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적 없는 택배가 알리·테무 발송 명의로 문 앞에 온다. 통관 안내 문자가 먼저 오고 모르는 물건이 뒤따른다. 개인통관고유부호 도용 흔적이다. 11월 광군제와 블랙프라이데이 직구 성수기를 앞두고 이런 피해가 빠르게 늘고 있다.
문진석 의원실이 지난달 26일 공개한 관세청 자료를 보면 통관부호 도용 의심 신고는 2022년 1502건에서 지난해 7만1440건으로 46배가 됐다. 올해는 7월까지만 2만9350건이 접수돼 재작년 한 해치를 이미 넘어섰다.
◆ 내 번호가 밀수 통로가 된다
도용된 부호는 세금을 떠넘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관세청은 타인의 통관부호 3천여 개를 끌어다 138억원어치 위조품을 들여와 판 조직을 적발했다. 남의 부호로 홍콩에서 40억원대 술을 반입해 관세 2억9천만원을 빼돌린 사건도 있었다.
오픈마켓에 입점한 한 유통업체는 고객 부호 570여 개로 청소기 등 1천900여 점을 자가사용 물품처럼 쪼개 들여왔다. 해외직구 물품의 열에 일곱은 150달러 이하 면세 목록통관으로 들어오는데, 범죄자들은 이 틈을 노린다. 피해자는 자기 이름으로 밀수 기록이 남은 뒤에야 알게 된다.
임이자 의원실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제출받은 관세청 자료를 보면 한 사람이 통관부호 하나로 물품 2566건을 들여왔다. 금액으로는 약 6억4천만원어치에 달했다. 개인 한 명이 반입한 양으로는 가장 많았다. 자가사용 물품은 세금을 물지 않으니 부호 하나에 주문이 몰릴수록 판매용 물량이 면세 통로로 빠져나간다.
관세청이 지난해 11월 광군제 특별단속을 알리며 낸 자료로는 지난해 1~9월 적발한 해외직구 악용 사건이 800억원 규모였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2% 늘었다. 이 가운데 자가사용으로 꾸며 판매용 물품을 들여온 밀수가 563억원으로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도용이 파고드는 물량 자체도 커지고 있다. 조승래 의원실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공개한 관세청 자료를 보면 2024년 해외직구 통관 건수는 1억8184만건으로 역대 최대였다. 박성훈 의원실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전자상거래 수입 9142만건 가운데 중국발이 7083만건으로 77%였다.
◆ 첫 단추는 알림…받는 사람은 16%뿐
도용을 가장 빨리 알아채는 길은 통관 알림이다. 유니패스에서 통관내역 문자 알림을 신청하거나 국민비서 구삐로 전자상거래 물품통관내역을 받도록 연동하면 내 부호로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실시간으로 안다. 그런데 이 알림을 쓰는 사람은 전체 이용자의 16%, 429만여 명에 그친다.
알림을 받고 산 적 없는 통관 내역이 보이면 관세청 누리집 도용신고센터에 바로 접수한다. 실제로 저가 전자제품이 통관됐다는 카카오톡 알림을 받고 유니패스에 도용 신고를 낸 사례가 상담센터에 접수돼 있다. 남이 내 이름으로 물건을 들여오며 세금을 내게 떠넘긴 경우도 이 창구로 구제를 요청한다.
알림 신청자가 적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 도용 규모는 집계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 안 살 땐 잠그고, 샜으면 바꾼다
직구 계획이 없는 기간에는 유니패스에서 '사용정지'를 켜 둔다. 정지 상태에서는 타인이 내 부호로 수입신고를 해도 자동 차단되고, 다시 살 때 해제하면 된다. 본인 인증 뒤 버튼 하나로 끝나는 설정이다.
부호가 이미 새어 나갔다고 의심되면 재발급이 답이다. 유니패스에서 본인 인증 후 즉시 새 부호가 나오고 기존 부호는 폐기된다. 다만 횟수는 1년에 최대 5회로 묶여 있다. 재발급 신청은 2020년 1만7천여 건에서 올해 7월 12만4천여 건으로 불었다.
관세청은 지난해 6월 통관고유부호 등록·관리 고시를 고쳐 도용 정황이 보이면 부호관리자가 직권으로 사용을 정지할 수 있게 했다. 이용자가 스스로 잠그지 않아도 관세청이 먼저 막는 장치다. 임이자 의원실의 지난해 국감 자료로는 부정사용 우려로 정지된 부호가 약 7만5천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재발급은 13만5174건이었다.
◆ 올해부터 유효기간 1년…우편번호도 대조
관세청은 올해 1월부터 개인통관고유부호에 1년 유효기간을 뒀다. 갱신하지 않으면 자동 해지된다. 그 전에 발급받은 부호는 2027년 본인 생일에 일괄 만료되므로, 그때까지 한 번은 유니패스에 들어가 갱신해야 한다.
2월부터는 통관 때 성명·전화번호에 더해 배송지 우편번호까지 대조한다. 내가 등록해 둔 주소와 다른 곳으로 가는 물건은 걸러진다. 직장이나 가족 집으로 받는 사람은 사전 배송지를 20건까지 등록할 수 있다. 8월 말에는 직구 건별로 일회용 인증번호를 입력하는 제도가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 재발급 전에 확인할 것
방어막에도 부작용은 있다. 관세청 통관 부서는 배송 중이거나 입항 전인 정상 주문이 있을 때 부호를 바꾸거나 정지하면 목록통관이 보류돼 수령이 늦어진다고 안내한다. 재발급 뒤에는 쇼핑몰에 등록된 부호도 새것으로 고쳐야 한다. 우편번호 검증 역시 배송대행지를 자주 바꾸는 이용자가 사전 등록을 빠뜨리면 정상 물품까지 묶일 수 있다.
관세청은 다음 달 광군제와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전국 34개 세관에서 직구 불법 수입과 통관부호 도용을 집중 단속한다. 지난해에도 같은 시기 8주간 특별단속을 벌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해외 직구나 물류량이 증가할수록 마약이나 총기류 은닉, 불법 밀반입 등의 범죄에 타인의 개인통관고유부호를 이용한 신분 위조·변조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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