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엘레지>(백영호 작곡, 한산도 작사, 손인호 노래. 1961)는 원래부터 인기 있는 대중가요였지만 특히 요즘의 트로트 오디션 열풍에 힘입어 더욱 열창되고 있다. 개중에서도 송소희나 빈예서 같은 영재적 감성과 창법을 가지고 있는 소녀 가수들의 <해운대 엘레지>는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다. 종합편성 TV들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 이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그 '흘러간 옛노래' 페스티벌이 한 시대를 풍미하는 블루 오션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을 하지 못했다. 송가인, 임영웅을 위시한 새 세대 스타 가수들이 대거 탄생하고 담당 PD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으며 스카우트의 대상이 될 것이란 걸 누가 예측했겠는가. 급기야 그 스타 PD는 '한일 가요대전'까지 만들어서 한일 양국 문화 교류의 첨병 역할까지 해낸다. TV에서 우리나라 가수가 일본어로 엔카를 부를 날이 올 것이라는 것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요즘 반도체 경기가 워낙 좋아서 수출 실적 100조원은 우습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 트로트 오디션 프로가 올린,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적 수익은 그것의 열 배는 족히 넘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식민지 콤플렉스를 강요받아온 올드 걸, 올드 보이들에게는 엄청난 인생 보너스를 지급했다.
<해운대 엘레지>가 트로트 오디션 프로의 단골 메뉴가 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 가사의 시적 완성도가 아주 높다는 데 그 첫째 원인이 있다.
(1절)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더냐/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 혼자 외로이/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못 잊어 내가 운다.
(2절) 백사장에서 동백섬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오고 또 가는 바닷물 타고 들려오네 지금도/ 이제는 다시 두 번 또 다시 만날 길이 없다면/ 못난 미련을 던져 버리자 저 바다 멀리멀리.
(3절) 울던 물새도 어데로 가고 조각달도 기울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는 가련다 떠나가련다 아픈 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 있거라.
<해운대 엘레지>의 가사는 집약적인 심정 묘사(서정), 배경 묘사(서경), 융합 묘사(서정과 서경의 조화)로 짧은 가사 안에 애절한 사랑의 한을 절묘하게 응축하고 있다. 그러한 '정서의 응축'에는 해운대라는 장소의 특별성도 한 몫 한다. 해운대는 1960~1970년대의 손꼽히는 신혼 여행지였다.
그런데 그런 선망의 장소가 이 가사 안에서 한순간 슬픔의 장소로 급 변환된다. 해운대는 오랫동안 젊은이들의 여행 희망지 1순위를 차지하던 장소였다. 여름에 해운대 해수욕장에 가서 살갗을 구릿빛으로 태워 오는 게 큰 자랑이었다.
그 시절 멋있는 해운대 여행을 가보지 못한 입장에서 심술궂게도 엉뚱한 상상을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다. "과연 해운대 여행을 같이 간 연인들 중에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이 몇 퍼센트나 될까?"라는 상상이었다. 일단 내 주변부터 살펴봤다. 몇 명 다녀온 것을 자랑한 친구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친구들은 모두 여행 파트너와는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내 친구들이 모두 나와 같은 '장안의 경박자'(유명한 조선조 여류 시인이 자신의 남편을 그렇게 표현한 것을 본 적이 있다)들이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젊어서의 연애는 어차피 이별의 정거장이다. 서로가 성숙을 향해 '한 번은 거쳐 가는 경험'에 해당될 때가 많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 '이별의 장소' 1위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반드시 헤어진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같은 이치라 생각된다. 그 길이 데이트하기에 아주 좋은 길이니 찾는 사람도 많고 그중에 헤어지는 사람도 많이 나올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러니 <해운대 엘레지>라는 슬픈 가사의 노래가 나와서 공전의 히트를 친 까닭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앞에서 합리적 추론에 따른 연애 장소론을 잠깐 펼쳤지만, "장소가 연인들의 앞날을 좌우한다"는 속신(俗信)은 사실 그 뿌리가 아주 깊다. 그것을 모티프로 한 재미있는 소설도 나와 있다. 심아진 소설 「안내」가 그것인데 '안내'라는 소설 제목은 20대 초반의 하숙집 여주인 차휘랑이 자신의 고객들에게 하숙집 생활을 안내(사실은 강제)하는 메모의 제목에서 나왔다.
이 소설의 화자 주인공 성준이 처음에는 그 안내에 저항하다가 종내에는 투항하고 마는 사연을 재미있게 담은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한 이성적이고 내성적인 인간이 맹목적인 주술적인 인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것이 소설 「안내」다. 소설 「안내」에서는 차휘랑이 전원 남자로 구성된 하숙생들을 어떻게 자신의 주술적 세계관 안으로 끌어들이는지, 그들을 어떻게 조련해서 자신에게 순응적 인간으로 만들어내는지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우선 그녀는 그 집을 물려준 할머니에 완벽하게 빙의된 삶을 살고 있음을 주지시키고(언행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대로 재연해낸다), 때때로 묵언을 수행하면서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고, '안내'라는 입주 안내서를 통해서 자신의 주술적 세계관을 거부할 시에는 언제고 퇴거 명령을 받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물론 그것만 가지고는 하숙생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없다. 그녀는 하숙생들이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신통력(神通力)도 한 번씩 내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압권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착용했던 팬티를 비밀리에 하사해서 그 하숙생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너끈하게 이루게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하는 비의(秘儀)에 속하는 것이지만 이미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성공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고 있어서 하숙집 안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에 속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 그에 맞먹는 신통력이 하나 더 있었는데 다름 아닌 안 풀리는 연애사를 단번에 극복하게 하는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맞춤형 안내'도 한 번씩 한다는 거였다. 3년을 끌어온 소득 없는 썸 혹은 일방적인 짝사랑이 차휘랑의 안내를 받아(태종대 여행을 권유받고 실행에 옮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관계로 급진전하게 되었다는 동숙생(同宿生) 한별의 고백은 주인공 성준을 마구 흔들기에 충분한 증언이었다. 사실 그는 과도한 다변증(多辯症)으로 사람을 너무 괴롭히는 연인 은비로부터 도망 나오기 위해서 그녀가 해외여행을 떠난 틈을 타서 그녀 몰래 하숙집을 옮긴 신세였다.
성준은 차휘랑에게 할머니 속옷 같은 걸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임용고시에 또 떨어지면 학원선생이라도 하면 그뿐이라 생각했다. 대신 '안내'에 적혀 있지 않아도 차휘랑의 머릿속에 있는 걸 알려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랐다. 동반 자살한 연인 귀신이 사랑을 응원하는 태종대와 같은 곳이 있다면, 가난한 선비와 원님의 딸을 맺어준 전령사 학(鶴)이 사랑을 이어주는 백령도와 같은 곳이 있다면, 원혼이 사랑을 방해하는 곳, 잘 사귀던 연인도 단번에 헤어지게 만드는 곳도 분명히 있으려니 여겨서였다……. 성준이 대문을 나서는데, 기어이 잔소리를 더 하려는 은비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성준이 살짝 들뜬 음성으로 답했다. 어, 지금 막 나왔어. 늦지 않을 거야.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이 멀뚱히 성준을 따라나섰다. [「안내」, 『안녕, 우리』(상상), 43쪽]
성준과 은비가 차휘랑이 점지해준 세 시간 거리의 섬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두 사람은 '이별의 주술'이 지배하는 장소로 떠나는 것이다. 차휘랑이라는 깜찍한 주술사의 주술적 세계로 들어선 이상 성준도 오리무중의 이 불투명한 세상에서 한 걸음 비켜나 운명이 예정된 밝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암시로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가·대구교대 명예교수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차기 대통령 후보 적합도 첫 1위…김민석 3.3%p차 추격
한동훈, 李 "농사 못 지으면 농지 뺏는다? 진실 아냐"에 재반박…"농민마저 비판세력 몰아"
李 해명에도 여전한 농지 전수조사 불신…밑바닥엔 불안·불통·불일치 [금주의 이슈]
조갑제 "민주당, 한동훈 제명 협박으로 망하는 길…'더불어망할당' 선택"
배현진 "개 수영장·용왕굿 얘기하더니…李대통령, 尹보다 물 많이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