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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오리엔트 특급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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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00:05:05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명불허전’ 클래식 추리물
 
 
크리스티 원작 1974년 영화화

디지털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제작

살해 용의선상에 오른 승객 13명

범행 동기·알리바이 모두 갖춰

기네스북에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성경에 이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재되어 있다는 추리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이다. 영국 귀족 출신 애거서 크리스티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활약했던 코난 도일과 쌍벽을 이룰 정도의 명석한 추리 전문 작가다. 크리스티는 사건의 전개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물론 뛰어나지만,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유머 감각이 특히 일품인 글쓰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1974년 시드니 루멧 감독이 만든 적 있으며, 2001년에 TV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원작소설은 크리스티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 탑 10에 올릴 정도로 명소설이다. 1974년 영화 버전은 고전영화의 여신 잉그리드 버그만이 할머니가 되어 출연한 컴백작인데, 초라하고 늙은 하녀 역할로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버그만은 명불허전의 연기로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소설과 영화로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작품이며, 게다가 추리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은 새 영화를 만들 때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탐정의 범인 추리가 이야기의 핵심 매력이어서 끝까지 궁금해하며 긴장감을 놓치지 말아야 할 범인의 정체를 미리 알고 영화를 보게 된다면,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범인이 누구인지’가 아닌 다른 요소들로 관객의 흥미를 자극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드니 루멧의 영화는 크리스티도 생전 좋아했던 명작이기에 이야기가 가진 매력적인 힘 대신, 새로운 무언가를 가지고 승부를 봐야 할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디지털 시네마 시대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65㎜ 필름으로 촬영한 후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한껏 활용하여, 클래시컬한 영상미와 화려한 스펙터클을 창출하였다. 거기에다 연기파 배우들의 캐스팅 퍼레이드는 영화에 대한 궁금증으로 들뜨게 한다.

셰익스피어를 가장 잘 각색하여 영화화한다고 정평이 자자한 영국 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과 주연을 맡아, 자신의 주특기인 소설 각색 영화 연출 및 드라마 연기의 정석을 보여준다. 세계적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사건 의뢰를 받고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초호화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탑승한다. 폭설로 열차가 멈춰선 밤, 승객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기차 안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13명의 용의자. 포와로는 현장에 남은 단서와 용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미궁에 빠진 사건 속 진실을 찾기 위한 추리를 시작한다.

악독한 사업가 조니 뎁을 살해한 용의자 선상에 페넬로퍼 크루즈, 윌렘 대포,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데이지 리들리를 비롯한 열차 탑승객 13명 전원이 오른다. 모두 범인을 살해할 동기를 가지고 있고, 또 모두가 알리바이가 있는 상황이다. 동방에서 서방으로 향하는 열차 안이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환경 속에 있는 인물들 간의 두뇌 게임이 서스펜스를 약화시킬 틈 없이 팽팽하게 펼쳐진다. 캐릭터마다 각자 살아온 배경이 하나씩 단서처럼 툭툭 던져지면 관객은 그것을 낚아채 이전 장면과 연결하여 이후 벌어진 전개를 탐정과 함께 추리하게 된다. 매우 지적인 영화다. ‘작가주의 블록버스터’라는 신개념에 적합한 영화다.

원작은 1934년에 발표됐는데, 영화는 1, 2차 대전 사이 어느 시간적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 시기의 인종문제, 계급문제가 인물들 사이에 엮이는데, 영화는 전작 영화보다 훨씬 현대적이다. 영화의 오프닝을 여는 포와로의 활약 장면은 종교 갈등을 겪는 현대를 풍자한다. 이스라엘에 있는 ‘통곡의 벽’ 앞에서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도난당한 다이아몬드 때문에 수사받는데, 범인은 종교 갈등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며, 탐정은 그 점을 정확하게 꿰뚫는다. 영화에서 이후 펼쳐질 본격적인 사건은 다채로운 현대적 갈등들을 포함함으로써 영화는 고전적 스토리에 현대성을 덧입힌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잘 모르는 젊은 관객들은 웬만하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않은 채 극장에 가길 바란다. 이미 이 이야기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큰 스크린에서 장대한 스펙터클과 인물들 각각의 심리가 드러나는 얼굴들의 미묘한 표현이 영화를 보는 커다란 즐거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클래식 영화적 아우라를 체험한다는 것도 또 다른 큰 기쁨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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