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유럽을 상대로 폭력적이고 반(半)은밀한 형태의 '그림자전쟁'을 확대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드론 공작·사이버 공격·인프라 파괴 등 하이브리드 도발에 맞서 EU 차원의 공동 대응 체계 구축에 나섰다.
EU 국방장관들은 지난달 28일 벨기에 브뤼셀 회의에서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비상 안보 프로토콜(Emergency Security Protocol)' 신설 방안을 논의했다. 이 프로토콜은 나토 집단방위 조항(제5조) 발동 기준에는 미치지 않지만, 하이브리드 공격 발생 시 EU 차원에서 즉각 공동 대응을 조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는 회원국 안보가 위협받을 때 긴급 협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나토 조약 제4조와 유사한 장치다. 나토 조약 4조는 역사상 9번 발동됐으며, 지난해에도 두 차례 발동됐다.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격 사례로는 독일 라이프치히 공항에서 발견된 폭발물 탑재 드론, 발트해 해저 케이블 절단, 독일·폴란드·영국 물류 시설에서의 소포 폭발, 체코 버스 차고지 방화 미수, 폴란드 철도 선로 폭파 등이 꼽힌다.
독일 내무부는 라이프치히 공항 드론 사건을 "러시아 하이브리드 작전의 확립된 패턴"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독일 정부는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나서야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며 비난에 나섰다. 이후 독일은 러시아 대사 세르게이 네차예프를 초치하고, 베를린의 러시아 과학문화원과 본의 러시아 영사관 임대를 종료하는 한편 러시아 국민에 대한 새로운 비자 제한을 도입했다.
서방 정보기관과 법 집행 기관들은 이 공격들을 크렘린에 귀속시키고 있으며, 일부 사건에서는 기소와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같은 공격 방식은 '하이브리드전' 또는 '회색지대 전쟁'으로 불린다. 실제 전쟁 수준에는 미치지 않으면서 광범위한 민간 표적을 대상으로 파괴와 혼란을 일으키되, 공격 주체를 특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크렘린의 목표는 군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정치적인 것으로, 유럽 지도자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러시아와의 직접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지원을 주저하게 만드는 데 있다.
한편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유령 회사, 대체 통화, 그림자 유조선 선단 등을 활용한 러시아의 우회 전략으로 인해 일관성 있는 적용이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EU 회원국 일부가 나토에도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EU의 새 프로토콜이 나토의 기존 절차와 중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나토 내부에서도 "집단 대응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아직 없고,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방공 제압 능력과 장거리 타격 능력, 요격 전력이 심각하게 고갈된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도발이 나토 조약 제4조 발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다시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제5조 집단방위 조항 발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EU 집행위원회의 비상 안보 프로토콜 제안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이달 초 제출했으며, 회원국들의 추가 협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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