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유난히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는 아직 초반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지금의 차기 주자 순위를 그대로 2030년 대선 구도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YS(김영삼 대통령)와 DJ(김대중 대통령)가 군부정권 수십년 기간을 기다려 마치 순번표대로 대통령이 된 것과 비교하면, 차기 주자는 언제 갑자기 나타날지 또 사라질지 모르는 게 요즘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현재 범여권의 풍경은 흥미를 유발한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청래 전 대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 추미애 경기도지사 등이 이미 차기 주자 여론조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에이스리서치 조사에서는 김민석 대표 15.2%, 강훈식 실장 7.9%, 정청래 전 대표 6.3%, 조국 원장 5.6%, 추미애 지사 3.2% 등이었다. 민주당 지지층만 놓고 봐도 김민석 대표 31.2%, 강훈식 실장 13.8%, 정청래 전 대표 11.9%, 조국 원장 8.0%, 추미애 지사 5.3%로 분산됐다.
(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9월 28~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10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100%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조사. 응답률 2.7%,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후보는 많다. 하지만 아직 '이재명 다음은 이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후계자는 없다.
◆DJ 때는 '없던 사람'이 떠올랐다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 두 경우를 보면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취임했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전국적 정치인이기는 했지만 차기 대통령 후보의 확실한 선두주자는 아니었다. 부산 출마와 낙선, 이른바 '바보 노무현' 이미지,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 등을 거치며 뒤늦게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김대중→노무현은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다음 사람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주자가 기존 서열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경우였다.
현재 이재명 정부 역시 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지금 5~10% 안팎에 머무는 인물이 앞으로 선거와 정치적 사건을 거치며 급격히 체급을 키울 수도 있고, 현재 여론조사 명단에는 없는 인물이 새롭게 부상할 수도 있다.
◆MB 때는 이미 '다음 사람'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는 정반대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8만1천84표(49.56%), 박근혜 후보는 7만8천632표(48.06%)를 얻었다. 불과 2천452표 차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먼저 대권을 차지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 역시 당내 지분과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사실상의 또 다른 대선후보였다. 이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박근혜 전 대표는 그 체급을 유지했고 결국 2012년 대통령이 됐다.
정권이 출범하는 순간부터 '차기 주자'가 상당 부분 보인 사례다.
현재 민주당에는 이런 '박근혜형 주자'가 없다. 이재명 대통령과 사실상 50대 50의 대선후보 경선을 치른 뒤 그 정치적 자산을 고스란히 들고 차기를 기다리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묘하게 연상되는 1997년 YS 청와대
오히려 지금 묘하게 떠올려지는 장면은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김영삼 정부에서 찾을 수 있다.
1997년 5월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로 신한국당 대선 경선 주자 9명을 한꺼번에 불러 오찬을 했다.
당시 한자리에 모인 인물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위원, 이인제 경기도지사,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덕룡 국회의원, 이한동 신한국당 고문, 박찬종 신한국당 고문, 김윤환 신한국당 고문, 최병렬 국회의원이었다. 말 그대로 여권 '잠룡 9명'이 대통령 앞에 한꺼번에 앉은 셈이다.
대통령이 주재한 밥상에서도 신경전이 벌어졌다. 박찬종·이한동·최병렬 등 주자들이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는 이회창 대표에게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고, 김윤환 고문은 이회창 대표를 측면 지원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그 얘기를 하려고 여러분을 만난 것이 아니다"라며 논쟁을 제지해야 할 정도였다.
후보가 없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았다.
중요한 건 그 많은 후보 가운데 누구도 '김영삼 대통령의 자연스러운 후계자'가 되진 못했다는 거다.
◆판도를 흔든 이인제 변수
결국 당시 신한국당 경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꺾고 대선 주자가 됐다.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는 경선 직후 승복 의사를 밝혔지만 두 달도 지나지 않아 탈당해 독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는 '세대교체'와 '3김 정치 청산'을 내세웠고, 그를 따라 원외 지구당위원장과 전직 의원들이 먼저 탈당했다. 이후 현역 의원들까지 합류하면서 국민신당이 만들어졌다.
당시 신한국당 내부는 실제 '내전 양상'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만큼 흔들렸다. 이회창 후보 측이 내분 수습에 나섰지만 비주류에서는 후보교체론과 집단탈당론까지 나왔다.
결과적으로 1997년 대선은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이인제 후보가 맞붙는 3자 구도가 됐다. 당시 언론은 이를 '야권 단일후보 대 분열된 여권 후보'의 대결이라고 표현했다.
후보가 많고, 당내 계파가 갈리고, 경선 결과에 승복하더라도 대선을 앞두고 독자세력화할 정치적 공간이 생길 경우, 기존 여권 내부의 잠룡이 언제든 별도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게 핵심이다. 이는 결국 이회창도 이인제도 대권을 잡지 못하며 정권재창출 실패로 연결됐다.
◆지금도 이미 '한 지붕 여러 주자'
현재 민주당과 범여권도 아직 대선 국면은 아니지만 여러 축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김민석 대표는 당권과 함께 차기 지지율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고, 정청래 전 대표 역시 전당대회에서 확보한 강한 당원 기반을 갖고 있다. 강훈식 실장은 대통령실 핵심에서 국정 경험을 쌓으며 빠르게 체급을 키운 경우다.
추미애 지사는 최근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 김지용 전 검사장을 놓고 이재명 대통령의 설명과 정면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권 내부 인사가 대통령의 인선 논리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장면이다. 이런 모습은 민주당 특유의 강한 내부 경쟁, 이른바 '열린우리당 DNA'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밖에는 조국혁신당…'우당'이면서 '레드팀'
이번 정부 창출 방식이 만든 특징인 (여당만 있는 게 아닌)범여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변수는 하나 더 생긴다. 조국혁신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합 추진단을 만들고 조국혁신당과 연대·통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조국 원장은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레드팀'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9월엔 이재명 대통령 공소취소 문제를 두고 조국 원장이 공개적으로 경고성 발언을 내놓자 민주당 내부에서 "배은망덕"이라는 반발까지 나왔다. 양당 실무자 사이에서도 통합 논의 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설명이 나오며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즉 현재 범여권에는 민주당 내부의 여러 잠룡뿐 아니라 당 밖에 독자 조직과 대선주자를 보유한 조국혁신당까지 존재한다. 1997년 신한국당보다 정치적 선택지가 오히려 더 복잡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28 총선이 첫 번째 거대한 분기점
그래서 지금부터 중요하게 지켜봐야 할 시점은 2028년 총선이다.
총선은 각 잠룡의 정치적 체급과 당내 지분을 숫자로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누가 공천권과 선거 승리의 공을 가져가는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관계가 합당·연대·경쟁 가운데 어디로 정리되는지, 총선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누구에게 향하는지에 따라 현재의 잠룡 서열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총선이 끝나면 다음 대선까지 남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이때 경선에서 밀린 유력주자가 당내에 남아 다음 기회를 기다릴 것인지,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할 것인지, 아예 독자세력화를 시도할 것인지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1997년 이인제 전 지사가 보여준 게 바로 그 세 번째 선택(독자세력화)이었다.
◆'제2의 이인제'를 만드는 조건은 이미 보인다
물론 2030년 대선에서 실제 누군가가 탈당해 독자 출마한다고 지금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이인제 변수'가 등장할 수 있었던 정치적 조건과 현재의 범여권 구조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수의 잠룡, 뚜렷하지 않은 후계자, 강한 당내 계파 경쟁, 대통령과 잠룡 사이의 공개적인 정책·인사 이견, 그리고 당 밖에 존재하는 별도의 범여권 정당.
30년 전에는 신한국당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시작됐던 균열이 이회창 대 이인제 분열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애초부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라는 두 개의 울타리가 존재하고, 민주당 내부에도 여러 차기 주자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현재 구도에서 요긴한 역사적 질문은 '누가 노무현처럼 떠오를 것인가'만이 아니다. '누가 이인제처럼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가'도 함께 주시해야 한다. 물론 두 역사적 사례가 함께 반복해 나타날 수도 있다.
잠깐. 글에서 놓친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이재명 다음도 이재명'이다. 연임 개헌론이 현실화할 경우 가능한 그림이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고, 24일 멕시코 동포간담회에서도 "2030년 6월 2일을 넘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다시 선을 그었다.
말은 이미 충분히 했다. 이제 남은 건 그 말을 2030년까지 행동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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