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처마 끝까지 내려앉은 고택 툇마루에 앉아 책장을 넘긴다. 휴대전화는 가방에 넣어 두고, 방에는 TV가 없다. 올가을 2040 세대가 찾는 여행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 북적이는 축제장 대신 숲속 한옥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책을 읽는 '한옥 북스테이'다. 강릉 선교장에서 남원 몽심재까지 권역별로 다섯 곳을 골랐다.
◆ 당일치기 줄고, 책은 '위로'가 됐다
머무는 여행이 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6월 낸 2025년 국민여행조사 보고서를 보면 국내 여행 중 당일여행 비중은 58.8%로 전년보다 1.3%포인트 줄었다. 숙박여행 한 번에 쓰는 돈은 평균 22만원 남짓으로, 당일여행의 세 배가 넘는다.
책을 찾는 이유도 달라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가장 최근 통계인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1년에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은 열 명 중 네 명을 조금 넘었다. 그런데 20대는 74.5%, 30대는 열에 일곱 가까이가 책을 읽었다. 성인이 책을 읽는 목적 1위는 '마음의 위로와 성장'이었다. 지식 습득을 제쳤다. 독서를 방해하는 요인 2위는 스마트폰 같은 다른 매체였다.
한 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외부 환경에 민감하고 자기 계발과 취미 활동에 자유로운 2030 세대의 특성이 독서 붐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야놀자리서치가 지난해 12월 낸 보고서에서는 국내 상위 관광지의 절반이 자연경관형이었다. 숲과 고택, 책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유다.
◆ 강원·충청: 300년 고택과 숲속 작은 책방
강릉 운정동 선교장은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다. 300년 된 고택의 사랑채에서 잠을 자고, 아침엔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선교장은 건물 보존 때문에 무선인터넷과 TV가 안 되거나 끊길 수 있다고 미리 안내한다. 책을 펴기엔 오히려 좋은 조건이다. 강릉 초당마을 쪽에는 고택 다실과 독립서점을 묶은 북스테이도 있다.
충북 괴산 칠성면 숲속작은책방은 시골 마을의 서점이다. 주인이 고른 책을 파는 서점에 2층 다락방 숙소를 붙였다. 회원제로 운영한다. 서점 주인의 서가에서 책을 고르고, 그 책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다.
◆ 영남·호남: 수몰지에서 옮겨온 고택, 지리산 자락 명상
경북 안동 성곡동 전통리조트 구름에는 안동댐 수몰지역의 고택을 옮겨 복원했다. 고택 군락 안에 복합서재 '구름에On'을 뒀다. 서가에 꽂힌 책이 1천500여 권이다. 숲에 둘러싸인 고택에서 책을 읽다 북카페로 건너가는 동선이다.
전북 남원 몽심재는 국가민속문화재 제149호다. 고택에서 묵으며 명상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남원 지리산 자락 한옥들은 지리산 인문 도서와 시집을 갖추고 밤에 독서 프로그램을 연다. 구들장 온돌 위에서 읽는 책이다. 호남권은 남원·전주 한옥마을을 바탕으로 문학·판소리를 엮은 인문 스테이가 특화돼 있다.
하나를 더 보태면 완주 오성한옥마을이다. 마을 안 소양고택은 북스토어 '플리커'와 함께 고택 북스테이로 운영 중이다. 이 마을은 문체부의 2025~2026 한국관광 100선에 새로 올랐다.
◆ 수도권: 서촌 골목, TV 없는 방
서울 종로구 필운동 일독일박은 이름 그대로 하룻밤에 한 권을 읽는 집이다. 서촌 골목 한옥에 TV를 두지 않았다. 대신 낮은 조명과 중정, 주인이 고른 서가를 뒀다. 멀리 가기 어려운 이들이 하루 저녁을 책에 쓰기 좋은 곳이다.
한옥 숙소는 생각보다 많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7월 집계한 지방행정인허가 통계를 보면 전국에서 영업 중인 한옥체험업소는 2천961곳이다. 경북·전북·서울에 몰려 있고, 서울에만 423곳이 있다.
◆ 고택의 밤, 알고 가야 할 것
고택은 편하지 않다. 목조 건물이라 방음과 단열이 현대식 숙소보다 약하고, 와이파이와 TV가 없을 수 있다. 값도 만만치 않다. 한 대학 겸임교수는 "한옥의 경우 리모델링이나 수리를 하는 데 훨씬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수리비가 같은 크기 아파트의 두 배를 훌쩍 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1박 수십만원대 요금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을 닫는 곳도 적지 않다. 누적 등록 업소 가운데 폐업률은 18.5%다. 정부는 7월 관광진흥법 시행령을 고쳐 한옥체험업소가 숙박료를 안 붙여 두거나 더 받으면 첫 적발에도 영업정지 5일을 내리도록 했다. 예약 전에 요금 게시 여부와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품질인증을 확인하면 분쟁을 줄일 수 있다.
◆ 연박 7만원 할인, 단풍 절정은 10월 하순
문화체육관광부는 가을 숙박세일 페스타를 지난달 22일 열었다. 할인권 발급과 입실은 11월 8일까지다. 14만원 이상 연박하면 7만원을 깎아 준다. 비수도권 숙소에서 7만원 이상 결제하면 3만원 할인권도 쓸 수 있다. 대상은 한옥체험업 등 등록 숙박시설이고, 대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경기·인천은 빠지므로 일독일박은 해당하지 않는다.
단풍은 늦다. 산림청은 올해 한반도 산림의 단풍 절정을 10월 하순으로 예보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첫 단풍은 지난달 14일 점봉산에서 관측됐다. 강원 북부 산지가 먼저 물들고 지리산·남원 등 남부권은 10월 하순 이후 절정에 이른다. 강릉은 앞서, 남원은 뒤에 가는 순서다.
국립수목원은 주소를 넣으면 그 동네 단풍 절정일이 나오는 검색 서비스를 지난달 29일 공개했다. 묵을 고택의 주소를 넣으면 날짜가 뜬다. 이 서비스의 바탕이 된 것은 시민과학자 829명이 전국에서 남긴 관측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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