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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속으로] 서화 원로 서근섭 작가 "70년 전, 처음 붓 쥐고 그릴 때를 떠올리며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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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까지 영천 시안미술관
전시장 전관서 대규모 개인전
획만 남기거나 색으로 그린 대나무 등
동시대와 통하는 다양한 변주 선보여

야정 서근섭 개인전
야정 서근섭 개인전 '취향(取向)-이어 변주하다'가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야정 서근섭 개인전
야정 서근섭 개인전 '취향(取向)-이어 변주하다'가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야정 서근섭 개인전
야정 서근섭 개인전 '취향(取向)-이어 변주하다'가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서근섭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서근섭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누군가는 옛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고, 누군가는 최첨단 기술을 결합한다. 때로는 덜어내고, 또 더하며 묻는다. 전통은 과연 무엇이며, 어제의 유행이 더 이상 오늘의 그것이 아닌 이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한국 서화의 원로로서, 붓을 잡은 세월만 70여 년. 야정(野丁) 서근섭 작가의 작품은 묘하게도 전통 서화와 동시대 예술의 경계를 흐린다. 평생을 서화에 천착해 온 그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다. 전통 깊숙한 곳에서 꺼낸 본질, 핵심은 결국 시대와 장르를 넘어 통한다는 것.

최근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개막한 기획전 '취향(取向)-이어 변주하다'에서는 그 핵심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흔히 쓰는 취향(趣向)이 아닌 '가질 취(取)', '향할 향(向)'의 뜻을 지닌 제목처럼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전통에서 무엇을 취해, 어디로 향해야할지를 제시한다.

◆"전통의 핵심인 '사의성', 동시대와 통해"

그는 석재 서병오, 죽농 서동균으로 이어지는 대구 서화의 맥을 잇는 작가다. 아버지인 죽농 선생을 따라 처음 붓을 쥔 게 6살 즈음.

"어느 날 글씨를 쓰는 아버지 옆에 앉아 작은 붓을 하나 쥐고 혼자 이리저리 그었어요. 저를 보시더니 붓은 이렇게 쥐고 자세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선 긋고 동그라미 그리는 걸 먼저 알려주셨어요. 자연히 고등학생 때까지 서예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고 스무살 되자마자 국전에 출품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죠."

탄탄한 서법이 바탕이 된 글씨를 수없이 썼고 197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함께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1978년, 아버지의 별세는 그의 서화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 최대 목표는 아버지였다"며 "하지만 그의 작품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따라갈 수 없는, 자꾸 멀어지는 세계였다"고 말했다.

이어 "젊을 때는 아버지처럼 그리고 쓰는 걸 목표로 삼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의 작품들을 보니 내가 평생을 해도 이처럼 할 수는 없겠다, 설사 그만큼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왕희지의 아들 왕헌지가 왕희지 못지않게 글씨를 잘 쓰는 명필이었다지만, 역사에서는 왕희지만 두고 얘기하지 않나. 그래서 그때 평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게 흔들리게 됐다. 아버지와 다른 그림을 해야겠다, 나만의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찾은 전통의 핵심은 사의성(寫意性). 전통 문인화에서 강조하는 사의적인 표현은 대상을 그대로 보고 그리기보다, 그것에서 느낀 인상이나 감정 등을 잘 담아낸 것을 말한다.

"많은 작가들이 현대 서화를 한다며 무분별하게 서양 미술과 영합하기도 합니다. 나름의 이유와 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가 가진 전통 서화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사의성을 강조하는 데서 오히려 현대적인 것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싶어요. 지금 유행하고 있는, 혹은 유행하는 것과 결합해서 만들어내기보다 전통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골라내 강조하는 데서 동시대와 통하는 부분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작업해오고 있습니다."

야정 서근섭 개인전
야정 서근섭 개인전 '취향(取向)-이어 변주하다'가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야정 서근섭 개인전
야정 서근섭 개인전 '취향(取向)-이어 변주하다'가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야정 서근섭 개인전
야정 서근섭 개인전 '취향(取向)-이어 변주하다'가 영천 시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연정 기자

◆기교나 서법 버리고, 다시 본질로

전시장에는 사의성을 중심으로 한 그의 다채롭고 자유로운 변주가 펼쳐진다. 재료, 형태, 형식까지 어떠한 제약을 두지 않고 이 시대와 함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의 초월적인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1층 전시실 '취묵(醉墨)-형(形)을 벗다'에서는 대나무의 형상이 차츰 사라지고 서예의 획이 드러나는 작업들이 소개된다.

"최근의 이 작품들은 제가 아주 어릴 때, 처음 아버지가 선을 그어보라, 동그라미를 그려보라 하던 그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작업한 것들입니다. 서예에서 문자나 문학성을 빼고 아주 본질적인 것만 남긴 것이죠. 아주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때 묻지 않은 선을 그어 보려고 굉장히 애를 썼어요. 힘찬 필력보다는 어린 아이에게 처음 붓을 쥐어줬을 때, 첫 선을 그어나가는 그런 느낌을 살리고 싶었죠.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기교나 서법을 하나씩 버리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 덜 버린 것 같아요."

2층 전시실 '희필(戲筆)-격(格)을 풀다'에서는 오로지 한 그림만을 바닥에 눕힌 채로 전시했다. 박천 시안미술관 학예실장은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먹이 뭉쳐지고 고이며 번져나간 흔적을 따라가며 작가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된다"며 "작가가 어떤 시선으로,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제작했는지 좀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독특한 전시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3층 전시실 '유희(遊戲)-색(色)을 취하다'에서는 아크릴로 그린 색색의 대나무 숲이 관람객들을 반긴다. 그는 "먹은 단순히 검은색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색을 담은 현(玄)"이라며 "삼라만상이 담긴 그 현에서 다양한 색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화폭에는 전통 서화에서 볼 수 있는 제화(題畫)도, 문자 하나도, 심지어 여백도 보이지 않는다.

"시서화가 함께 담기는 게 전통적이지만, 너무 많은 걸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감상의 폭을 좁힐 수도 있죠. 더욱이 한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보기엔 전통 서예나 문인화가 추상화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겁니다. 그래서 시나 글씨, 여백 등으로 설명을 많이 하기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한 두 마디로 집약해서 남기려고 한 결과물입니다."

그는 대나무 자체를 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대나무는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작가는 "요즘 문인화는 기법 위주로만 전수되는 추세"라며 "문인화의 창작 정신인 사의성을 잊으면 안된다. 그것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표현하다보면 이 시대와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욕심을 내서 하나 둘 모은 내 경험과 지식들이 이제는 짐이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전시는 내가 취했던 것을 다 버리는 과정이자, 이 시대의 미감에 맞게 전통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월요일 휴관.

※야정 서근섭= 1946년 대구에서 출생했으며 한국 문인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1991년 계명대학교 서예과 신설을 주도했고 1995년 대구예술대학교 서예과 신설에도 참여했다. 계명대 서예과 교수로 20여 년을 재직하며 미술대학장을 지냈고, 대구·경북서예가협회장과 영남서예가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죽농서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시미술대전 초대작가상을 비롯해 국제라이온스협회 문화상, 여암문화재단 문화상, 계명대학교 공로상, 교육부 공로상, 대구시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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