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리뷰] "빡빡한 인생도 치졸한 다툼도 없는, 영수의 황금 레코드가 꿈꾸는 세계와 야만과 폭력의 시대" 박장렬 연출·이가을 작〈푸른 점의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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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해방 후 공창제가 폐지됐지만, 삶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공창(公娼)에서 밀려난 여성들은 사창으로 흘러들었고 한국전쟁과 미군 주둔의 시대를 지나면서 또 다른 여성들은 '양공주'라 불렸다."(강준만) 1900년대 초 일제는 조선에 공창제를 제도화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기지촌과 산업화 시대를 거쳐 2000년대까지 한국 매매춘의 역사를 추적한 강준만 선생의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는 '창기'라 불리던 그 시절부터 '양공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을 남성과 권력 사이에서 여성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었던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로 바라보는 책이다.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한 여성의 기억으로 관통하는 야만과 폭력의 시대

연극집단 반의 30주년 기념공연인 <푸른 점의 진주>(작 이가을, 연출 박장렬, 서강대 메리홀)를 보면서 강준만 선생의 책이 떠올랐다. 책과 공연의 맥락이 같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었던 여성들. 그 여성들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간을 기억하려는 지점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푸른 점의 진주>는 그렇게 시간과 기억을 관통하는 연극이다. 시간은 1940년대 창기라 불렀던 유곽의 여성들과 공창제 폐지, 1970년대 기지촌의 양공주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시간을 다루고 있다. 현재의 오진주(김지은 분)가 실종된 엄마 오선녀를 찾아 나서면서 양공주로 살았던 엄마의 과거와 아버지 박양기, 그리고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까지 하나씩 알게 되는 서사구조다.

노년 오선녀(이재희 분)의 실종을 따라가는 오진주의 시간은 엄마의 과거에서 아버지 박양기로, 다시 그 이전 세대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대의 비극과 만나게 된다. 실종된 엄마를 찾아 나선 딸이 자신의 출생과 맞닿아 있는 시대의 기억까지 마주하게 되는 비극적인 시간 여행이라고 할까. 그런 만큼 <푸른 점의 진주>는 극 중 장면으로 쌓이는 시간의 배열들이 친절하거나 현실적이지 않다. 무대는 빈 공간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길게 뻗은 낮은 단과 가로등, 중앙의 문틀 같은 프레임, 오른쪽의 낮은 벤치가 전부다. 최소화된 무대 구조는 특정한 장소를 재현하기보다 오선녀의 기억과 과거의 시간이 되는 공간으로 열려 있는 정도다.

시공간을 잇는 안내자(정성호 분)를 따라 오선녀의 과거 시간으로 들어가, 때로는 그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로, 기지촌 산업화로 거리로 밀려난 초년의 양공주 시절 오선녀(차지예 분)가 '미미양장점'에서 재단 일을 배우게 되는 시간부터 그 시절 사회의 여성이 되고 싶었던 오선녀를 거둬들인 양장점 사장 이순향(전현아 분)의 양아들 박양기(윤종훈 분)와의 사랑과 오진주의 출생 비밀로 이어진다. 이순향의 과거가 1940년대 유곽의 창기였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푸른 점의 진주>는 딸 오진주에서 엄마 오선녀로, 다시 아버지 박양기와 그의 생모 박시정, 이순향의 과거(초년 이순향, 김진영 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게 한 여성의 기억을 따라가는 시간은 한 가족의 출생과 죽음에 얽힌 비밀을 넘어 1940년대 유곽의 창기와 공창제 폐지, 해방 이후 거리로 밀려난 여성들, 1970년대 기지촌의 양공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으로 확장되는 방대한 시간을 다루고 있다.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현재의 오진주가 엄마 오선녀를 찾아가는 시간은 결국 자신의 출생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던 여성들의 삶과 마주하는 기억의 시간 여행이 되는 셈이다.

야만과 폭력의 시간으로 형성된 이들의 역사적 가계도는 한 가족의 개인사를 넘어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려온 여성들의 삶과 시간을 관통하고, 오선녀의 개인사는 공창제 폐지로 유곽에서 밀려나야 했던 여성들이 서로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 손목에 푸른 점을 새겨 넣었던 삶과 겹쳐진다. 유곽의 여성들이 새겨 넣는 점은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지켜본 사이니까 함께 나눈 고통을 몸에 새기자는 거야"라는 이순향의 말처럼 서로가 살아온 고통을 기억하는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먹물로 새긴 까만 점이 시간이 지나면서 파랗게 변하고, '푸른 점'은 시대를 건너 오선녀와 오진주에게까지 이어지면서 한 여성의 개인적인 상처를 넘어 시대의 폭력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여성들의 기억으로 각인(刻印)된다.그 시간의 틈으로 '미미양장점' 단골 사모님들(권남희, 권기대, 최은경)과 군인의 등장을 통해 1970년대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군부독재 시대의 사회상을 풍자하는 장면들을 환기하기도 하고,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여성의원 최인덕(이가을 분)을 통해서는 공창제 폐지가 과연 여성들을 제도에서 해방시키는 것만으로 그들의 삶까지 바꿀 수 있었는가를 되묻는 듯하다.

유곽에서 밀려난 여성들이 생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없었고, 해방 이후에도 이들의 삶은 사창과 기지촌으로 이어졌다. '창기'에서 '양공주'로 이름만 달라졌을 뿐 여성들을 둘러싼 폭력과 착취의 구조는 반복됐다는 점에서 그렇다.그렇게 1940년대 유곽의 창기에서 1970년대 양공주로, 다시 노년의 '박카스 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호명됐을 뿐이다. 마지막 장면은 실종된 노년 오선녀가 박카스 할머니로 전락한 뒤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데까지 이어지고, 결국 <푸른 점의 진주>에서 '푸른 점'은 이들의 삶이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는 기억의 흔적이 된다.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 "빡빡한 인생도 치졸한 다툼도 없는" 영수의 황금 레코드

극 중 장면 중에는 의미 있는 장면들이 여럿 되는데, 그중 기지촌 인근에서 '영수전파사'를 운영하는 전파사 주인장 신영수(공재민 분)가 외계인과 교신하기 위해 대형 안테나를 박양기와 들고 다니는 장면, 오선녀가 만들어준 노란색 투피스 양장옷을 입고 주인장한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양기의 정체성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물이 영수다. 보이저 2호가 목성을 지나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우주와의 교신이 가능하다고 믿는 영수에게 외계인과 교신하는 것은 현실의 빡빡함과 인간들의 치졸한 다툼에서 벗어나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빡빡한 인생도 치졸한 다툼도 없대. 우리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만 담겨 있는 거야, 그 황금 레코드에는."이라는 영수의 대사처럼, 70년대 군부 현실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양공주로 살았던 여성들과 양기를 이해하는 영수의 시선은 그래서 외계와의 교신을 꿈꾸는 장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에서 '황금 레코드'는 단순히 외계와 교신하기 위한 우주적인 상상에 머물지 않는다.

영수에게서 보이저호에 실려 우주로 보내진 황금 레코드 이야기를 들은 양기는 자신의 삶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기 시작한다. "나를 기억해 줄 이름 모를 외계인"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기 위해 시작된 양기의 황금 레코드는 오선녀(김지은 분) 에게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2026년 오진주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죽은 자들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부고장'으로 확장된다. "그들의 죽음은 점 하나가 지워진 게 아니라 우주가 잠든 것"이라는 오진주의 말처럼, 황금 레코드는 시대마다 보이지 않는 존재로 밀려났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장치가 된다. 결국 '푸른 점'이 몸에 새겨져 세대를 이어가는 기억이라면, '황금 레코드'는 양기와 오선녀를 거쳐 오진주의 목소리로 남겨지는 기억이라 할 수 있다.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그렇게 몸에 새겨진 '푸른 점'과 목소리로 남겨진 '황금 레코드'는 쉽게 기억되지 않는 이들의 삶을 기억해야 하는 하나의 작가적 장치로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은 연극집단 반의 30주년 기념공연인 만큼 극 중 역할로 분하는 스물한 명의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김지은, 정성호, 김귀선, 윤종훈 배우가 극의 중심을 이끌었다면, 팀장 역의 김윤태와 마수남 역의 원종철은 인물의 이미지와 캐릭터를 더 견고하게 했다. 부산 출신의 권남희는 경상도 억양으로 7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사회상을 풍자하는 사모님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살려내면서 장면의 리듬감을 만들었고, 사모님들의 캐릭터도 극의 조미료 역할로 살렸다. 이순향의 초년을 맡은 김진영과 중년의 전현아는 한 인물의 서로 다른 시간을 이어가면서, 유곽의 창기에서 여성들을 이끌었던 이순향과 '미미양장점'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중년 이순향의 변화된 삶을 각자의 역할과 색깔로 시대의 대비감을 보여줬다.

창기 역을 소화한 앙상블들도 배역의 크고 작음보다 <푸른 점의 진주>가 다루고 있는 창기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집단적인 연기로 극의 시간을 채웠다. 시대 속에서 이름 없이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을 앙상블로 형상화하면서 이 작품이 개인의 비극을 넘어 집단의 기억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했다.특히 공재민의 연기가 이 작품에서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 시대에 유일하게 몽상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인 전파사 주인 영수로 분한 공재민은 투박하면서도 일상적인 대사체로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상당히 공재민다운 인물로 편안한 생활연기를 감각하게 했고, 웃음 포인트를 살려내며 극 중 장면의 완급을 조절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 잘 맞는 연기이고 이 작품의 역할을 살려냈다.

박장렬 연출도 프롤로그부터 시간과 기억을 교차하는 퍼포먼스, 인물들의 내면과 시대의 아픔들을 환기할 수 있는 1970년대 가요들과 뮤지컬적인 안무들을 극 중 장면에 적절하게 배치해 무거워질 수 있는 서사의 리듬들을 시공간의 연결이 친절하지 않으면서도 극의 균형은 확실하게 잡고 가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지난해 이 작품 희곡을 낭독극으로 들으면서 양공주시대까지 야만과 폭력의 역사에 밀려난 한 여성의 방대한 서사를 어떻게 다룰지, 이 소재가 유효할지 매우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박장렬 연출과 연극집단 반의 콜라보가 무대에서 긴 서사를 끌고 갈 정도로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연출과 배우, 극단 스타일로 30주년 연극으로는 풀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미니 인터뷰| 박장렬 연출이 말하는 〈푸른 점의 진주〉

대학로 물빛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제6회 여주인공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박장렬 연출은 극장으로 걸어오는 표정이 공연을 마쳐서인지 한결 가벼워 보였다. 〈푸른 점의 진주〉가 생각보다 관객 반응이 괜찮다고 말하자 그는 "30주년 공연이었는데, 다행히 잘 끝났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푸른 점의 진주〉이후에는 연출 작품보다는 운영하고 있는 문화정책 유튜브 채널 '극적언박싱' 촬영에 주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푸른 점의 진주〉는 연극집단 반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희곡작가가 된 이가을 씨의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제헌국회 최초 여성의원인 최인덕으로 분했다.

─ 올해가 연극집단 반의 30주년이다. 창단 당시 작품의 방향성이 지금도 유효한가?

"연극집단 반은 창단 당시 '작가주의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극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연극을 스스로 돌아보고 반추하자는 정신이었죠.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집단 반의 장점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단원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30명의 단원들이 서로 다른 세대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연극이라는 하나의 일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죠. 또 다른 힘은 성실성과 진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작품을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극단의 여러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 왔다는 것이 연극집단 반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30년 동안 연극집단 반을 지속시켜 온 가장 큰 생명력이라고 봐요."

─〈푸른 점의 진주〉는 한국 사회의 창기의 역사와 소외된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작가가 밝혔지만, 작품은 여성과 역사적 시간 속에서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사람들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역사를 거대한 사건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바라보기보다,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갔던 작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바라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는 한 사람의 기억이 가족의 기억으로, 가족의 기억이 시대의 기억으로, 다시 시대의 기억이 관객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봐요."

─ 연출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시간과 공간의 중첩을 통한 현재성의 확장입니다. 공연의 흐름을 '찾는다 → 본다 → 밀려온다 → 이해한다 → 기억한다'라는 다섯 단계로 구성했어요. 1947년, 1979년, 2026년이라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시대가 가지고 있는 질문과 정서가 서로 충돌하고 겹쳐지도록 만들고자 했죠. 무대도 사실적인 세트를 많이 만들기보다 행거와 노란 옷, 배우의 움직임, 음악과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행거는 서로 다른 시간을 연결하는 '시공간 이동의 문'으로 사용하고, 노란 옷은 세대를 넘어 사랑과 기억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음악도 중요한 연출 장치죠. 1940년대와 1970년대의 음악, 그리고 현대적인 음악적 리듬을 함께 사용해 시대를 설명하는 동시에 관객의 정서적인 흔들림을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주제곡 〈파란 지구 사탕〉 역시 이러한 기억의 흐름을 연결하는 중요한 음악적 장치인데, 글은 제가 쓰고 곡은 박진규 씨가 만들었습니다."

박장렬 연출.
박장렬 연출.

─ 작품 후반부에 창기들이 스스로 손목에 푸른 점을 새겨 넣는 장면이 나옵니다.

"푸른 점은 '기억하자'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는 수많은 아픔과 상처의 사건들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삶도 쉽게 잊혀졌어요. 작품 속 창기들이 자신의 몸에 푸른 점을 남기는 것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상처를 스스로 기억하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푸른 점이 무대 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객의 마음에도 하나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결국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게 그 삶은 하나의 '우주'라는 것이죠."

─ 이번 작품에서 캐릭터가 돋보였던 몽상가 영수(공재민 분)의 안테나와 우주와의 신호, 그리고 영수라는 인물은.

"어느 시대에나 몽상가는 존재합니다. 꿈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몽상은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극 중 영수는 시대의 폭력 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요. 하지만 영수가 꿈꾸었던 세계와 우주를 향해 보냈던 신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영수라는 인물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해요. 현실과 타협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넘어서는 꿈, 그리고 자유를 향한 상상은 우리가 여전히 가지고 있어야 할 숙제 아닐까요? 또한 언젠가 우리가 얻고 싶은 선물이기도 합니다. 영수의 안테나는 현실 너머를 바라보려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하고 있어요."

─ 극중 인물 양기(윤종훈 분)의 여성성을 연출적으로 해석한다면.

"양기는 단순히 여성성을 가진 인물이라기보다, 사회에서 강하고 잘 보이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있는,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흔히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어요. 하지만 그 꼭대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는 양기를 통해 그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삶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양기의 여성성은 단순히 성별이나 정체성의 문제로만 바라보기보다, 우리 사회에서 쉽게 이해받지 못하고 밀려난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싶었던 겁니다. 양기를 바라보는 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역사와 사회의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지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한 것이죠."

─ 1940년대와 1970년대의 노래, 배우들의 앙상블, 뮤지컬적인 리듬들을 작품에 녹인 이유는.

"음악과 리듬이 시대성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연출의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시대의 노래가 들리는 순간 관객은 별도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 시대의 공기와 정서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번 공연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목적이 단순히 시대를 재현하는 데 있지는 않아요. 음악과 배우들의 앙상블을 통해 정서적인 흔들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흔들림 속에서 대사와 배우의 몸짓, 감정이 함께 움직일 때 관객에게 다가가는 감동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는 음악이 단순한 배경음악에 머무르지 않고 배우들과 함께 극을 끌고 가는 하나의 연극적 언어가 되도록 구성했습니다."

─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지.

"주변에 있는 작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사유를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쉽게 누군가의 삶을 지나치고 있잖아요. 하지만 한 사람의 삶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삶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자신이 무심코 지나쳐왔던 누군가를 한 번쯤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 작은 푸른 점 하나가 남았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요.

"연극을 하면 할수록 연극이 더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극을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요.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우선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직도 극단을 하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극단을 넘어서는 더 큰 연대도 만들어졌으면 하고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서로의 삶을 지지할 수 있는 연대 말입니다. 그런 행복한 연대와 새로운 일들이 만들어지는 흐름 속에 나와 연극이 함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꿈을 꿉니다."

박장렬 연출은〈푸른 점의 진주〉에 등장하는 몽상가이자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극 중 인물 영수의 캐릭터와 닮아 있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감각으로 연극과 극단을 지켜온 사람이다. 미투와 블랙리스트 시대에 박 연출은 대학로 연극문화를 지키겠다며 저항적인 투사의 이미지가 강했고, 연극집단 반의 정신을 극단의 대표적인 배우 김지은 씨가 이어받게 되면서 그는 유랑하듯 전국을 떠돌며 시·공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작품을 선보여왔다. 유튜브 채널 '극적 언박싱'을 운영하면서 그는 연극에도 정치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정치적 감각으로 연극문화를 제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 비즈니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생각이 같았다. 여주인공페스티벌 개막식에서는 "연극인의 연대"가 더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공감이 됐다. 박장렬 연출은 가슴을 뜨겁게 하는 저항적인 수사의 언어가 장점이다.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푸른점의 진주 사진, 김명집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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