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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파워 인터뷰] 변정환 대구한의대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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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00:05:00 크게보기 작게보기 프린트 이메일 보내기 목록
"현미·한약재 등 발효해 구운 '행복빵'…시민 건강 위해 탄생"
 
세계 최초로 한방종합병원을 설립하고, 한의사로서 최초의 한의과대학을 설립한 변정환 대구한의대 명예총장은 “진정한 힘은 돈(경제)이 아닌 문화에서 나온다”며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노익 대기자 noik@msnet.co.kr
 
※변정환 대구한의대 명예총장 프로필… ▷영남고 졸업 ▷경희대(동양의약대학) 졸업 ▷중화민국문화대학 명예철학박사 ▷서울대 보건학 박사 ▷경희대 한의학 박사 ▷한국한시연구원 이사장`원장 ▷대한한의사협회장 ▷국제동양의학회 1`2대 회장 ▷국제라이온스협회 한국복합지구 총재 협의회 의장 ▷인도네시아 메가와티 대통령 주치의 ▷대구한의대 총장 ▷제한의료원 초대원장 ▷(현)제한한의원 원장 ▷(현)대자연사랑실천본부 이사장
“새해는 새롭고 큰 희망을 품자”

“세상 사람들은 대개가 너무 근시안적입니다. 큰 것은 모르고 너무 작은 것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해요. 어릴 때는 남의 도움을 받았지만 어른이 됐으면 남을 위해서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대구한의대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인 변정환(87) 제한한의원 원장은 “세상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봉사를 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삶의 의미가 새롭게 보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내가 실컷 먹고 쓰고 남는 것을 가지고 봉사를 한다면 그게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생활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그것으로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용기 있는 삶이란 언덕 위에서 적당히 굶주린 사자와 같아요. 사자는 배가 부르면 잠이 들어 버립니다. 잠든 사자를 두려워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변 명예총장은 “사람에겐 ‘돈’이 그렇다”고 강조한다. “돈이 많으면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의 문제에 빠집니다. 똑똑하다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의욕이 안 생기고, 어리석은 사람은 못할 짓만 골라서 하고 그렇게 나쁜 길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변 명예총장은 식사를 하루에 한 끼만 한다. 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는다. 배부르고 몸이 따뜻하면 마음이 해이해지고 정신이 흐려져 의욕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아 변 명예총장을 만나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행복빵을 만들다!

변 명예총장은 현역 한의사이다. 2010년 대구한의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반월당 제한한의원에서 매주 월`화`목(오전 9시~오후 5시) 진료를 하고 있다. 최근 행복빵을 개발한 것은 한의사로서 오랜 경험이 동기가 되었다.

“아무리 좋은 한약이라고 하더라도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그 효과가 크게 떨어집니다. 그런데 환자들 중에는 ‘나는 도저히 밀가루 음식을 끊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시민의 건강과 편의를 위해 쌀`현미`율무`한약재로 내가 직접 발효빵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4년 (사)대자연사랑실천본부(변 명예총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음) 세계 청년대자연 페스티벌이 행동으로 옮긴 전환점이 되었다. 14개국 5천여 명이 참석하는 대회를 앞두고 간식을 준비해야 했다. 미래의 꿈나무인 청소년들에게 당뇨 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는 밀가루빵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상업화에는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비싼 재료비와 짧은 유통 기간은 대중화를 가로막았다. 이 때문에 행복빵을 맛보기 위해서는 반월당 제한한의원 옆 가게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 겨우 인건비 수준의 수익성에도 행복빵 가게를 유지하는 이유는 ‘이것 또한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족 자존심과 바꾼 가난

변 명예총장은 1932년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에서 3남 2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학자이며 한의사였던 할아버지에게 크나큰 위안이 되는 셋째 손자였다. 7년이라는 기나긴 일제와의 행정소송에서 마침내 이겼지만, 집안 살림은 소송 비용 탓에 풍비박산이 난 뒤였다. 묘지관리법을 내세워 선산에 묘소를 쓰지 못하게 한 일제에 대한 반발의 참혹한 결과였다.

“할아버지 무릎에서 한문을 배웠습니다. ‘어진 재상이 되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훌륭한 의사가 되라’며 한의사의 꿈을 심어준 것도 할아버지였습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동촌비행장을 탈출한 뒤 해방을 맞았다. 고성 이씨 문중의 재실 흥인당에서 눈치를 보며 한학을 익혔다. 3년이 넘는 서당 생활은 더없이 행복했고, 할아버지에게서 익힌 튼튼한 기초 실력 덕분에 자계서원 한문 강독회 장원에 뽑히기도 했다. 가정 형편상 정규학교 진학은 어려웠고, 친구를 따라 화양고등공민학교에 들어갔다. 6`25전쟁이 터져 학도병 1기로 징집되었다. 그러나 훈련 마지막 날 전염병이 발견되어 의무실에 격리된 뒤 의병제대를 했다.

“어느 날 면 호적주임이 찾아왔습니다. 호적 업무를 제대로 하려면 한자와 한글을 모두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한데, 제가 적격이라는 거였죠. 전쟁 중에 면서기만큼 안정된 직장도 없었습니다. 부모님도 여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면서기가 되면서 주당(酒黨)에 가입했고 매일 술판에 끼였다.

◆20세, 고등학생이 되다!

호적 업무를 보면서 면내에 있는 누가 어느 학교에 가는지 다 알게 되었다. “남들은 고등학교 가는데, 나는 호적등본이나 떼어주고 있구나!” 처량한 생각이 들면서도, “공부를 더 해야지” 하는 불길이 가슴속에 솟구쳐 올랐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집안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결혼 비용의 일부로 고등학교를 보내주면, ‘농사를 짓고’ ‘공부도 하면서’ ‘돈벌이까지 겸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대구시내 고등학교 몇 곳에 원서를 냈다. 고등공민학교 출신자는 응시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서류를 본 영남고등학교는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고등공민학교를 중학교로 인정해 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20세 변정환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입학 다음 날부터 새벽 3시에 집을 나서야 100리 길을 걸어 9시에 겨우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고,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밤 10시, 어떤 때는 자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죠.”(그 뒤 열차 통학권이 나와 1년간은 통학을 했고, 2학년 때부터 대구에서 자취를 했다. 요즘도 변 명예총장은 새벽 3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부모님은 학비가 적게 들고 취업이 보장되는 사범대학 진학을 바랐다. 변 명예총장은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한의학을 배우고 싶었다. 당시 한의학 대학은 서울의 동양의약대학(현 경희대 한의대)뿐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어길 수 없어 사범대학 시험을 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리고 눈물로 호소했다.

“아버지 기대를 어길 수 없어 여기 합격통지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고 싶은 곳은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 우리 집의 가업을 이을 한의대학입니다. 시험이나 보게 해 주십시오.”

◆“밀려드는 환자, 어떻게 할까?”

고교와 대학을 고학으로 다닌 변 명예총장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과 감 장사, 헌책팔이 등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흥인당에서 배운 한문과 붓글씨 실력이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었다.

“고교생 때는 학원모집 광고를 붓글씨로 써주고 어른 필경사의 보수를 받아 사글셋방을 구했고, 대학생 때에는 교수들의 교재 필경 작업을 맡았습니다. 내가 쓴 것이 그대로 등사되어 한의대생들의 교재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르바이트 이상의 기쁨이 생겼습니다.” 고물 장수로부터 ‘동의보감 원본 25권’과 ‘사상의학’ ‘주역’을 헐값에 사는 행운도 맛봤다.

1959년 12월 6일, 한의사 변정환은 대구 봉산동 2층 집을 10개월 사글세로 빌려 제한의원을 개업했다. 한의사로서 실력과 행운이 함께 따랐다.

“개원을 하루 앞두고 간판을 달 위치를 살피고 있는데, 큰길을 걸어오던 14, 15세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저도 깜짝 놀라 구경꾼을 제치고 소녀의 손목을 잡아 진맥을 했습니다. 한의원으로 들어가 침통을 들고 황급히 현장으로 가 침을 꽂았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더니, 부끄러워 골목 안으로 달음질쳤습니다.”

“용하다, 용해! 정말 용하다!”

제한의원은 개업식 날부터 축하객보다 환자들이 더 많았다.

사실 변 명예총장은 초보 개업의가 아니었다. 한의대 졸업반 때 친구와 같이 서울 빈민촌 하월곡동에 아르바이트로 한의원을 열었다. 그 당시에는 의사가 턱없이 부족해 이런 행위가 용인이 되었다. 치료비는 주는 대로 받고 돈이 없다면 그냥 무료로 했다. 이미 이때부터 동네 사람들에게 ‘신침'(神針)으로 소문이 났다.

대구에서 정식 개업 후 환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상주 처가에서 혼례를 올릴 때도, 첫날밤을 보낸 뒤 병원 일이 급해 새벽 첫차로 대구에 와야 할 정도였다. 개업 이후 10년간 서울 구경 한 번 못했다.

“당시 통행금지가 있었는데, 통금이 해제되면 새벽부터 200~300명의 환자가 몰려들었습니다. 하루에 혼자 진료할 수 있는 환자가 제한되어 있어 매일 150장의 번호표를 배부했는데요. 교통경찰이 줄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번호표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돌아가지 않고, 인근 여관에 머물다 다음날 새벽 또다시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미안하고,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고…….”

변 명예총장은 ‘제자들을 키워 과목을 나눠서 진료하는 방법’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고, 그 실천 방안으로 세계 최초의 한방종합병원인 제한한방병원을 1969년 대구 수성구 상동에 설립했다.

◆돈보다 명예가 더 중하다

한의대학 설립은 대구경북 한의사들의 숙원이었다. 경상북도한의사회 회장(1969~1974)을 맡으면서 지역대학을 찾아다니며 설득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라는 맹자의 말씀에 따라 직접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혼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2명의 동업자를 모았다.

“대학 설립 인가가 났는데, 교육법이 대학 설립자의 권한을 크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내 돈 실컷 쏟아붓고, 이런 대접 받을 바에야 왜 대학을 만드느냐’며 동업자들이 쏙 빠졌습니다.”

‘지금까지 번 돈으로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주위에서 만류했다. 그러나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했다. ‘돈 많이 번 한의사’란 이미지가 죽기보다 싫었다.

“(대구한의대학 설립에) 그동안 번 돈 다 쏟아붓고, 금융권에서 돈 빌리고, 사채도 빌렸습니다. 심지어 신혼여행도 못 간 집사람의 결혼반지까지 팔아 보탰어요.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후학을 양성해야 한다’는 말을 위로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온 정성을 모아 힘들게 설립한 대학이 분규를 겪을 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변 명예총장은 회고했다.

“정치권력의 힘을 빌려 학교를 크게 키우자는 일부 교수들의 제안을 거절하자, ‘총장이 학교 발전에 무관심하고 사리사욕만 챙긴다’며 학생들을 선동했습니다. 게다가 한의대 입학생 중 20% 이상이 서울 명문대 운동권 출신이었습니다. 취업이 안 되고 공부는 잘하니 한의사를 생업으로 삼겠다는 취지였죠. 큰 대학의 경우 200~300명 데모해봐야 아무렇지 않지만, 작은 대학은 존립이 흔들릴 지경이었습니다.”

변 명예총장은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구속 위기에 처한 어린 제자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석방 활동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문화가 경쟁력이다

변 명예총장은 우리 사회의 각종 병폐를 치료하는 데 백신이 필요하고, 그 백신은 문화라고 주장했다. 경제`돈이 아니라 문화가 사회와 국가를 올바르게 이끄는 힘이라는 것이다. 2015년 한중교류협회 핵심 인사들과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의 경험이다.

“국빈 환영 행사를 위해 조어대에 중국 지도부 500여 명이 모였습니다. 주요 인사들의 인사말이 모두 자국의 위대한 문화에 대한 자랑이었습니다. 경제성장률이나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어떻게 이런 중국인에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사말 순서가 돌아오자, 변 명예총장은 조어대 국빈관 입구에 걸린 한시(漢詩)를 생각해냈다. “입구 현판에 걸린 한시를 읽고 해석해 주실 분, 어디 안 계십니까?” 두 번, 세 번 물었지만 조용했다. 이유가 있었다. 국빈관 입구의 한시는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간자체가 아니라 번자체로, 그것도 읽기 어려운 초서로 쓰여 있었다. “그럼, 제가 읽고 해석한 뒤, 시창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변 명예총장은 한시창<漢詩唱>의 명인이다.)

즉석 공연(?)이 끝난 뒤 중국 지도부는 감동한 모습이 역력했다. 행사장을 떠나는 중국 측 인사들은 변 명예총장에게 45도로 허리를 굽혀 깍듯하게 인사하며 경의를 표했다.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에 따라 인격과 국격이 결정됩니다. 돈(경제)은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돈을 너무 앞세워 혼탁해지고 있는데요. 올해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뽑힐 지도자들은 이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석민 선임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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