을 ‘왕을 잃은 곳’이라는 뜻으로 ‘실왕리(시랑리)’로 불렀다. 시랑리 부근에서 한숨을 돌린 왕건은 계곡을 따라 계속 안쪽으로 들어가다 산을 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왕건이 산을 넘어 도착한 곳이 지금의 ‘안심’인데, 이 ‘안심’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이르러 왕건이 비로소 안심하게 됐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 신숭겸 장군 유적지 주변의 다른 체험학습 장소들

△불로동 화훼단지

불로동 일대의 화훼단지는 1980년도부터 불로동 일대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도로를 따라 양쪽에 수십 개의 화원이 늘어서 있으며 연경동 일대에도 계속해서 늘고 있는 추세다. 각종 난, 분재, 관엽, 그리고 생화 등을 취급하고 있으며, 시중 유통 가격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러한 원예 농업 지역은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김포)과 부산(김해) 등 대도시의 외곽 지역이나 인근의 교외 지역에 넓게 조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도시의 많은 수요를 확보함과 동시에 신선도의 유지 및 수요에 대한 빠른 대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불로동 고분군

불로동 고분군은 초기철기시대에 만들어진 고분으로 불로동 일대에 총 211기가 보존되어 있다. 불로동 고분군이 만들어질 당시엔 주민들이 대부분 평지가 아닌 언덕(산록완사면)에 살았으며, 지금처럼 논벼가 아닌 밭벼 중심으로 농사를 지었다. 농사에 이용되지 않는 평지에 이 같은 대규모의 무덤을 만든 것은 마을 가까이에 위치하여 화를 막고, 지역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된다.

△옻골 마을

옻골은 둔산동 제일 끝 마을로 경주 최씨 광정공파의 후손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동성촌락으로 현재 20여 호의 고가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옻골’은 마을의 남쪽을 제외하고, 동서북쪽의 모든 산에 옻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달성측백수림

불로동에서 동쪽으로 2㎞쯤 가면 길 오른쪽에 내를 낀 향산이 나타난다. 이 산의 북쪽으로 비탈의 높이가 100여m에 길이 60여m의 낭떠러지를 온통 덮고 있는 울창한 숲이 바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달성측백수림이다. 이곳의 측백수림은 측백나무의 남한지로서 식물지리학상의 중요성으로 인해 193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주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경치를 보며 쉬어가기에 적당한 곳이다.

강문철(영남삶터탐구연구회, 경북고등학교 교사)

참고자료:삶터탐구활동 길잡이(대구남부교육청), 전영권의 대구지리(전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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