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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유변] 국립의전원 신설과 15년 의무 복무, 현대판 노예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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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명목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공공의대, 즉 '국립의전원' 설립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지방의료공백을 막고 필수 의료를 살리겠다는 명분을 걸었으나, 그 실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정책의 타당성과 실효성에 많은 의문점이 풀리지 않는다. 과연 국립의전원 신설이 혈세를 투입해 마땅한 시급한 국가적 과제인지, 아니면 정치적 공약 이행을 위한 졸속행정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의사 수 부족에 대한 진단부터가 엇갈리는 마당에 굳이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을 들여 새로운 의전원을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과 인구 감소 추세를 고려할 때, 면밀한 수요 예측 없는 의사 증원은 또 다른 공급 과잉과 건강보험 재정 파탄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둘째, 제도의 역사적 실패를 망각한 퇴행적 발상이다. 이미 국내 의과대학들은 과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전면 도입했다가 교육의 질 저하, 학제 파행, 이공계 인재 이탈 등의 부작용을 겪고 다시 6년제 의과대학 체제로 회귀했다. 실패가 검증된 의전원 제도를 무슨 미련으로 다시 꺼내 드는가.

셋째, 입지의 정당성과 부속병원 구상의 모순이다. 인구 1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소도시 남원에 의전원을 둔다는 것부터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284병상의 남원의료원을 500병상 규모로 증축하여 교육 실습 병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지역 인구를 고려한다면 비효율적 예산 낭비다. 과거 부실 운영으로 폐교된 서남의대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남원에 또다시 의전원 신설의 깃발을 꽂는 것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가 의학교육평가원 기준에 따르면 전임 교수 112명 이상이 필요하다. 특히 기초의학 교수는 기존 의과대학에도 부족한 형편인데, 도대체 어디서 전임 교수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

넷째, 의전원 졸업 후 15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하는데, 이 정도면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소지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효성도 부족하다.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교육시킨다는 명목으로 강제성을 부여한다고 해서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지방에 남을까. 강제된 근무에서 비롯된 소극적인 진료 태도와 낮은 의료 서비스는 당연하며,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나는 순간 수도권으로 이탈은 정해진 수순이다. 일본의 지역의사제 실패 사례와 군의관·공보의 제도의 고질적인 한계를 통해 신설될 국립의전원의 실패를 예상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정책의 출발점이 현 정부의 대선공약이라는 점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명백한 오류와 부작용이 예견된 정책을 맹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약속한 건 꼭 합니다.'라는 약속 이행의 다짐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니 국가의 미래와 더 나은 의료 정책을 위해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맞다.'라며 과감하게 멈춰 서는 모습이야말로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향한 유연한 리더십이 아닐까. 백프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뻔한 정치적 수사보다, 멋짐 풀풀 날리는 의외의 쿨한 결단을 기대해 보는 것은 무리일까.

김경호 대구광역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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