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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이름 속에 새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생명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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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00:05:00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생명의 이름/권오길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의 ‘생명의 이름’은 생물`생태에 대한 꼼꼼한 기록인 동시에 생명체의 이름에 담긴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 사진은 권 교수가 책의 소재로 삼은 다양한 생명체들. 사이언스북스 제공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지구 생명체의 숫자는? 어떤 과학자는 0이 스무 개쯤 붙는다고 하고, 어떤 생물학자는 생물을 동`식물, 미생물에 바이러스, 세포까지 분류하다가 ‘범위’부터 막혀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고도 한다.

이렇게 무량대수(無量大數) 생명체들도 이름표를 달지 못하면 그냥 ‘생물’이나 ‘유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으로부터 학명이나 분류 명(名)을 얻어 달면서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며 인류와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물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건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린네였다. 그는 속(genus)과 종(species)을 나타내는 두 라틴어 단어로 된 학명을 생물에 부여하는 ‘이명법’을 창시해 현대적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놓았다. 이 책은 저마다 이름과 사연을 간직한 채 우리의 산천을 형성하고, 인간과 함께 살아온 생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생명체 이름들의 재밌는 사연 소개

‘달팽이 박사의 생명 찬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세상에는 ‘이름 모를 풀’이 없고, 아주 작은 생명에도 다 나름의 이유와 사연이 있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권오길(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의 전작 ‘생명 교향곡’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따라 펼쳐지는 생물들의 생태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 책은 생명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이름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의 표현대로 ‘생명 교향곡’의 선율을 잇는 작업이었다.

제철을 견디지 못하고 설익은 채로 떨어지고만 ‘도사리’, 매미가 탈바꿈한 자리에 남기고 떠난 ‘선퇴’, 겨울에도 푸르게 겨우겨우 살아가는 ‘겨우살이’처럼 우리의 말이 새겨 놓은 생명의 이름들은 시어(詩語)처럼 아름다운 우리말로 고스란히 기록됐다.

선조들이 자연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들은 우리말에 새겨졌고 대대로 전수돼 지식과 문화를 형성하고 우리의 DNA를 구축해왔던 것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 따라 5부로 구성

이 책은 정지용의 시 ‘향수’를 따라 우리 산과 들, 바다에서 생물들을 만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1부 ‘넓은 벌 동쪽 끝’은 우리 들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물과 들짐승, 들꽃들의 얘기를 다룬다. 하늘에는 해바라기 꽃을 달고 땅에는 감자를 달고 있는 것이 엉뚱하다고 해서 ‘뚱딴지’라 불리는 돼지감자, ‘신선의 손바닥’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제주도에서 자생해 온 선인장 얘기가 수록돼 있다. 인터넷주소를 구성하는 골뱅이(@)에서는 달팽이의 ‘느림의 미학’을 칭찬한다. 면도날을 타고 넘지만 베이지 않는 유연함에서 ‘처세의 미학’을 배운다.

2부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에는 우리 강을 수놓으며 생명력을 뽐내는 개구리밥과 연가시 등에 관한 얘기가 담겼다. 반딧불이를 보고 ‘개똥불로 별을 대적한다’는 속담의 의미를 알아보고, 잠자리를 뜻하는 다른 말로 ‘청령’이나 ‘청낭자’라는 우리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산짐승`바다생물 이야기 분석

3부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는 하늘로 높게 뻗어 올라간 나무들과 산짐승들의 얘기를 다룬다. 뻐꾸기의 탁란(托卵) 습성을 관찰하며 악랄한 이기적 유전자를 비판한다. ‘어미를 죽이면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살모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 뱀의 억울한 사연과 ‘황조가’에 등장해 우리 역사 속 한 장면을 함께한 꾀꼬리의 얘기를 들어 본다.

4부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은 자유롭게 바다를 활보하는 바다 생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언각비’와 ‘전어지’와 같은 문헌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 물고기들의 이름은, 우리말이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또 구각(舊殼)을 벗어야만 성장, 변화를 맞을 수 있는 꽃게의 숙명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5부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지붕’은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 여기며 자연과 공생해 온 우리의 정겨운 터전을 들여다본다. ‘까치밥’으로 남겨 둔 감에서 선조들의 아름다운 미덕을, 우리 몸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배꼽을 보며 우리 역시 다른 생명들과 닮았음을 본다.

‘돼지감자가 세상을 바꾼다’ ‘그령(한국에 흔한 여러해살이풀)처럼 억세게’ ‘잠자리의 결혼비행’ 등 소제목들에서 느껴지듯 이 책은 어려운 과학책보다는 수필에 더 가깝다. 생물을 바라보는 한 노학자의 애정 어린 기록인 동시에, 생명을 관조하는 한 문학가의 서정적 에세이이기도 하다. 302쪽, 1만6천500원.

◆권오길 교수는=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기고, 서울사대부고에서 생물을 가르쳤으며,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25년간 근무했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저작과 방송 활동, 강의를 통해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전파하고 있다. 일간지에 ‘생물 이야기’를 연재 중이고 포항공대, KAIST 등 여러 곳에 특강을 하고 있다.

지금은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글쓰기와 방송, 강의를 통해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쉽고 재미있는 과학을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2002), 대한민국 과학문화상(2003) 등을 수상했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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