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된 소형차를 바꾸는 대신 대구 외곽에 제법 반듯한 텃밭을 샀습니다. 처음에는 기대가 컸습니다. 농막도 놓아야지, 고기도 구워 먹어야지 – 아파트 생활만 하던 터라 그저 내 마당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알고 보니 우리 땅은 개발제한구역이었습니다. 농막을 놓을 수도 없고, 하수 처리도 불가했지요. 3년이 지난 지금, 냉난방기나 화장실도 없고 집에서 꼬박 30분이 걸리는 그 텃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무 평 텃밭으로의 초대
유현미 작가가 쓰고 그린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는 텃밭을 가꾸며 위로받고 성장하는 도시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가면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표정이나 말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텃밭을 가꾸는 동안에는 억지로 무언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몸을 움직이면 흙이 살아나고, 흙이 살아나면 생명이 자라는 가장 정직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보도블록 사이 한 줌의 흙만으로도 민들레꽃은 피어납니다. 흙이 가진 어마어마한 생명력은 비단 식물만 아니라 그것을 만지고 밟고 냄새 맡은 사람에게도 전해집니다.
3월부터 12월까지 작가의 텃밭은 분주합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는 겨우내 굳은 땅을 갈아 흙을 부드럽게 만들고 거름을 넣습니다. 두둑과 고랑으로 구획을 하고 작물이 나는 때에 맞춰 씨앗과 모종을 심습니다. 완두콩, 감자, 오이, 쑥갓, 상추, 청갓 등은 내 손으로 키운 먹거리가 됩니다. 꽃양귀비, 분꽃과 홍화는 텃밭 생활의 그림이 되고요. 벌레, 비, 돌멩이, 이웃, 자전거, 호미 등 텃밭의 모든 것은 이야깃거리가 되지요. 작가는 스무 평 남짓한 텃밭의 봄, 여름, 가을 작물 지도를 손 그림으로 그려 두었습니다. 봄의 텃밭에는 손가락만 한 모종과 점만 한 씨앗이, 여름의 텃밭에는 풍성한 잎과 열매가 가득합니다. 가지, 오이, 옥수수 같은 작물이 거두어진 가을의 텃밭에는 무와 배추, 청갓, 쪽파를 심어 김장을 준비합니다. 비닐과 이불로 덮어가며 추위를 견딘 무와 배추를 수확하면 한 해 텃밭살이가 마무리됩니다. 항상 넉넉하게 내어주는 텃밭을 '흙엄마'라고 부르며 작가 역시 가족, 이웃, 하물며 벌레, 고라니와도 먹을 것을 나눕니다. 정성껏 그려낸 텃밭 풍경과 소소한 이야기를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작가의 텃밭을 함께 돌보는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할머니의 맛있는 밥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른에게 텃밭이 복잡한 세상의 가면을 벗고 온전한 나를 만나는 안식처라면, 아이들에게 텃밭은 생명의 순환과 수확의 기쁨을 몸소 배우는 정겨운 배움터입니다. 강혜영 작가의 그림책 '할머니와 여름 텃밭'은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 할머니 댁에 간 주인공 설아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텃밭으로 들어서며 시작됩니다. 뜨거운 한여름의 볕 아래서 빨갛게 익어가는 방울토마토, 탐스러운 가지와 오이, 수박을 거두어들이는 과정은 싱그러운 색감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땀을 흘리고 모기를 피하며 제 손으로 따온 방울토마토는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하지요. 할머니가 가꾼 텃밭의 채소로 지은 여름 밥상 앞에서는 '잘 먹겠습니다!' 감사의 인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 책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는 숨은 그림을 찾듯 구석구석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할머니의 짚 모자와 모기향, 시원한 오이냉국 그릇 같은 정겨운 소품부터 할머니와 설아의 주변을 맴도는 강아지의 모습까지 책을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들지요. 아이들은 이 포근한 그림들을 통해 우리가 먹는 채소가 어떤 정성과 기다림 속에서 자라나는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습니다.
모처럼 비가 내리고 난 주말 새벽에 17살짜리 차를 타고 텃밭에 갔습니다. 무더위 탓에 한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더니 잡초는 무릎보다 키가 크고 호박, 가지는 울퉁불퉁 제멋대로 자랐습니다. 머리채 잡듯 잡초를 뽑으면 묵혀둔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손 가는 곳마다 깨끗해지니 기분도 개운합니다.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면 매미, 개구리, 풀벌레 소리가 귀를 간지럽힙니다. 손끝에 진하게 묻어난 흙과 풀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쪼그려 앉았던 다리와 호미질을 한 어깨는 결려오지만, 온전히 나를 돌보며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그곳은 여전히 내 삶의 가장 다정한 안식처입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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