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아파트 한 채를 둔 직장인이 서울 발령을 받아 전세를 알아보면 은행 창구에서 뜻밖의 통보를 받는다. 전세대출은 나오지만 쓰고 있던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 대책으로 1주택자 전세대출 DSR 반영이 시작되며 수도권·규제지역에 세를 얻을 때 전세대출 이자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들어가기 시작한 뒤 생긴 일이다.
◆ 집이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세 드느냐
이 규제의 기준은 보유 주택의 소재지가 아니라 임차 주택의 위치다. 금융위원회는 정책 문답에서 집이 지방에 있어도 서울·경기·인천이나 규제지역에 전세를 얻으면 전세대출 이자를 DSR에 반영한다고 못 박았다. 반대로 지방에서 세를 얻으면 적용되지 않는다.
전세대출은 만기에 한꺼번에 갚는 구조라 원금은 DSR 계산에서 빠진다. 대신 1년치 이자 전액이 연간 원리금 상환액에 더해진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낸 설명자료를 보면 이 규제로 한 해 5만2천여 명이 영향권에 든다고 추산했다.
◆ 이자 800만원이 마이너스통장을 깎는 과정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사례를 따라가 보자. 지방에 시가 3억원 아파트를 가진 차주가 서울 마포구 전세로 옮기며 연 4% 금리로 전세대출 2억원을 받는다. 한 해 이자는 800만원이다.
이 차주의 연소득이 6천만원이면 은행권 DSR 40% 기준으로 한 해 갚을 수 있는 원리금 상한은 2400만원이다. 여기서 전세대출 이자를 빼면 남는 여력은 1600만원이다. 신용대출은 실제 만기와 상관없이 5년에 나눠 갚는 것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원금 부담이 크게 잡힌다. 그 결과 5천만원이던 마이너스통장 한도가 2천만원으로 줄어든다.
전세대출 자체의 한도도 좁아졌다. 1주택자가 수도권·규제지역에서 받을 수 있는 전세대출 보증 한도는 2억원으로 일원화됐다. 보증금이 그 이상이면 나머지는 신용대출로 메워야 하는데, 신용대출을 늘리면 DSR이 다시 차오르는 악순환이 생긴다.
◆ 내년 1월, 보증비율도 줄어든다
규제는 한 단계 더 조여진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8월 발표한 종합대책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수도권·규제지역 1주택자의 전세대출 보증비율은 80%에서 70%로 낮아진다. 지방 등 기타 지역은 80%가 유지된다. 보증비율이 떨어지면 은행이 떠안는 위험이 커져 금리나 심사가 깐깐해진다.
수도권에 집을 두고 거기 살지 않는 1주택자는 사정이 더 급하다. 실거주 이력이 없으면 내년부터 전세대출 신규 취급과 만기 연장이 원칙적으로 막힌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8월 집계한 자료를 보면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를 가진 1주택자의 전세대출은 6만건, 9조3천억원 규모다.
◆ 한도 지키는 세 가지 셈법
빠져나갈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버팀목 전세대출이나 지자체 협약 전세대출 같은 정책 목적 대출은 DSR 산정에서 빠진다. 소득·보증금 요건이 맞는다면 은행 일반 전세대출보다 먼저 살펴볼 선택지다.
둘째, 이미 전세대출을 쓰고 있다면 증액 없이 같은 집에서 만기만 연장하거나 같은 은행에서 갈아타는 경우 신규 심사를 받지 않는다. 다만 보증금을 올려 갱신하거나 다른 집으로 이사하면 대출 전액이 신규로 분류돼 DSR 심사를 다시 받는다. 이사 시점과 보증금 증액 여부가 한도를 가르는 셈이다.
셋째, 신용대출 정리다. 신용대출은 5년 분할로 환산돼 원금이 무겁게 잡히므로, 전세대출 신청 전에 일부를 갚아 두면 그만큼 여력이 돌아온다. 반대로 신용대출이 1억원을 넘으면 실행 뒤 1년간 규제지역 주택을 살 수 없다는 약정이 붙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 "대출이 막히면 다중채무로 간다"
실수요자까지 갭투자자와 같은 잣대로 묶였다는 반발은 여전하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지방 근무지 이전이나 자녀 교육으로 상경하는 1주택자가 투기 목적이 아닌데도 같은 차단 규제를 받는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DSR 한도가 일찍 소진되면 제2금융권이나 고금리 신용대출로 밀려난다는 지적도 함께 내놨다.
학계에서는 아예 산식을 손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전문가는 임차인에게는 보증을 제외한 전세대출 원금과 이자를, 임대인에게는 전세보증금 전체를 DSR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주택정책 전문가는 "집값이 오르면 전세보증금도 오르게 마련인데 전세 대출을 규제하면 대출받기가 어려워진 이들은 다중채무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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