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메모리 수요 급증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가격이 치솟자, 글로벌 빅테크들이 조달 전략 다변화에 나섰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맞춤형 HBM의 제조 공정을 TSMC로 통일하는 방식으로 공급 주도권 강화에 나섰고, 인텔은 비싼 HBM 대신 저전력 D램을 택하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차세대 맞춤형 HBM인 'NVHBM'의 베이스다이를 TSMC 3나노 공정으로, 코어다이는 6세대 D램 공정(1c)으로 통일해 생산할 것을 요청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내부 검토를 거쳐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엔비디아는 메모리 공급업체별로 제조 방식이 달라질 경우 성능을 일관되게 구현하기 어렵고 제품 검증 부담도 커질 수 있어 베이스다이 공정을 TSMC 3나노로 통일하도록 요구했다. 베이스다이는 여러 개의 D램을 쌓아 만든 HBM 하단에서 GPU 등 연산 칩과 메모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엔비디아는 지난 8월 NVHBM을 공개하며 연산 칩에서 메모리 제어기가 차지하던 공간을 줄여 연산 기능을 늘리고 메모리와의 데이터 전송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표준 HBM4E보다 메모리 대역폭은 최대 30% 늘고, HBM 전력 사용량은 15%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에는 득실이 엇갈린다. 그간 HBM 공급 시 코어다이와 베이스다이를 모두 자체 생산해온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기술적 요구를 수용하면서 자체 '턴키(일괄공급)' 방식의 단일 노선에 변화를 준 것이다. TSMC 공정 활용 범위는 NVHBM 베이스다이에 한정된다. 코어다이는 삼성전자가 직접 생산하고, 표준 제품에는 자체 파운드리 공정을 그대로 쓴다.
SK하이닉스는 베이스다이를 이미 TSMC에서 만들지만, 코어다이를 1b에서 1c로 한 세대 올려야 한다. 업계에서는 TSMC 3나노의 수율을 90% 이상으로, 이에 대응하는 삼성 파운드리 2나노 공정은 60% 안팎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로서는 TSMC로 베이스다이 공정을 일원화하는 것이 안정적 선택인 셈이다.
시장에서는 엔비디아가 메모리 제조사의 생산 방식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지금은 메모리 부족이 워낙 심한 상태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제조 업체의 협상력이 더 높다"며 "메모리 수요자인 빅테크 기업들이 리더십을 자신들 쪽으로 끌고 오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설계 변경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인텔은 최근 사양을 공개한 AI 추론용 GPU 'D 시리즈'에 HBM 대신 저전력 D램을 대거 배치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일부 GPU 및 주문형반도체(ASIC) 업체는 기존에 계획한 12단 HBM 대신 8단 제품을 채택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8단 제품은 D램 사용량이 적어 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미국 텍사스에 초대형 생산시설인 '테라팹'을 짓고 AI 반도체를 자체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당장 HBM 수요와 가격 상승세를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2027년 HBM 평균판매가는 HBM4에 힘입어 전년 대비 100~150% 상승하며 내년 1분기부터 D램 가격 상승을 주도할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1분기 D램 가격은 전 분기 대비 두 자릿수 상승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KB증권은 삼성전자의 범용 D램과 낸드 내년 생산 물량 중 70%는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와 5년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추정했다. HBM4를 중심으로 한 HBM 연간 생산 물량은 100% 공급 계약이 완료됐다고 봤다. KB증권은 이러한 메모리 공급계약 확대와 가격 상승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올해 367조원에서 내년 555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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