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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안중근의 ‘범죄’와 이토 히로부미의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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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08:22:01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일본 교토대학 법학부의 이토 유키오 교수팀과 이토 히로부미에 관해 공동 연구를 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때로는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연구자로서의 기본 입장을 상호 존중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한국에서는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와 한국 통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일정한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NHK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며, 필자도 한 컷 출연했다. 안중근과 이토를 대등하게 양축에 놓고 한일병합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공동 연구가 끝난 직후 이토 유키오 교수는 ‘이토 히로부미: 근대 일본을 만든 남자’라는 제목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평전을 출간했다. 그는 이토의 진면목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며, 번역 출간을 요청해 왔다. 일독을 하고 난 후 한국인으로서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학원생의 도움을 받아 짬짬이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책에서는 안중근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으나,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보자. “중요한 것은 안중근이 이토의 이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이토를 암살하기에 이르렀으나, 독립운동가로서의 안중근의 평가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이(異)문화 간의 상호 이해는 매우 어렵다. 한 독립운동가가 통치국의 최고권력자 이토의 생각이나 성품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것은 안중근의 책임이 아니다”며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어서 그는 “기묘하게도 이토의 전기를 쓰는 작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안중근의 인품을 알게 되면서, 입장은 다르지만 정의감과 강한 의지 등 이토의 그것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토의 암살자인 안중근에게 신념으로 산 인간으로서 이토와 공통되는 친근감마저 느꼈다”(‘이토 히로부미’, 588)고 적고 있다. 이토 유키오 교수는 일본과 한국에서는 우파에 속하는 연구자로 알려져 있으나, 이러한 그의 지적은 솔직한 고백으로 보인다.

위의 두 사례를 접하고 한일 간에도 상호 이해의 끈이 생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정부의 대변인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중근은 사형 판결을 받은 ‘범죄자’이기 때문에 하얼빈 역에 표지석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은 당시의 실정법으로는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범죄자’라는 의미를 벗어나 침략 역사를 미화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의 저급함을 보여준다. 당시 일본 신문은 안중근의 이토 살해 동기를 “통감부의 명령으로 조국에서 압학(壓虐)받는 사람들이 처형되기 때문에 복수한 것이다”(‘동경일일신문’, 1909년 10월 28일 자)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안중근은 수많은 조선인을 부당하게 처형한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물은 것이며, 결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또 이토는 한국의 식민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그에 저항하는 수많은 의병을 토벌, 처형했다. 그는 문관이면서 조선 주둔 일본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의병 처형의 최고 명령권자였다. 이토를 살해한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 한다면, 수많은 조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토는 학살자라 불러야 옳다. 학살자에 대한 응징을 범죄라 하면 학살 그 자체가 정당화되는 역설이 성립한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공과에 대해 입씨름하고 싶지 않다. 단지 일본이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고 하는 의도를 불순하게 여긴다. 한 국가에서의 영웅이 상대 국가에서 원흉으로 매도되는 경우는 많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 민족과 국가에 맡겨야 한다. 침략-피침략, 식민지-피식민지라는 대척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일본 내에서 이토가 어떤 평가를 받든 개의치 않으며, 한국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평가할 뿐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평가에 대해 일본 정부가 간여할 일은 아니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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