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무엇일까. 예산도, 건물과 장비도, 사람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보다 자주 낭비하면서도 늦게 깨닫는 자원은 시간인지 모른다. 대학의 하루는 교수의 강의와 연구, 학생의 배움과 도전, 직원의 행정과 지원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와 같다. 어느 한쪽에 마찰이 생기면 전체가 느려진다.
요즘 대학은 늘 바쁘다. 회의는 많아지고, 보고서는 길어지며, 새로운 사업이 생기면 서식과 절차도 따라온다. 물론 행정과 평가는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대학을 움직이는 윤활유인지, 톱니 사이에 낀 모래알인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행정은 물길을 내는 일이어야지, 둑을 하나 더 쌓는 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교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연구하고 가르칠 시간이다.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을 만나며, 논문을 읽고 연구실에서 질문을 다듬는 시간이 대학의 지식 생산을 만든다. 연구중심대학을 말하면서 정작 연구자의 하루를 보고서와 반복 행정으로 채운다면, 마라톤 선수를 출발선에 세워놓고 운동화 끈만 계속 고쳐 매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학생의 시간도 귀하다. 학사 제도를 몰라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장학과 진로 정보를 뒤늦게 접하며,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시간은 줄여야 한다. 대학은 미로를 잘 만드는 곳이 아니라 길을 잘 열어주는 곳이어야 한다. 학생의 시간은 배우고, 만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데 더 많이 쓰여야 한다.
직원의 시간도 다르지 않다. 연구비, 학사, 국제교류, 산학협력, 학생 지원은 모두 전문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하루가 반복 업무와 민원 대응으로 끝난다면 전문성이 자랄 여유가 없다. 직원이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 때 교수도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고 학생도 더 나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교수의 시간, 학생의 시간, 직원의 시간은 따로 흐르지 않는다. 강의실과 연구실, 행정실의 시간이 모여 대학의 하루를 만든다. 서로의 시간을 빼앗으면 모두가 지치고, 서로의 시간을 지켜주면 대학도 달라진다.
대학의 시간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보다, 내일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오래 쌓아왔느냐에 더 가깝다. 중요한 일을 얼마나 오래 준비하고, 서로 만나 생각을 맞추며, 실패와 시행착오를 얼마나 축적해 왔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큰 정부재정지원사업은 공고가 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연구자들이 서로의 연구를 알고 있었는지, 학문과 부서의 벽을 넘어 함께 고민해 왔는지, 행정이 그 생각을 사업으로 구체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최근 경북대학교가 일부 정부재정지원사업 선정에서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 일도 이런 관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쉽지만 원인을 바깥에서 찾는 것은 쉽고,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불편하다. 우리는 큰 기회가 오기 전부터 충분히 준비했는가. 연구자의 비전과 행정의 전문성, 학생 교육과 지역의 미래를 하나의 그림으로 오래 다듬어 왔는가. 오늘의 일에 쫓기느라 내일을 준비할 시간을 잃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씨앗을 뿌리지 않은 밭에 가을이 왔다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다. 큰 성과는 평소 쌓아온 연구 역량과 사람 사이의 신뢰, 부서 간 협업이 어느 순간 하나의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번의 아쉬움도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지기보다,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쓰고 있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럴 때일수록 원칙이 필요하다. 기본은 함께 세우고, 탁월함은 경쟁시켜야 한다. 학생 교육, 학문의 다양성과 깊이, 대학원생과 젊은 연구자 육성, 연구 행정과 협업 시스템은 대학 전체가 함께 키워야 할 기초 체력이다. 뿌리가 약한 나무에 열매 몇 개만 크게 키워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뿌리가 튼튼해진 뒤 각 분야가 자기 강점으로 마음껏 경쟁해야 세계적 성과도 나온다.
그렇게 축적된 대학의 시간은 캠퍼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은 지역의 학교와 기업, 연구소와 공공기관으로 나아가고, 연구실의 지식은 지역 산업과 시민의 삶으로 흘러간다. 거점국립대는 지역의 요구를 뒤따라가는 곳에 머물지 않고, 지역이 아직 보지 못한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길을 내야 한다.
좋은 대학은 사람을 계속 바쁘게 만드는 대학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는 연구와 교육에, 학생은 배움과 도전에, 직원은 자신의 전문성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이 쌓여 사람을 키우고, 결국 그 사람들이 지역의 미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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