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가 은빛으로 눕는 계절이다. 바람이 갯골을 훑고 지나가면 물길 양쪽이 한꺼번에 일렁이고, 그 위로 북쪽에서 내려온 철새 선발대가 내려앉는다. 가을 연안 습지의 풍경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올가을 한국의 갯벌은 조금 더 넓어졌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여수·고흥·무안·서산 갯벌 279㎢를 '한국의 갯벌'에 추가로 올렸다. 확대 등재 뒤 처음 맞는 가을, 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갯벌을 보는 다섯 곳을 골랐다.
◆ 국토의 2.4%, 조류 216종의 땅
해양수산부의 2023년 갯벌면적조사를 보면 전국 연안습지는 2,443.3㎢로 국토의 2.4%다. 열에 아홉 넘는 면적이 서해안에 몰려 있고, 시도별로는 전남이 가장 넓다. 다만 5년 사이 매립과 개발로 여의도 열 몇 개 넓이가 사라졌다.
이 갯벌에 조류 216종이 기록돼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2단계 등재를 결정하며 확인한 수치다. 저어새·흑두루미 같은 멸종위기 조류 24종이 여기서 쉬거나 겨울을 난다. 동아시아에서 호주까지 오가는 물새 약 5,000만 마리가 해마다 이 길을 쓴다. 해양수산부는 "1단계 등재 당시 제시된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노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 순천만, 수면 높이에서 보는 갈대
남해안의 대표는 전남 순천만이다. 갈대 군락 5.4㎢는 국내 최대 규모이고, 갯벌 전체는 22.6㎢에 이른다. 환경부의 2024년 생태관광지역 방문객 조사에서도 순천만은 가고 싶은 곳 1위였다.
이곳의 가을은 배에서 완성된다. 무진교 옆 대대선착장에서 생태체험선이 뜬다. S자 수로를 왕복 6km, 30분 돌아오는 기본 노선이 성인 7,000원이다. 별량 화포까지 가는 긴 노선은 거리와 시간이 두 배이고 요금은 1만2천원이다. 배는 갯벌을 다치지 않게 7노트 아래로만 움직여, 갈대밭과 칠면초 군락, 물가에 선 흑두루미와 노랑부리저어새를 수면 높이에서 본다.
사전 예약은 받지 않고 현장에서 표를 산다. 승선신고서를 쓰고 신분증을 내야 배에 오른다. 썰물 때는 아예 배가 못 뜨고 날씨가 나쁘면 전면 중단되므로, 출발 전 순천만습지 누리집의 그날 물때부터 보는 게 순서다. 순천시는 조수 차로 결항이 잦은 문제를 줄이려 전기추진 쌍동선을 들여놨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 사무국의 한 담당자는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순천만은 쓰레기가 널려 있는 버려진 땅이었고 시는 세수를 위해 골재채취까지 허가했으나, 반대 운동을 계기로 지역민과 시민단체, 행정이 협력해 지속가능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 시흥 갯골, 배 대신 전망대와 전기차
수도권은 경기 시흥 갯골생태공원이다. 옛 소래염전 자리 150만 평 폐염전 터를 공원으로 돌렸고, 2012년 2월 경기도 유일의 내만갯골로 국가 해양습지보호지역이 됐다. 보호지역 자체는 0.71㎢로 작지만, 바다에서 내륙 깊숙이 들어온 갯골이 도심 한복판에 남아 있다는 점이 드물다.
여기선 배를 타지 않는다. 대신 높이 22m, 목조 6층 흔들전망대에 오른다. 나선형 계단을 돌아 올라가면 갯골이 구불구불 염전 터를 가르는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 1936년에 지은 최고령 소금창고까지 걷는 길과 전기차 투어, 턱 없는 데크 코스가 이어지고 입장료는 없다.
◆ 서천, 1만km 날아온 도요새의 쉼터
충남 서천갯벌은 금강하구에 붙어 있다. 유부도 일대는 1만km를 이동하는 도요물떼새가 반드시 쉬어 가는 곳으로 2021년 세계자연유산에 들었다. 2008년 습지보호지역 지정 뒤 15.3㎢가 람사르습지로 등록됐고, 해양수산부가 관리하는 보호지역 면적은 68.09㎢다.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은 이 철새 서식지를 바다에서 보는 탐조선과 가을 철새 교실을 운영한다. 유부도 방면 배편은 조사선 성격이 섞여 있어 일반인이 탈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떠나기 전 전시관에 그날 운항 여부를 묻는 편이 안전하다.
◆ 낙동강하구와 신안, 겨울이 오면 물러서는 배
부산 을숙도에서는 낙동강생태탐방선이 뜬다. 문화관광해설사가 함께 타고 하구 둔치와 갈대밭을 돌며 예약제로 운항한다. 최소 여섯 명은 모여야 배가 나간다. 11월부터 3월까지는 을숙도 철새를 지키려 구간을 줄여 다니므로, 긴 코스는 10월이 마지막이다.
다섯 번째는 전남 신안이다. 2021년 1단계 등재 때 들어간 신안갯벌 유산 면적은 1,100.86㎢로 한국의 갯벌 가운데 가장 넓다. 섬과 섬 사이가 모두 갯벌인 땅이라 한 곳에서 다 볼 수는 없지만, 세계유산 지도의 가장 큰 조각이 여기다.
◆ 배가 지켜야 할 거리
가을 연안 습지에서는 탐방선 자체가 쟁점이 되기도 한다. EAAFP와 환경단체들은 엔진 소음과 배가 일으키는 물결이 철새 먹이터를 흔든다며 월동기 운항 횟수를 줄이자고 요구한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는 가을철 인파에 데크 옆 염생식물이 밟히고, 조류독감이 돌면 탐방로를 자주 닫아야 하는 한계를 토로한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확정한 제2차 갯벌 기본계획(2026~2030년)에서 갯벌안전관리구역을 보전·휴식·체험 등 다섯 유형으로 나눴다. 어디까지 걸어 들어가고 어디서 배를 멈출지가 이 체계로 정리된다.
순천시는 11월부터 흑두루미 집중 모니터링에 들어간다. 2024년 겨울 정점기 순천만에 내려앉은 흑두루미는 5,818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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