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훈 기자 hoon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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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적 갈등 증폭한 '87년 체제'…

    극단적 갈등 증폭한 '87년 체제'…"역사적 소임 다해"

    제9차 헌법개정으로 탄생한 '1987년 헌정 체제'는 올해로 39년째다. 민주화로 비롯된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한국 정치사는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으로 점철됐다. 그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었다. '국가 원수'라는 지위의 대통령은 인사권과 예산권은 물론 외교와 국방까지 막대한 권한을 보유한다. 정치권은 이러한 '대권'을 목표로 양보와 대화가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야당은 국정에 협조하기보다 정권의 실패를 통해 대권을 잡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국회의 '이원적 정통성'이라는 헌정 질서의 한계가 드러났다. 이들은 각각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 반복되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내 양당의 대립이 일상화됐다. 이제는 여야 대결을 넘어 거대 야당과 대통령 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이로 인해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 빈번해졌다. 1987년 이후 선출된 대통령 8명 중 5명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거나 퇴임 후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다. 나아가 장관 등 관료들에 대한 탄핵소추 추진도 최근 급증했다. 민주화 이후 국회에 발의된 탄핵소추안을 보면 ▷김영삼(1회) ▷김대중(6회) ▷노무현(4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문재인(6회) 등 극히 제한됐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2024년 말 기준)에선 29회로, 전체 탄핵 발의(49회) 중 59.2%를 차지했다. 지난 38년 사이 실제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안 16회 가운데 13회가 윤석열 정부에서 발생했다. 행정부에 대한 엄포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통령과 국회의 정면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극단적 대결 양상은 대통령의 거부권에서도 드러난다. 1987년 이후 국회에서 마련한 법률을 대통령(권한대행 포함)이 거부한 경우는 모두 49회로, 이중 윤석열 정부가 67.3%(33회)에 달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노태우(7회) ▷노무현(6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등 거부권 행사에 신중했다. 이 같은 상황에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87년 헌정 체제가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지적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꾸는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선거제도와 정당구도에 대한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7년 체제는 국가 원수와 행정부 수반, 군 통수권자 등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낳았다. 또한 대통령과 국회의 이중적 정통성으로 인한 여소야대의 입법 교착이 만성화됐다"며 "정부와 국회가 일치하는 내각제나 대통령과 정부를 분리하는 이원정부제 등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 22명을 대상으로 한국 정치의 현실과 해법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개헌을 비롯해 대통령제와 선거, 정당 등 정치개혁의 방향을 담은 시리즈를 4편에 걸쳐 보도한다. 기획탐사팀

    2025-01-02 06:30:00

  • 87년 헌정 체제의 종언…대통령·선거·정당 등 정치개혁 급선무

    87년 헌정 체제의 종언…대통령·선거·정당 등 정치개혁 급선무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인 현재 헌법은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은 극단적인 갈등을 빚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 잦아졌고, 여소야대가 반복되며 입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일상이 됐다. 정치는 협력보다 극한 대립으로 나아갔다. 그야말로 한국 정치의 위기다. 정치 체제를 구성하는 세 요소인 권력구조(정부 형태)와 선거제도, 정당구도 등의 변화가 시급하다. 분권과 협치를 바탕으로 한 정치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 87년 체제를 넘어 새로운 공화국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strong〉◆제6공화국 헌정사…대통령 잔혹사〈/strong〉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가 열렸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유권자 중 78.2%가 참여했고, 투표자의 93.1%가 찬성했다. 민주화 운동의 성과인 '87년 헌정 체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후 한국 헌정사는 탄핵으로 얼룩졌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이후 대통령 5명 중 4명이 임기 중에 탄핵이 의결‧인용되거나 퇴임 후 구속됐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끌어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노무현 정부를 기점으로 대통령 잔혹사는 극심해졌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회와의 충돌이 본격화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뉜 '분점 정부'가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헌법이 보장한 '이원적 정통성'의 허점이 불거진 것이다. 무엇보다 '여소야대'가 갈등을 부추겼다. 1988년 제13대부터 2024년 제22대까지 국회의원선거 10회 가운데 집권당이 과반에 미달한 경우가 6회에 달했다. 1988~2000년, 2016년, 2024년 등 빈번하게 여당이 야당에 주도권을 뺏겼다. 이는 대통령과 국회로 이원화된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의 독주‧독단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분할 투표' 성향은 정국 불안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고 모든 정부가 1회 이상 여당이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전용주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국회 모두 국민이 뽑았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면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내각제는 정부와 의회 권력이 한 몸이고, 또 내각 불신임과 의회 해산 등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제의 경우 임기가 고정돼 있어서 탄핵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 이외에 갈등 해소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strong〉◆'제왕적 5년 단임제'의 한계〈/strong〉 대통령들은 시작부터 치명적 약점을 안았다. 과반도 안 되는 대선 득표율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51.55%) 이외에는 모두 절반에 못 미치게 득표했다. 절반의 반대를 안은 대통령들은 임기 초‧중반 크고 작은 이슈로 지지율 하락을 겪었고, 선거 불복에 가까운 저항에 부딪혔다. 1년차 60~80%의 지지율은 4~5년차에 10~20% 수준으로 떨어졌다. 5년 단임의 한계도 크다. 대통령의 권한 독점·남용을 제어하고자 단임제를 도입한 것이다. 장기 집권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진 짧은 임기로 인해 장기적 국정 과제 추진이 어렵고, 재선 가능성이 없는 탓에 책임 정치를 실현할 동기도 옅다. 여기에 잦은 선거도 부담이다. 5년 임기 중 약 2~3회에 걸쳐 총선과 지방‧보궐선거 등이 진행된다. 이들 선거는 견제와 심판 심리가 작용하는 중간 평가 성격이 강하다. 대통령과 여당보다 야당에 힘이 실리게 결과를 낳아, 국정 동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도 대권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왕적이라 불릴 정도의 집중된 권한 때문이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인사권, 재정권, 행정권, 입법권(법률안 제출권과 거부권, 헌법개정제안권, 국민투표부의권 등), 외교권, 국방권, 국가긴급권(계엄선포권, 전쟁선포권, 긴급명령권) 등의 권한을 가진다. 이중 인사권의 예로 박근혜 정부를 보면, 장·차관급 등 100여 명을 비롯해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 헌법 기관 고위직도 20여 명에 달한다. 여기에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 검찰과 경찰, 외부 공무원, 국립대 총장 등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원은 7천 명에 이를 정도다. 대통령을 '선출된 왕'으로 여기는 정치 문화도 더해졌다. 모든 문제를 마치 왕처럼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결하려는 의식이 여전히 만연하다. 정권 탈환에 혈안이 돼 '반대를 위한 반대'인 비토크라시(Vetocracy, 거부정치)가 정치권에 팽배한 배경이다. 〈strong〉◆극한으로 치닫는 대립과 갈등…양당제‧소선거구 폐해〈/strong〉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의 성격을 결정짓는 데 국회는 뗄 수 없는 요소다. 삼권 분립 아래 대통령과 함께 국회는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국회 내 정당구도와 이를 결정짓는 선거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양당제가 핵심 문제다. 두 거대 정당으로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 대립은 극대화된다. 협력과 타협은 실종되고, 대통령과 여당을 정략적으로 공격하는 행태가 반복된다. 우리 제도는 다당제를 표방하지만, 실제는 양당제에 가깝다. 1988~2024년(제13~22대) 국회의원선거 결과를 보면, 전체 의석에서 제1, 2당 비중이 90%가 넘는 경우가 10회 가운데 5회나 된다. 2000년(90.8%)과 2004년(91.3%), 2012년(93.0%), 2020년(94.3%), 2024년(94.3%) 등이다. 2000년 이후 양당 체제가 본격화됐다. 특히 최근 두 번의 총선에선 90%대 중반에 이를 정도로 두 당이 의석을 독식했다. 양당제의 여소야대 상황과 강한 규율의 정당 문화가 결합하면서, 대통령은 야당을 대화로 설득할 여지가 줄었다. 제3당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합당과 해체 등으로 다시 양당제로 되돌아갔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이끌던 1992년 통일국민당(31석, 10.36%)은 반값 아파트 공약 등으로 새 바람을 일으켰지만, 같은 해 치러진 대선 이후 각종 수사가 진행되면서 결국 소멸됐다. 양당제는 선거제도에서 비롯됐다. 바로 지역구 중심의 소선거구 1인 다수대표제의 폐해다. 다수결로 한 명의 당선자를 뽑는 '승자독식' 지역구 선거는 많은 문제를 낳았다. 특히 '표의 불비례성'이 심각하다. 득표보다 의석을 더 많이 차지하거나, 지지율에 모자라게 의석을 배분받는 것이다. 2024년 총선의 지역구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은 50.6%인데 의석 점유율 63.4%로 더 많았다. 반면 국민의힘은 45.1%를 득표해 의석은 35.4%를 가졌다. 이를 1석당 투표수로 환산하면 더불어민주당은 9만1천표이고, 국민의힘은 14만6천표로 격차가 크다. 소수정당인 진보당(30만2천표)과 새로운미래(20만표), 개혁신당(19만5천표)의 경우 표의 불비례성이 더욱 심했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24년 총선 전체 300석 중 비례대표는 46석(1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지역구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가운데도 비례대표 의석이 상당히 적은 편이다. 결국 비례대표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청년들의 이해관계가 제대로 대표되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소선거구에선 낙선자에 대한 투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이로 인해 정치 효능감이 떨어진다. 자신을 대변할 제도권 정당이 없는 유권자들은 거리 집회 등 직접 행동 방식으로 정치적 요구를 표출한다. 유튜브와 SNS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정파적으로 극단적인 주장을 담은 콘텐츠를 통해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등 왜곡된 정치 문화가 생겨났다. 헌법·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한국 정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선 민주주의 모델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승자독식의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분권과 협치의 '합의제 민주주의'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적대적인 양당제를 극복하려면 소선거구 지역구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제도를 바꿔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등 다당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헌법학자인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이긴 사람이 권한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의 문제가 한국 사회에 누적돼왔다. 이제는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하는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며 "거대 양당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소선거구제를 개편해 다당제 연합정치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5-01-02 06:30:00

  • [정년 그리고 그 후] 대구 시민 2명 중 1명 60세 ↑… 2052년도 머지않았다

    [정년 그리고 그 후] 대구 시민 2명 중 1명 60세 ↑… 2052년도 머지않았다

    지난달 22일 오전 10시쯤 대구 중구 대구중장년내일센터 7층 강의실. 50대 위주의 중장년 여성 29명이 대여섯명씩 모둠을 이뤄 책상에 앉아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전날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생활지원사 취직을 돕기 위한 교육이 진행됐다. 생활지원사는 노인들을 돌보며 간단한 생활 교육과 안전 지원, 사회 참여 지원 등 여러 업무를 수행한다. 수업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심뇌혈관 질환 예방수칙을 트로트 음악에 맞춰 소개하는 영상은 특히 반응이 좋았다. 위급 상황 시 어르신을 도울 수 있도록 하임리히법(기도가 막혔을 때 사용하는 응급처치법) 실습도 이뤄졌다. 수강생은 2명씩 짝을 지어 강사의 지도에 따라 자세를 익혔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조모(59) 씨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하반기에 명예퇴직하고 현재는 생활지도사 1급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조 씨는 "지금은 100세 시대니까, 내가 직장 생활을 해온 기간 만큼 퇴직 이후의 삶도 길 것이기에 일찍 준비하고 싶어 퇴직을 서둘렀다"며 "50대 후반은 취직하기 어려워 걱정이지만 그래도 일단 도전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10년은 더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후 저출생, 고령화 기조에 따라 60세 정년을 지난 고령층의 노동은 더욱 활성화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고령층 일자리 실태를 파악한 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구 60세↑ 취업자, 30년 전보다 7배 증가 경제활동참가율은 15세 이상 인구 중 학생과 주부, 경제활동 참가 의사가 없는 사람 등을 제외한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11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60세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3분기 기준 2014년 36.6%에서 올해 42.5%로 10년 새 5.9%포인트(p) 상승했다. 같은 기간 20~29세는 62.1%에서 53.6%로 감소한 것과는 상반된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실제로 일하는 비율인 고용률 또한 60세 이상에서 뚜렷하다. 대구의 60세 이상 3분기 고용률은 2014년 35.9%에서 2024년 41.5%로, 10년 새 5.6%p 올랐다. 10년 단위로 살펴본 취업자 수 증가세도 가파르다. 매년 3분기 기준 대구 60세 이상 취업자는 1994년 4만3천명에서 2004년 9만6천명, 2014년 15만4천명으로 10년마다 2배가량 뛰어 올해는 28만5천명을 기록했다.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과 대구시에 따르면 올해 대구 전체 인구(235만3천742명)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8.4%다. 이 비율은 2026년 30.7%로 향후 2년 만에 30%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후 빠르게 증가해 2035년(40.5%)에 40%대를 넘어서고, 꾸준히 상승해 2052년 49.5%에 육박할 전망이다. 대구 시민 2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 되는 셈이다. ◆고령층 단시간, 임시직 비율 높아…OECD 최상위 이처럼 60세 이상 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들의 고용 안정성은 취약한 실정이다. 코로나19로 고용 악화 직격탄을 받은 2020년 1분기 실업률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이 시기 대구의 30~59세 실업률은 2.5%로 직전 2019년 4분기(2.1%)보다 0.4%p 상승에 그친 반면, 60세 이상에선 같은 기간 2.9→4.9%로 증가 폭이 컸다. 이는 고령 근로자 대부분이 단기간 임시 근로 형태의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간한 '65세 이상 고령자 고용 증가 현황과 원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임금 근로자(2022년 기준 181만4천명)의 61.6%가 주당 35시간 이하로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였다. 이 비율은 여성 임금근로자가 78.4%, 고졸 이하 저학력자가 64.0%였다. 65세 이상의 경우 임시근로자 비율이 56.1%로 가장 높았고, 상용근로자 비율은 34.3%에 그쳤다. 일용직 비율은 9.6%였다. 임시근로자는 1개월~1년 미만으로 고용된 사람을 뜻한다. 상용직은 1년 이상 고용계약기간이 설정된 사람 또는 무기계약인 경우다. 우리나라는 특히 중·장년층 임금근로자 가운데 임시 고용 형태로 일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우리나라 55∼64세 임금근로자 중 임시 고용 비율은 34.4%로, OECD 36국 중에서 가장 높다. 2위인 일본(22.5%)과의 격차도 10%p 이상 벌어졌다. ◆고용불안정성 개선·은퇴 후 재교육 활성화 숙제 저출생으로 청년층의 생산성과 소비력이 갈수록 줄어드면서 60세 이상 인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고질적인 노인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정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용현 경북연구원 경북RISE사업추진단 단장은 "퇴직 후 자신이 몸 담았던 업계와 관련된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하는데, 이러한 매칭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고령자들의 일자리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는 우리 노동시장의 정규직·비정규직 이중 구조 때문으로, 근본적으로 이러한 구조를 완화해야 고령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령층이 몰리는 '미니잡'(주당 15시간을 넘지 않는 초단시간 근로) 등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여전히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만연해 이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며 "특히 대구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은 편이라, 일자리 공급을 위해선 장기적으로는 산업 구조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은퇴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는 '리턴십(Returnship)' 현상은 이전부터 주목 받아왔지만, 은퇴 후 재교육에 대한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 올해 5월 기준 55~79세 가운데 지난 1년간 직업능력개발훈련에 참여한 비율은 13.1%에 불과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 노동을 부정적으로 보기만 해선 안 된다. 여전히 노동력을 갖고 있다면 소중히 활용하면 되는 것"이라며 "고령 노동자들이 기존에 갖고 있는 누적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무엇이 있는지, 지역 산업 구조에 맞춰 이를 어떻게 창출해낼지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현재 직장 내에서 퇴직을 앞둔 이들에 대한 재교육도 잘 이뤄지고 있지 않고, 노조가 없는 영세한 직장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며 "지자체에서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대부분 민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의 경우 더더욱 이러한 정보들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지자체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홍보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2024-12-11 18:30:00

  • [정년 그리고 그 후]

    [정년 그리고 그 후] "환갑 지나도 여전히 현역"…대구 60세 이상 고용률 41.5%, 10년 새 7.8p↑

    우리나라 법정 정년인 60세는 '환갑'이라 불린다. 육십갑자가 돌아왔다는 의미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땐 환갑잔치를 열 정도로 축하받을 일이었다. 100세 시대인 요즘 60세는 '늙은 청년, 젊은 노인'으로 불린다. 이들은 여전히 자기 일에 몰두하거나, 은퇴 없는 제2의 삶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지난달 5일부터 이달 2일까지 60세를 넘겨서도 일하는 대구 시민 6명을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기사에 담았다. 지난달 22일 정오쯤 찾은 대구 중구 향촌동 수제화골목의 한양제화. 가게 안에 들어서니 30㎡ 남짓한 작업실이 나왔다. 장인 최병열(67) 씨는 이곳에서 53년째 수제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작업실은 한쪽 벽면 전체가 가죽들로 빼곡했다. 책상 앞 벽걸이엔 손잡이가 닳은 가위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최 씨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한창 작업에 몰두 중이었다. 날렵한 손놀림으로 선을 따라 가죽을 오려낸 뒤 신발 외피와 내피를 붙이는 박음질을 이어갔다. 최 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 이 골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양화 가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른 살에 개업했다. 기술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지금은 혼자 가게를 운영하며 맞춤 수제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갈수록 안경을 껴도 흐릿하게 보이는 등 시력이 나빠지고, 기술을 물려줄 사람도 없어 고민이 많다. 그렇지만 나는 한평생 이 일을 해왔고, 건강이 허락하는 계속할 것"이라며 웃었다. 수제화골목은 1970년대부터 수제화 관련 업체가 하나둘 모여 1990년대에 이르러 지금의 면모를 갖췄다. 올해 기준 45개 달하는 업체가 들어서 있다. 오래된 역사만큼 수제화 장인들은 나이가 많지만, 망치로 가죽 두드리는 소리엔 여전히 힘이 느껴졌다. 이들처럼 일하는 현역인 60세 이상의 지역 인구는 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60세 이상 3분기 고용률은 2014년 33.7%에서 2024년 41.5%로, 10년 새 7.8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취업자 수 역시 15만4천명에서 28만5천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올해 28.4%에서 10년 뒤인 2034년엔 39.6%로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김용현 경북연구원 경북 RISE사업추진단 단장은 "대구의 60세 이상 취업자는 앞으로도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초단시간 근로자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며 "현재 우리 사회에 이러한 형태의 근로자들까지 품을 수 있는 고용 안전망이 마련돼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2024-12-03 19:37:55

  • [정년 그리고 그 후] 5인5색의 고령 노동자들…6070에도 열정은 아직 청춘

    [정년 그리고 그 후] 5인5색의 고령 노동자들…6070에도 열정은 아직 청춘

    일은 생계 수단이자 사회 활동의 장이며, 자아실현의 밑바탕이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정년 이후에도 여러 이유로, 일을 계속하는 대구 시민 5명을 만났다. 정년 이후에도 일에서 보람을 찾는 이들에게서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의 희망을 들었다. 〈strong〉◆50살에 임용고시 도전… 교사 퇴직 후 수어 해설사로 활약〈/strong〉 대구 중구 약전골목에 있는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중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그 시절 대구 피난민들의 삶을 재구성한 문학 체험 전시 공간이다. 71세의 홍순덕 씨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곳을 소개하는 수어 해설사다. 홍 씨는 고령에도 중구청 소속 골목문화해설사로서, 김원일의 마당이 깊은 집과 읍성영상관에서 해설사로 근무 중이다. 20살이 되자 지역 사립 특수학교에 들어간 그는 학교에서 청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과정에서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의 수어를 터득했다. 교사로 일하며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바쁜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남편도 업무로 늦게 귀가하고, 자식들도 서울의 대학에 다니며 따로 살게 되자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왔다. 무료함에 빠져있던 홍 씨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임용고시 강의를 보고, 50살이란 늦은 나이에 임용고시에 도전하게 됐다. 퇴근 이후 저녁 시간에 학원까지 다니며 2달간 열심히 공부했다. 원서 접수 기간,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대구시교육청은 40세, 경북도교육청은 45세까지로 임용고시 지원 자격이 제한했던 것. 전국 시도교육청을 다 확인한 결과 만 52세까지 지원할 수 있는 강원도에 원서를 넣었다. 이후 짧은 공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정식 임용고시에 최종 합격한 홍 씨는 2003년 3월 1일 자로 강원도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12년 6개월을 강원도에서 보내고 2015년 8월에 퇴직했다. 대구로 돌아와 비닐하우스를 짓고 약초를 키우려 준비 중이었던 그는 우연히 수어 해설사 공고를 접했다. 6개월 교육 기간을 이겨내고 합격한 끝에 2017년 중구청의 골목문화 수어 해설사로 임명받았다. 7년째 해설사로 일하는 홍 씨는 하루 7시간 기준으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홍 씨는 "금액이 중요하진 않다. 지금 이 나이에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일하는 것"이라며 "최근 해설사 활동이 가능한 나이가 75세까지로 제한이 생겼다. 개인적 욕심으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해설사로 일하고 싶기에 아쉽다"라고 말했다. 〈strong〉◆공장장·정보계 형사 출신 택시기사 2人… 제2의 삶 찾았다〈/strong〉 대구 서구 대구택시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설경석(65) 씨와 권천달(68) 씨. 이들은 퇴직 전엔 서로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했지만, 현재는 택시 기사다. 서울에서 태어난 설 씨는 부친이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 판매 업체에서 영업직으로 20년간 근무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며 회사는 문을 닫았다. 1999년 새 자동차 부품 판매 업체를 찾아 대구로 와 영업직으로 8년간 근무했다. 경영난에 또다시 직장을 옮긴 뒤 공장장으로 현장 업무를 총괄했다. 지난 2019년 60세 정년으로 퇴직했다.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해 집에서 마냥 쉴 순 없었다. 주차관리원, 건물 청소, 아파트 경비 등 여러 일 전전했지만, 고강도, 저임금, 구조 조정 등의 이유로 그만두고, 현재 택시 기사 일에 정착했다. 설 씨는 "아내는 현재 몸이 약해 집에서 쉬고 있어 돈을 버는 건 나뿐"이라며 "힘닿는 데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덕 산골 출신의 권 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기보단 나라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꿈을 위해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했고,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 처음엔 기동대와 남산1동 파출소 등을 거쳤다. 근무 능력을 인정받아 정보계 형사로 발탁돼 중부서에서만 26년간 근무했다. 퇴근 이후에 비상 호출에 달려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항상 뿌듯했다. 그렇게 33년을 근무하고 퇴직 1년 앞둔 시점인 2018년 2월에 명예퇴직했다. 그다음 달 바로 대구택시협동조합과 계약을 맺고 택시 기사로 근무했다. 이렇게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퇴직 5년 전부터 꾸준히 준비한 덕분이었다. 권 씨는 "평생 공직에 있던 사람들이 은퇴 후 사업에 손댔다가 퇴직금을 다 잃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무조건 안정적인 직업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활발한 성격이라 승객을 상대하는 이 일이 적성에 맞다. 죽는 전날까지도 택시 운전대를 잡고 싶다"고 했다. 〈strong〉◆'호기심 대마왕', 자격증 부자… 사회복지사로 도전 성공〈/strong〉 최근 휴일을 맞아 집에서 쉬는 서혜순(61) 씨를 만났다. 사회복지사인 그는 현재 수성구 범물동의 초심재활주간보호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는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여러 일을 거쳤다. 경남 진주에서 2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서 씨는 부산에 시집간 언니네 집에 살면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제조업에 종사하던 형부가 대구에 영업소를 세웠고, 여기서 서 씨는 20살부터 경리로 일하기 시작, 결혼 전까지 10년 정도 다녔다. 1992년 2월 대구 토박이 남편과 결혼하고 그해 12월 아들을 낳았다. 이후 인구주택총조사 인구조사원, 수성구 드림스타트센터의 취약계층 아동 대상 독서지도사 등으로 근무했다. 또 호프집을 운영하거나 폐쇄회로(CC)TV 관제원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서 씨는 요양보호사, 독서지도사, 조리원, 사회복지사, 직업상담사 등 자격증만 5개다. 이중 사회복지사는 직장 생활 중 만학도로 입학한 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 다니며 취득했다. 그러다 2018년 1월 건강이 나빠져 수술을 받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쉬었다. 점차 몸은 건강해졌지만, 일할 곳이 없어 답답해하던 서 씨는 2020년 지역 주간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일은 고단하지만 성실했던 그는 같은 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다시 고용됐다. 이제 사회복지사가 된 그는 어르신 맞춤 사회 훈련 프로그램 기획하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 서 씨는 "사회복지사는 나이 제한이 없어 몸이 허락하는 한 지금의 일을 계속하고 싶다. 일을 함으로써 내가 아직 무언가를 배울 능력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다"고 했다. 〈strong〉◆한평생 걸어온 '농업공학' 외길…"사회에 도움이 되고파"〈/strong〉 대구 북구의 미래테크 주식회사 옥상. 스마트팜 사업부 연구소장을 맡은 송재관(67) 씨는 현재 연구 중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소개했다. 살아 있는 눈빛과 밝은 표정의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이곳에서 1년 단위 계약 형태로 일하고 있다. 미래테크는 건축 및 토목용 자재를 생산하는 업체지만, 최근 식물공장 분야로 사업을 넓히고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식물공장은 실내에서 햇빛, 온도, 습도, 물 등을 인공적으로 조절해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1년 내내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시스템이다. 송 씨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팠다. 1982년 경북대 농공학과를 졸업하고,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기계화연구소에서 3년간 일하다 모교 대학원에서 농기계 분야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후 경북의 한 대학교에서 관련 학과 교수로 근무했지만, 정년인 65세가 되기 전 55세에 명예퇴직으로 학교를 나왔다. 연구보단 신입생 모집과 취업이 중심이 된 대학 분위기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고, 학령인구 감소로 교수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송 씨는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퇴직 후 지역의 식물공장 관련 중소기업 연구소와 농업법인을 전전하며 유리온실 등 최첨단 시설에서 작물을 효율적으로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연구비 축소 등 회사가 힘들어져 한 곳에 계속 있진 못했지만, 학교에서 교수로 지낼 때보다 연구에 매진할 수 있어 보람이 크다. 송재관 씨는 "식물공장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고 아직은 모험이 필요한 분야이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대비해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대학 동기도 절반 이상이 여전히 일하는 중이고, 나 또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연구를 계속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2-03 19:37:41

  •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 "식량 안보 지키며, 품질 향상·재배 전환 등 미래 투자도"

    남아도는 쌀로 해마다 공공 매입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쌀 재배면적 축소와 다른 작물 전환 등에 나서고 있지만, 쌀값이 떨어지고 고령화 등으로 농민들은 쌀 농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재배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격과 생산량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식량 안보의 확보와 함께 미래 농업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재배면적 축소" VS "농업 기반 위협" 우리 쌀은 식량 안보와 재정 부담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과잉 공급 구조를 벗어나고자 정부는 재배 면적을 감축할 계획이지만, 현장의 농민들은 미래 식량 안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쌀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58만5천t으로 지난해보다 3.2% 줄었다. 같은 기간 벼 재배면적도 70만8천→69만7천713㏊로 1.5% 축소됐다. 하지만 쌀 가격은 정부 목표인 80㎏ 기준 20만 원에 못 미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18만2천700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20만1천384원)보다 9.3%이나 떨어졌다. 생산량보다 더 큰 폭으로 수요가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는 재배면적을 더 줄일 방침이다. 적정 생산을 유도하고자 내년 벼 재배면적을 8만㏊ 감축하겠다고 밝힌 것. 지난해 대비 올해 줄어든 1만㏊와 비교하면, 8배 큰 감소다. 농민들은 재배면적 감소 이후 콩·밀 등으로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작물 생산 기반 자체가 위협당할 수 있다며 비판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민의 생산 기반인 농업을 파괴하고 식량 자급의 위기를 만드는 벼 재배면적 감축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현장에선 당장 작물 전환이 어렵다는 분위기다. 경북 의성군의 황보경(70) 미소진품 회장은 "현장에선 쌀 농사가 한계에 부딪혔다. 농민들은 농사일을 자체를 그만두려 한다"며 "장비와 설비를 새롭게 갖춰야 해 다른 작물 전환이 쉽지 않다. 재배법도 다시 배워야 한다. 식량 안보와 농업 기반 유지 등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고령화 등으로 농민이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4~2023년) 전국의 농가 인구는 275만1천 명에서 208만8천 명으로 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북은 44만6천 명에서 33만 명으로 26% 줄었다. 박병진 의성군 진쌀단지 연합회 회장은 "2만 평 농사를 지으려면 기계 설비 등 자금만 5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 여기서 보통 평균 쌀 40t 정도를 생산하는데 매출이 1억 원 정도이다. 비룟값과 유류비 등 비용을 빼면 순이익은 3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농가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농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양곡법 개정 갈등…"품종 개발‧작물 전환 등 근본 대책" 매년 쌀 과잉생산으로 정부의 재정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선 '양곡관리법(이하 양곡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제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첫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폐지된 바 있지만 야당에선 당론으로 계속 추진해나갈 방침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양곡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가격이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의무 매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쌀값 안정은 위태로운 국제 정세 속 식량 안보의 기본이다. 지난달 산지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폭락을 기록한 2022년 평균 가격보다 더 낮다. 늦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히려 쌀 매입·보관 등 비축 비용으로 더 많은 예산이 들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 통과 시 쌀 매입·보관비로 2030년 연간 3조986억원이 들 것을 추산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의무 매입으로 2030년까지 연평균 43만t의 쌀이 초과 생산돼 오히려 쌀값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의무 매입으로 쌀 품질 경쟁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예산이 쌀에 집중된 탓에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다른 작물(밀, 콩) 재배 확대 정책 등과도 상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농민들도 양곡법 개정안을 두고 의견이 나뉜다. 식량 안보를 위해 농업 생산 기반은 지켜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의무 매입만으로 현재의 위기를 넘기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근본적인 농업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식량과 사료를 포함한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쌀 생산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되, 경쟁력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다른 곡물 자원의 재배를 확대하는 등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쌀의 미래는 "경쟁력 강화‧곡물 다변화" 정부와 전문가, 농민들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 우리 쌀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과잉 생산 구조는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정부의 의무 매입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는 품질 개선, 곡물 자원 편향 극복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가격이 치솟아 '쌀 파동'을 겪은 일본이 반면교사다. 일본의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이 지난 9월 제시한 2024년산 쌀의 산지 금액은 1등품 기준 60㎏(현미)에 1만6천~1만7천엔(14만~15만 원) 선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0~40% 오른 가격이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밀가루 가격이 급등하면서 쌀 소비가 늘어난 가운데 폭염으로 쌀 생육이 저하되고 쌀 생산 농가가 줄면서 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재배면적 축소에 불안한 국제 정세, 기후변화 등이 더해진 것이다. 이에 국내 농민단체는 "우리나라도 일정 수준의 쌀 자급률 유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품종 개발과 재배법 보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쌀 재배면적을 급격하게 줄이는 대신 콩과 밀 등 다른 곡물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산해 미래 농업에 투자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경상북도는경북농업기술원과 함께 2007년부터 지역 풍토에 맞는 쌀 품종 개발‧보급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기존 품종보다 수확기가 빠르고 재배 안정성 높은 '다솜쌀' 품종을 자체 개발했다. 현재 포항에 특화 단지를 조성해 이를 보급 중이다. 송영운 경북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연구원은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또 식량 안보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면적은 유지해야 한다"며 "이제는 생산량에만 초점을 맞춘 다수확 품종보다 지역 땅과 기후변화에 대응한 질 좋은 품종 재배가 필요하다. 생산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밥맛이 좋은 신품종 개발에 노력 중"이라고 했다. 다른 작물로의 재배 전환을 위한 제도도 요구하고 있다. 허일용 한국쌀전업농 경북연합회장은 "쌀뿐만 아닌 감자 등 다른 작물들도 정부 수매 품목에 포함하는 방안을 경북도와 논의하고 있다. 안정적 판로를 확보해야 농민들도 다른 작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쌀에만 국한된 비축‧관리 예산을 다른 작물 재배와 미래 농업인 지원 등에 투자한다면 전반적인 곡물 자급률이 높아지고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획탐사팀

    2024-12-03 11:42:10

  •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공공 매입 아래 해마다 초과 생산…농업 경쟁력 제자리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공공 매입 아래 해마다 초과 생산…농업 경쟁력 제자리

    쌀은 식량 주권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다. 농민과 우리 쌀 보호를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다. 하지만 쌀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반면 양곡 정책과 시장구조, 품질은 제자리걸음이다. 갈수록 쌀 소비량은 떨어지는데 기계화된 생산 구조는 양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로 인해 쌀 품질 경쟁력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초과 생산 쌀을 정부가 매입하면서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고령화 문제까지 겹치면서 쌀 재배 기반이 허물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남아도는 쌀…수요감소와 초과 생산 22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서구 한 대형마트 입구. 채소‧과일과 떨어진 한 쪽에 쌀 판매대가 있었다. 한창 햅쌀이 나올 시기인데도 쌀을 사려는 손님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판매 직원이 손님에게 햅쌀을 권했지만 석 달 전 사둔 10㎏ 쌀도 아직 다 먹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 직원은 "대부분 5, 10㎏ 쌀이지 대용량은 잘 팔리지 않는다. 2인 가구가 5㎏ 쌀을 한 달 넘게 먹는다. 자취하는 사람들은 밥솥 없이 즉석밥을 먹기도 한다"고 했다. 대구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쌀 판매율은 큰 변동이 없었고, 올해는 4% 정도 감소했다. 식료품 50여 종 중 매출 규모로 쌀은 22위 정도로 비중이 적다. 우유나 돼지고기, 스낵 등 가공식품들이 상위권"이라고 설명했다. 대구 수성구의 김선우(가명‧47) 씨의 세 가족은 요즘 쌀 20kg 한 포대를 소화하는 데 50~60일이 걸린다. 이는 5년 전 대략 40일 만에 먹던 것보다 느려진 것이다. 김 씨는 "최근 들어 배달 앱을 통해 면 요리와 육류 등 쌀 이외에 다양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며 "아침을 빵이나 선식 등으로 가볍게 해결하고 저녁도 외식이나 간편한 음식을 선호하게 됐다. 밥 이외에도 배를 채울 음식이 너무 다양하다"고 말했다. 해마다 쌀 소비량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56.4㎏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쌀 소비량이 가장 많았던 1970년 136.4㎏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다. 1998년(99.2㎏) 100㎏ 아래로 떨어진 이후 줄곧 감소세를 이어왔다. 이는 식문화의 서구화, 외식·가공식품과 육류 소비의 증가 등의 요인에서 비롯된다. 세 끼를 먹던 식습관에서 아침을 거르거나 저녁을 간편식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달라진 가운데 쌀보다 면류나 빵, 육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3대(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육류 소비량 추정치는 60.6㎏으로, 같은 해 쌀 소비량(56.4㎏)을 웃돈다. 반면 생산량은 여전히 수요보다 넘쳐난다. 10년 단위로 보면, 특히 1990~2000년 사이 쌀 생산량이 5.7% 줄어든 가운데 소비량은 21.7%나 감소했다. 이후에도 2000~2010년과 2010~2020년 사이 쌀 소비량 감소율은 20~22%로 생산량 감소 폭(18%)보다 가팔랐다. 최근 농업은 90% 이상이 기계화돼 매년 일정량 이상의 생산이 유지하지만 쌀 소비는 감소하고 있어 남아도는 쌀을 사들이는 데 재정부담은 늘고 있다. 이에 정부는 1인당 쌀 소비량을 60㎏까지 끌어올리는 한편 재배면적 축소와 가공식품 활성, 다른 작물 재배유도 등 생산량을 조절해나갈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줄었다. 쌀 가공식품 개발과 전통주 쌀 제조 조세감면 등을 통한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공공 매입 제도의 명암 국가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생산 초과분 쌀을 매입한다. 국내 쌀 시장 안정과 농가 소득 보전, 식량 안보를 위해서다. 정부의 공공 매입에는 자연재해와 전시 등 비상 상황, 식량 위기 등에 대비한 '공공비축미곡'과 쌀값 안정을 위해 그해 초과 생산분을 사들여 일정 기간 시장에 내놓지 않는 '시장격리곡' 등이 있다. 이 같은 쌀 공공 매입에 들이는 예산은 매년 늘어 재정부담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예상 초과 생산량은 12만8천t보다 더 많은 20만t을 시장격리곡으로 사들였다. 또한 공공비축미곡 중간정산금(포대/40㎏당)도 기존 3만원에서 4만원으로 올렸다. 이와 함께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 유통업체에 벼 매입자금을 지난해보다 1천억원을 늘려 3조5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대책에도 지난달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지 쌀값이 80㎏에 18만2천9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산물벼(논에서 바로 수확한 상태의 벼) 8만t을 전량 인수하는 방안을 추가로 내놨다. 이를 통해 RPC가 민간 보유 벼를 추가로 매입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재정부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공공 매입 등 양곡 관리 적자분을 메우는 일반회계 전입금은 1조7천7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1조1천802억원보다 50%가량 늘어난 수치다.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공공 매입 비용은 2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도 쌀 생산량이 또다시 수요량을 초과하면 가격 안정을 위한 매입 비용까지 추가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쌀 농가의 소득 안정성이 보장되고 자급률을 유지하는 식량 안보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수급 조절 기능 약화로 초과 생산량의 발생과 재정 소요액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정부의 초과 생산분 의무매입이 이어지면 벼 재배면적 감소 폭이 둔화하면서 수요를 웃도는 과잉생산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시장격리곡 매입을 의무화하면 연평균 초과 생산량이 2024년 38만3천t에서 2030년 64만t으로 67.4%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의무매입 예산은 61.2%가 늘어난 것으로 전망했다. 정작 원산지 쌀값(80㎏)은 현재보다 낮은 17~18만 원 수준으로 예상돼, 쌀값 하락을 막는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의무매입은 공급과잉을 심화하고 쌀값 하락을 막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재정부담을 키우고, 쌀 이외의 농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다른 곡물로의 재배 전환을 제약하는 문제가 있다"라는 입장이다. 기획탐사팀

    2024-11-25 18:23:00

  •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한 해 쌀 비축 비용만 2조 원…재정 부담 완화‧식량 주권 '두 마리 토끼' 잡아야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한 해 쌀 비축 비용만 2조 원…재정 부담 완화‧식량 주권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한국 쌀이 천덕꾸러기가 됐다. 소비가 갈수록 줄면서 해마다 과잉 생산이 발생하고, 이에 공공 비축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식량 주권 차원에서 쌀 자급률 유지하려면 의무매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합리적인 재정 지출과 농민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해법 마련이 요구되는 것. 우리나라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 생산이 수요를 넘어서면 초과 물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한다. 이로 인해 지난해 쌀 공공 비축 비용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올해도 2조 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 비축 비용(일반회계 전입금)은 1조7천700억 원으로 공공 비축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최대치다. 일반회계 전입금은 정부가 농가 소득을 보전하고 식량 안보를 위해 쌀을 매입하는 데 사용하는 '양곡 관리 특별회계'의 적자를 메우기 위한 금액이다. 이처럼 매매 손실을 포함한 공공 비축 비용은 최근에 크게 늘었다. 2015년 일반회계 전입금이 5천968억7천만 원에서 2018년 1조2천962억7천만 원으로 처음 1조 원대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조7천7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예산안 기준)는 2조2천837억9천만 원으로 2조 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쌀 소비가 감소하면서 재정 지출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빚어지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쌀 생산량은 2020년 351만t에서 지난해 370만t으로 5.4%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57.7㎏에서 56.4㎏으로 2.3% 줄었다. 초과 생산으로 쌀값이 떨어지면서 농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산지 쌀값(매월 5일 기준)은 지난달 20㎏에 4만7천39원에서 이달 4만5천675원으로 3% 하락했다. 이달(15일) 기준 80㎏ 쌀값은 18만2천872원으로, 정부 목표인 20만 원에도 못 미쳤다. 여기에 양곡관리법 개정으로 의무매입이 이뤄진다면 재정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법 개정으로 2026년부터 초과 생산 규모가 48만t을 넘어설 것으로 분석했다. 2030년에는 남는 쌀이 64만1천t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매년 조 단위의 예산을 쌀 정책에 쏟아붓지만,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정 부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에 합리적인 재정 지출과 농민 보호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쌀 생산량도 정점에 와 있고 소비는 인구가 줄면서 더 감소할 것"이라며 "배 재배면적을 줄이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쌀 생산기반을 헤칠 수 있다. 다른 작물의 자급률을 높이는 등 미래 농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국내 곡물 생산 구조의 전환할 때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1-25 18:19:00

  •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양보다 질로, 기후변화 대응 새 품종 시급

    [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양보다 질로, 기후변화 대응 새 품종 시급

    지난 8일 오후 2시쯤 경북 의성군 비안면사무소 인근 창고 앞. 800㎏ 크기의 포대 10여 개가 나락으로 가득 채워진 채 도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병진(74) 의성군 진쌀단지 연합회 회장은 올해 생산량이 예년에 훨씬 못 미친다며 기후변화를 몸소 체험 중이라고 했다. 박 화장은 "4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올해만큼 생산량이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재난 수준의 더운 날이 길게 이어지고 비가 적게 와 벼멸구 같은 해충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상태로라면 내년도 수확량이 예년 수준을 회복할지도 미지수다. 쌀 재배의 최대 위기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3.2%가 감소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10% 이상 감소했다고 체감하고 있다. 이에 과잉생산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쌀 생산의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쌀 재배면적 감소에 초점을 맞추며, 품질 경쟁력은 뒷전에 밀려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초과 생산 매입으로 인해 농가는 질보다는 양에 초점이 맞추는 분위기다. 경북은 지난 30년간 '일품' 품종을 주로 재배해왔다. 일품은 즉석밥을 만드는 식품 대기업에 납품할 정도로 생산력이 인증된 품종이다. 다만 품질은 최근 개발된 품종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기후변화와 소비자 취향에 따라 양보다는 고품질의 쌀이 선호되면서 품종 다변화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 일품을 재배해온 농민들에겐 새 품종 교체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장낙원 의성군 영호진미 회장은 "과거 기후에는 일품이 맞았지만, 지금은 점점 기온이 올라가면서 병이 많아지는 등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우리 지역 기후에 맞고 바뀐 날씨에 강한 질 좋은 품종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1-25 17:27:00

  • [대구 교통오지] 소외되는 지역 없도록…촘촘한 교통 인프라 구축 방법은?

    [대구 교통오지] 소외되는 지역 없도록…촘촘한 교통 인프라 구축 방법은?

    교통은 세상과의 소통이다. 교통 인프라 구축은 고령층의 이동권 보장부터 고독사 방지와 의료 접근성 증진, 나아가 지역 균형 발전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달성군에서 운영하는 행복택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전문가들의 제안과 다른 지역 사례를 살펴봤다. ◆달성 행복택시, 교통오지와 도심 잇는 다리 될까? 지난달 28일 오전 9시쯤 대구 달성군 현풍읍 개인택시조합 달성군지소. 기사 7명이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이곳은 2018년 달성 행복택시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논공읍, 구지면, 현풍읍 지역을 담당한다. 처음 5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25명의 기사가 행복택시를 운행한다. 20분쯤 지나 김삼훈 달성지소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유가읍 초곡리에서 현풍 농협까지 운행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취재진은 조수석에 동행해 초곡리로 함께 향했다. 10여 분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보통 마을회관이나 마을 입구에서 승하차하지만, 간혹 집 앞까지 운행하기도 한다. 기사가 직접 짐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서비스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이날 행복택시를 탄 문양희(67) 씨는 "은행을 들렀다가 오는 길에 장도 볼 계획이다. 한 달에 10번 정도는 이용한다. 행복택시 없으면 버스도 못 타고 마을 밖을 나가지도 못한다. 내 시간에 맞춰 다닐 수 있고 무거운 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미터기에 6천500원이 찍혔다. 1천700원은 현금으로 받고 정해진 쿠폰에 이용자 서명을 받았다. 이를 모아서 월말에 달성군이 차액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달성군에 따르면 지난해는 5만8천751회 운행에 7만4천583명이 이용해 최고치를 찍었으며, 올해도 9월 기준 4만6천978회에 5만9천764명이 이용 중이다. 이용객은 시장과 병원, 읍사무소 등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오산1리의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매일 등‧하교를 위해 이용하기도 한다. 김 지소장은 "매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척보다 더 가까워졌다. 홀로 있는 주민들의 고독을 덜고, 학생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행복택시가 더 확대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처럼 이용객들의 만족도가 크지만, 운전기사에 대한 지원과 행복택시 대상지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 마련은 과제다. 인근에 버스정류장이 있다는 이유로 행복택시 대상에서 제외된 외딴 마을 주민들이 교통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서비스 확대를 위한 기사 확보도 숙제다. 2020년엔 33명 모집에 48명이 지원했다. 이후 점차 줄어들다 올해는 41명 모집에 37명이 지원, 결국 미달이 됐다. 김 지소장은 "교통사고와 법규 위반 내용, 달성군 지역 거주 이력 등을 고려해 행복택시 기사를 선정한다. 처음에는 경쟁이 심했지만, 최근에는 관심도가 조금 떨어지고 있다. 수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하빈면에 대상지를 확대할 때도 기사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택시 대기 장소와 사무실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DRT 이용 목적…도시는 '출퇴근', 농촌은 '병원 진료' 달성군을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들은 교통 소외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대중교통의 노선을 미리 정하지 않고 수요에 따라 운행 구간과 정류장 등을 탄력적으로 운행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대중교통 현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시군 161곳 가운데 50.3%(81곳)가 DRT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택시형'이 51.9%(42곳)로 가장 많고, 이어 택시+버스 혼합형 등을 포함한 '기타'가 29.6%(24곳), '버스형'이 18.5%(15곳) 순이었다. 보고서엔 지난 2~3월 이용자 1천93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DRT 이용자 만족도 조사 결과도 담겼다. 도시보다 농촌 지역 DRT 이용자들이 갖는 특성이 잘 나타났다. 이용 계기의 경우 도시형은 '원하는 곳에서 승하차 가능'을 가장 높은 순위로 선택했고, 농촌형은 '기존 이용 교통수단의 이용 불편'을 1순위로 꼽았다. 이용 목적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도시형은 '출퇴근'을 위해 이용한다고 밝힌 비율이 45.4%로 가장 높았고, 이어 '여가'(15.2%), '등하교'(10.1%) 순이었다. 반면, 농촌형에선 '병원 진료'(37.8%)가 1위를 차지했으며, '출퇴근'은 16.9%였다. 이어 '시장 보기'가 15.7%로 3위를 기록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도시형 응답자의 대부분이 20~50대 직장인이고, 농촌형은 이용자 대다수가 60대 이상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DRT 이용이 이동 시간을 단축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형 이용자의 평균 이동 소요 시간은 DRT 이용 전 32.3분에서 이용 후 18.9분으로 감소했다. 농촌형에서도 이용 전후로 평균 이동 소요 시간이 34.7분에서 21.6분으로 줄었다. ◆교통 소외 지역 누비는 DRT, 대구도 필요 대구시도 달성군(농촌형) 이외 지역에서 DRT를 운영하지만, 출퇴근과 관광 편의 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구혁신도시 내 의료R&D지구에 처음으로 도시형 DRT(4대)가 도입됐다. 이어 올해 8월부터는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5대)와 수성알파시티(2대)에 추가로 운행되고 있다. 직장인 출퇴근 편의 증진이 목적이라 평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지난달 26일엔 팔공산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한 관광형 DRT 차량(16인승 이하) 7대가 새로 도입됐다. 주말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만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교통 사각지대 해소 방안으로 교통복지 차원의 DTR 도입을 강조한다. 교통 소외지역 가운데 부지가 협소해 버스 진입과 회차가 어려운 곳이 많은 걸 고려해 기존 버스 노선을 확대하기보다 택시나 승합차 등 소형 차량 형태로 DRT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황정훈 미래도시교통연구원장은 "대중교통 관련 공공정책은 일정 수요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펼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정기적인 서비스에 한계가 있다면 행복택시, DRT 등 비정기적인 서비스 정책들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므로 교통 부서와 복지 부서가 협업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구‧군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떨어지는 마을을 지정하고, 정확한 교통 수요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주로 이용하는 시장과 병원 등을 고려해 지역(마을) 맞춤형으로 운행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구 내 교통 사각지대에 놓인 마을에 소형 차량 형태의 새로운 DRT 서비스가 도입해야 할 것"이라며 "기존 버스 노선으로 교통 수요가 충족되는 지역, 기존 나드리콜(교통약자 이동 서비스) 이용자 등과 중복되지 않게 대상 지역과 주민에 대한 세심한 기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 기획탐사팀

    2024-11-19 20:54:49

  • [대구 교통오지] '기다리는 버스'에서 '찾아가는 버스'로… 세종시 '두루타'

    [대구 교통오지] '기다리는 버스'에서 '찾아가는 버스'로… 세종시 '두루타'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 선진 사례로는 세종시의 '두루타'를 꼽을 수 있다. 읍면 지역 주민들의 교통복지 차원에서 도입된 DRT 버스다. 두루타는 주민들이 앱으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는 실시간 호출 방식이다. 일부 지역에선 고정된 노선과 정류장에서 정해진 시간표대로 운행하는 '노선형' 방식도 이뤄지고 있다. 세종시는 지난 2019년 12월 장군면에 두루타를 처음 도입했다. 올해 기준 9개 읍면 지역에 모두 33대의 중소형 버스가 운영 중이다. 연기면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읍면 지역에 도입된 것이다. 세종도시교통공사(세종교통공사)가 6개 지역을, 세종시 공모를 통해 선정된 민간 업체가 3개 지역을 각각 담당한다. 세종교통공사는 ERP(이용 건수, 이동 경로, 운전기사 등 운행 정보와 통계를 자동 조절하는 전산 시스템)를 포함한 DRT 시스템을 전국 최초로 개발해 지난 5월부터 운영 방식을 개선했다. 전화로 1시간 전에 예약하는 방식에서 이용자들이 앱에 출발지와 목적지, 인원 등을 입력하면 즉시 배차 가능 여부와 소요 시간 등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김선호 세종교통공사 교통운영2팀장은 "읍면 지역 버스정류장을 두루타 탑승 장소에 포함하는 등 이용 장소를 확대했다. 요청이 들어오는 즉시 빠르게 도착하도록 지역 곳곳에 차량 대기 장소를 분산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앱 사용이 어려운 노인들이 많은 것을 고려해 교육에도 힘썼다. 지난 7~10월 읍면 지역 마을회관을 방문해 DRT 앱 설치와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 덕분에 6개 지역 두루타 이용객은 지난해 6~9월 1만5천163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2만3천239명으로 1.5배 가까이 늘었다. 두루타 모바일 앱 사용률 또한 올해 5월 1.5%에서 9월 20.9%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도순구 세종교통공사 사장은 "현재 DRT가 도입되지 않은 연기면에 대해서도 그간 연기면의 교통카드 데이터를 분석해 이곳에 적합한 운영 방식과 차량 대수 등을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1-19 20:54:35

  • 농촌의 교통 사각지대…'외딴 섬'으로 남은 곳들[대구 교통오지](중)

    농촌의 교통 사각지대…'외딴 섬'으로 남은 곳들[대구 교통오지](중)

    대구 서남권의 달성군은 신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국가산업단지와 대규모 주거단지 등이 조성됐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마을들이 곳곳에 분포해있다. 이곳들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를 겪는 가운데 대중교통 서비스도 열악하다. 도심 속 외딴 섬처럼 고립돼 있다. 의료 접근성과 식료품 확보 등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오지 마을들을 찾아 주민들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장 보기가 '큰 모험', 교통사고 위험까지 "장을 보려면 전동휠체어를 타고 30분이니 걸려. 차가 씽씽 다니는 도로도 대여섯 번이나 건너야 해 요즘은 엄두도 못내." 지난달 22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2리에서 만난 박모(84) 씨와 김모(77) 씨, 두 어르신은 시내버스 이용이 불편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 마을 주민에게 외출은 큰 모험과 같다. 김 씨는 "나는 전동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지만 나이가 더 많은 노인은 버스 타러 나가지도 못한다"며 "그저께도 전동휠체어로 시장에 다녀오다가 큰 도로의 건널목에서 차와 아찔하게 마주쳤다. 너무 놀라 한동안 서 있었다"고 말했다. 쌍계2리는 테크노폴리스로 끝자락에 인접한 마을이다. 주민들이 도심으로 나가기 위해선 버스 한번 타기 어려운 달성군의 대표적인 교통오지 중 한 곳이다. 지난 2019년 농촌형 수요응답형택시 사업인 '달성 행복택시'가 도입됐지만 2021년 마을 입구 길 건너 급행 8번(-1)이 지나는 정류장이 생기면서 행복택시 대상지에서 제외됐다. 행복택시 대상지는 달성군 조례에 따라 시내버스가 운행되지 않거나 인접 시내버스 정류장과의 거리가 500m 이상인 교통취약지역 마을이다. 급행 8(-1)번이 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지만, 주민들에게 불편하다. 마을회관에서도 10분 넘게 걸어야 해서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조 이동 수단을 쓸 경우는 더 힘들다. 장을 보고 짐까지 있으면 더더욱 버스 이용은 무리다. 일반 택시를 부를 순 있지만 현풍시장 기준으로 왕복에 1만2천 원가량이 든다. 교통비치고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박 씨는 "현풍시장에 가려면 마을 앞 정류장(급행8번)이 아니라 700~800m 떨어진 다른 정류장(655번)을 이용해야 한다. 정류장까지 20분 이상 걸어야 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달성군 구지면의 오설리‧징리도 대표적인 교통오지다.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오설리의 경우 달성4번이 다녔지만 2017년 4월부터는 운행이 중지됐다. 대신 달성3번이 있지만 현풍 오일장이 열릴 때만 한시적으로 다닌다. 이곳 버스 정류장과 마을회관까지는 도보로 20분이 넘는다. 길도 차 두 대가 간신히 교행할 만큼 좁고, 경사도 심하고, 가로등도 없어 야간에 걷기 위험하다. 오설리 주민 백상국(68) 씨는 "어르신들이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정류장까지 걷기 힘들고, 가로등이 없어 밤에는 위험하다"며 "그나마 여기는 행복택시라도 들어오니 다행이다"고 말했다. ◆버스 놓치면 '4시간 대기', 옆 마을 가기도 힘들어 이달 6일 정오쯤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앞에는 현장 체험학습을 온 학생 20여 명이 이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자가용차를 이용했다. 학생들은 단체로 관광버스에 올랐다. 2시간여 동안 시내버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도동서원이 있는 도동1리는 달성3번이 현풍 오일장에만 운행한다. 버스가 없어 옆 마을인 도동2리까지는 걸어야 한다. 잡풀이 무성한 길을 30분 정도 이동하면 도동2리 마을 비석이 나온다. 차나 오토바이 등 개인 교통수단이 없으면 마을끼리 왕래가 어렵다. 성용수 도동2리 이장은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도동서원을 보러오는 외지인들도 버스가 없으니 불편해한다. 무엇보다 방문객 접근이 쉽지 않은 탓에 외부와 단절된 느낌이 크다"고 했다. 도동1‧2리는 그나마 행복택시가 들어온다. 반면 행복택시 대상지가 아닌 마을 주민의 교통 불편은 더 크다. 이달 4일 찾은 유가읍 본말2리는 달성군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있다. 경남 창녕군과 맞닿은 골짜기 마을이다. 마을 중턱에는 달성6번 종점이 있다. 매일 6회 운행하는 이 버스는 현풍 읍내까지 1시간 30분~2시간이 걸린다. 승용차 소요 시간(25분)보다 3~5배가 더 걸리는 셈이다. 본말2리 임모(85) 씨는 "시내버스는 출발 간격이 2시간이어서 한번 놓치면 외출을 포기해야 한다. 버스는 동네마다 다 들르기 때문에 장을 한번 보려면 온종일 걸린다. 읍내에 나갈 땐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배를 쫄쫄 굶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육신사와 사육신 기념관이 있는 하빈면 묘1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곳 주민들은 병원 진료 등을 위해 마을 나서는 것이 어렵다. 성서2번이 있지만, 배차간격이 짧게 1시간에서 길게 4시간까지로 길다. 묘1리 이모(79) 씨는 "버스가 제때 도착하지 못할 때는 날이 덥든 춥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오후에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까지 4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면 1만원이 넘는다. 최근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버스를 놓칠까 싶어 중간에 치료 끝내고 급하게 나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달성군 버스, "서문시장은커녕 관문시장도 한 번에 못 갈 것" 내년 2월로 예정된 대구시 시내버스 노선 개편을 앞두고 달성군의 대중교통 취약지 주민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시는 지난달 25일부터 달서구와 달성군을 시작으로 시내버스 노선 개편 설명회를 진행했다. 10년 만의 노선 개편을 앞두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앞서 대구시 조사에 따르면 옥포‧유가읍, 구지면 등 달성군의 교통취약지역 민원은 노선 신설‧변경, 배차간격 단축 순으로 요구가 높았다. 이번 개편안(달성군 관련)을 보면 국가산단과 동대구역을 잇는 직행2번 신설이 있지만, 테크노폴리스와 설화명곡역을 잇는 급행4번은 폐지될 예정이다. 아울러 급행2번과 240번, 304번, 449번 등 가창면 일부 구간의 축소 내용도 포함돼 있다. 특히 달성 2번의 경우 기존 대곡역~관문시장 구간이 폐지되고, 성서2번도 하빈면‧다사읍에서 서문시장으로 갈 수 있는 구간이 없어지는 안이 제시됐다. 이에 대해 주민설명회에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특히 교통 복지가 아닌 수요에만 집중한 노선 감축에 대한 불만들이 이어졌다. 논공읍 노이리에서 대표로 참석한 한 주민은 "농촌지역은 대부분 노인이 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다. 고령자들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교통 이용할 수밖에 없다. 버스 이용 수요만 보기보다는 교통복지 차원에서 약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성군의회에서도 농촌지역 교통복지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도원 달성군의원은 "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학생이나 교통약자들이다. 600번의 경우 서문시장까지 갔다가 관문시장까지로 축소되더니 이젠 진천역에서 노선이 짤렸다"며 "교통약자들은 환승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은영 달성군의회 의장은 "달성군 주민들이 이용하는 노선이 축소되는 경향이 많다. 일부 신설 구간이 있지만 서부정류장 둥 도심과 이어지는 노선은 유지해야 한다. 수요만 보면 달성군은 버스 노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버스준공영제의 의미와 지역민 불편을 고려했으면 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2024-11-19 07:50:39

  • [대구 교통오지]

    [대구 교통오지] "병원·시장 가기 너무 힘들어" 고립된 마을 노인들

    "요즘 축제도 많던데…젊을 땐 바빠서 못 가고, 늙어선 걷기 힘들어 못 가네." 많은 노선버스가 있는 대도시 대구에도 숨은 '교통오지'가 있다. 그곳엔 어쩔 수 없이 장 보러 가는 걸 포기하거나, 병원 가는 날엔 하루 전체를 다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8일까지 대구의 동북권과 서남권에서 대중교통 여건이 열악한 마을 14곳을 방문했다. 교통 관련 기관의 연구에서 ▷시내버스 미운행지역 및 정류장 분포 ▷교통카드 이용현황 ▷노선당 평균 승객 등을 고려한 취약지들이다. 정류장이 거주지와 멀거나, 인구가 적고 도로가 협소한 경우가 많았다. ◆버스 없는 산골…외출은 '그림의 떡' 지난 5일 오후 1시 40분쯤 대구 동구 내동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내동은 크게 정류장과 가까운 '작은마을'과 내동경로당이 있는 '큰마을'로 나뉜다. '큰마을'은 정류장에서부터 좁은 농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날 취재진은 오후 1시 43분부터 정류장에서 걷기 시작해 2시 47분에 내동경로당 앞에 도착했다. 중간에 작은마을에 들른 시간을 제외하고, 젊은 성인 걸음으로 30분 넘게 걸렸다. 특히 경사가 가파르고, 인도가 따로 없는 차도로 걸어야 했다. 이렇다 보니 큰마을 주민들은 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병원 방문이 쉽지 않아 아찔한 상황도 발생한다. 19살에 시집온 이후로 계속 큰마을에서 생활하는 장재균(91) 씨는 "지난 6월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손과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고 어지러워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 119를 불렀는데 여기가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40분이 지난 뒤에 구급차가 도착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팡이 없으면 걷기도 힘들 만큼 몸이 안 좋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갈 엄두조차 못 낸다. 병원 갈 때 나드리콜(교통약자 이동 서비스)을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택시를 이용한다. 나드리콜은 1시간 30분 동안 도로에서 기다리는 등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이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홀로 사는 홍분이(94) 씨는 "나는 택시 부르는 방법을 몰라서 병원이 갈 때 이웃에게 부탁해 차를 얻어 탄다"며 "이웃에게 다른 일정이 있으면 지팡이 짚고 조심조심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이태희 내동경로당 회장은 "정류장까지 젊은 사람 걸음으로도 30분 넘게 걸리는데 노인들은 오죽하겠느냐"며 "하루 운영 횟수가 적어도 괜찮으니 여기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구청에도 몇 번이나 진정을 넣었으나 나아진 건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서만 40분 지난달 30일 동구5번을 타고 오후 1시 44분쯤 '율하천6교2'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목적지인 종점인 매여마을까지 한 정류장을 남기고 왕복 1차로를 걸었다. 완만했던 경사가 점점 급해졌다. 30분쯤 걸었을 땐 땀이 맺혔다. 오후 2시 41분쯤 종점 정류장에 도착했다. 중간 휴식 시간을 고려해 걷는 시간만 최소 40분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두 정류장 사이 거리가 너무 멀다고 입을 모았다. 매여마을 주민 이도연(78) 씨는 "반야월시장에서 직접 키운 채소를 팔려고 오일장이 설 때마다 동구5번을 탄다"며 "종점과 바로 직전 정류장 사이가 워낙 멀다 보니 그 사이에 있는 식당과 교회에 가고자 내려 달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지붕이 있는 정류장이 아니더라도 안내 표지만 설치해도 좋으니 두 정류장 사이에 버스 서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박우연 매남골식당 대표는 "여기는 대중교통으로 오기가 너무 불편해서 식당 직원 중 차가 없는 경우엔 내가 직접 승합차로 태워준다"고 한숨을 쉬었다. 버스정류장과 운영 횟수 확대에 앞서 도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장용 매여마을 통장은 "우선 인도와 자전거 전용 등 도로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아래 율하7교에서부터 마을까진 인도가 아예 없고, 시속 30㎞ 제한 구간임에도 빠르게 달리는 차와 자전거에 사람이 치이는 사고가 잦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전동스쿠터로 이동하다 도랑에 빠지는 등 사고도 자주 발생하는데, 최근에도 비슷한 사고가 두 차례나 있었고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시기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종점을 지나서도 마을이 지난달 28일 사과로 유명한 평광마을을 찾았다. 특히 '끝마을'로 불리는 평광2통 마을엔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 장군을 기리고 세워진 모영재가 있다. 팔공1번을 타고 종점인 평광종점 정류장에 내려 평광2통 마을까지 걸었다. 길은 차 한 대만 지나갈 만큼 비좁고, 보행로 구분이 없는 데다 경사까지 가팔랐다. 호우나 강풍으로 나무가 쓰러질 수도 있으니 통행자는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눈에 띄었다. 1시간이 걸려 끝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평광2통 주민들은 교통뿐만 아니라 경로당 이용 등 다방면으로 소외감을 느꼈다. 버스정류장을 비롯해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 시설들이 모두 평광1, 3통에 몰려 있어서다. 10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생활하는 윤복수(85) 씨는 "50대까지는 버스 타고 다녔지만, 나이를 더 먹고는 다리가 아파서 그러지 못한다. 경로당도 어쩌다 행사가 열릴 때나 차를 태워줘 다녀오지 평소엔 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병원이나 시장에 가려면 무조건 나드리콜을 부르는데, 여기는 눈이나 비가 오면 길이 미끄럽고 위험해 기사들도 오길 꺼린다. 그래서 겨울을 대비해 미리 약을 많이 타오곤 한다"고 말했다. 이곳 역시 열악한 도로 상황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영정 평광2통장은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지정됐음에도 도로와 산림 사이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지 않고, 배수로도 없어 비만 오면 물이 넘친다"며 "외지인이 차를 몰고 가다가 도랑이나 밭에 빠지는 사고도 자주 있어 도로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번화한 도심에 가려진 숨은 벽지 지난 6일 시내에서 급행3번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달려 대중금속공업고 건너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정류장 주변은 아파트 대단지, 대형 식당,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들어차 있어 번화했다. 목적지인 북구 읍내동 안양마을로 가려면 정류장에서 30분 이상 걸어야 한다. 고층 아파트 입구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안양마을까지 1㎞ 남았음을 알리는 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를 기점으로 길도 좁아지고, 산골 풍경이 펼쳐진다. 정류장에서 50분을 걸어 마을에 다다랐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길을 중심으로 양옆에 논과 밭이 펼쳐졌고, 집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마을 주민 송연실(74) 씨는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병원을 갈 수밖에 없는데,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데 너무 멀어서 도중에 여러 차례 쉬어야 한다. 대부분 환승해야 해 어디라도 다녀오려면 그날 하루를 다 써야 한다"며 "작은 마을버스라도 하루에 한두 차례 운영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은 부지가 협소해 버스 진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재현 읍내9통 통장은 "이 마을로 들어오려면 고층 아파트 옆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주정차한 차량이 많아 버스가 진입하기 어렵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개울이 있어서 차라리 복개 공사를 통해 도로를 넓혀 달라고 꾸준히 건의해왔지만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들에게 운전면허를 반납하라고 하지만, 정작 반납한 뒤 노인들의 이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기획탐사팀

    2024-11-11 19:41:09

  • [대구 교통오지] 빗속의 전동스쿠터…산골 박 씨 할아버지의 험난한 외출

    [대구 교통오지] 빗속의 전동스쿠터…산골 박 씨 할아버지의 험난한 외출

    "매일 저 먼 길을 이동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어김없이 대구 동구 신기동 안심공원을 찾은 박시원(가명·92) 씨. 친구의 감탄 섞인 한마디에 멋쩍게 웃고는, 늘 가던 나무 아래 벤치 옆으로 1인승 전동스쿠터를 몰았다. 박 씨는 동구의 작은 산골인 매여마을에서 혼자 산다. 이곳에 들어오는 버스는 동구5번 하나뿐으로, 배차간격은 1시간 15분. 마을 종점은 직전 정류장과 2.5㎞ 떨어질 정도로 외딴곳이다. 이마저도 몸이 불편한 박 씨에겐 무의미하다. 지난 8일과 지난달 18일 두 차례에 걸쳐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박 씨의 나들이에 동행했다. 시속 5~10㎞ 남짓한 전동스쿠터에 의지한 왕복 2~3시간의 험난한 외출이었다. 박 씨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보통 오전 7시 45분쯤 집을 나선다. 박 씨는 "아픈 다리 때문에 버스는 아예 타지 못하고,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따로 사는 아들이 시간을 내 도와준다"며 "그마저도 안 되면 택시를 타는데, 손을 흔들면 10대 중 1~2대꼴로 겨우 잡힌다. 내가 목발을 짚고 있어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팡이 두 개를 양손에 쥔 박 씨는 마당 한쪽 전동스쿠터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불편한 다리 탓에 집을 나서는 데만 5분이나 걸렸다. 박 씨의 전동스쿠터는 이내 차도를 달렸다. 도로 가장자리의 박 씨 옆을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차량 통행량이 많은 반야월시장 사거리에선 자동차들과 섞여 신호를 기다렸다. 박 씨의 느린 속도를 참지 못해 경적을 울리며 앞지르는 차들도 있었다. 그렇게 5.5㎞ 거리를 1시간 정도 달려 오전 9시쯤 안심공원에 도착했다. 박 씨는 벤치 옆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누구와 대화하지 않아도, 홀로 집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 상관이 없었다. 10시 30분이 되면 이른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향한다. 목발을 짚고 자리를 잡은 뒤 국수로 시장기를 달랬다. 남은 국물과 약을 함께 삼킨 그는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낸다. 보통은 오후 3시까지 공원에 머물지만, 지난달 18일엔 그럴 수 없었다. 비 예보가 있어서다. 박 씨는 평소보다 1시간 일찍 공원을 떠났다. 시장을 빠져나와 율하천에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굵어졌다. 하천 산책로 달릴 때쯤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전동스쿠터를 덮은 비닐이 비바람에 사정없이 날렸고, 뚫린 양옆으로 비가 들이쳐 바지가 다 젖었다. 빗속 경사진 도로를 지나온 박 씨. 얼굴을 찡그릴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일상다반사인 듯 덤덤했다. 비를 뚫고 1시간 만에 간신히 집에 도착, 힘겹게 양쪽 신발을 벗었다. 텅 빈 방 안의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박시원 씨는 "차가 쌩쌩 지나는 길을 전동스쿠터로 다니니 자식들도 걱정이 많다. 원래 천천히 속도를 내 왕복 4시간은 걸리는데, 날씨가 좋지 않을 땐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1-11 19:40:58

  • [기후변화 경고등] 이상고온‧병충해로 사라지는 숲, 재선충의 습격

    [기후변화 경고등] 이상고온‧병충해로 사라지는 숲, 재선충의 습격

    올해 여름은 역대급 무더위가 지역을 휩쓸었다. 이상기후의 여파가 산림을 위협하고 있다. 온난화로 매개충 활동 시기가 길어지면서 소나무재선충병이 급속도로 확산 중이다. 고온 스트레스로 말라 죽는 나무들도 줄을 잇고 있다. ◆말라 죽는 소나무들…대구‧경북 산림 황폐화 "현장에 오니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소나무가 말라 죽어 놀랐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성군 논공읍 5번 국도 인근 야산에서 만난 서준식 산림엔지니어링 대리는 이같이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서 대리는 달성군의 용역을 받아 죽은 소나무들을 찾아다녔다. 작업자들은 2인 1조로 직접 산속으로 걸었다. 이들은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고사목을 일일이 살폈다. 취재팀은 야산 입구에서 서 대리팀을 따라 출발했다. 안쪽으로 100m쯤 10여 분 이동하자 곧바로 붉게 말라 죽은 소나무들이 나타났다. 붉은 표시를 하고 둘레를 잰 다음 QR코드가 있는 띠지를 고사목에 둘렀다.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는 죽은 소나무에 알을 부화한다. 이 때문에 고사목은 모두 방제 대상이다. 산 군데군데 죽은 소나무 수십 그루가 눈에 띄었다. 이들 나무는 푸른 빛을 내는 주변 소나무와 달리 잎이 낙엽처럼 마르고 생기 갈색으로 바래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밑동만 남은 다른 소나무들도 보였다. 2인씩 나눠 하루 동안 살피는 나무는 평균 80~150그루 정도다. 지난 9월 중순부터 시작해 이날까지 달성군에서만 4천 그루 이상의 고사목을 발견했다. 죽은 소나무는 재선충 의심 및 방제 대상이어서 모두 확인해야 한다. 나무 크기와 피해 면적에 따라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산출해 방제 범위를 설계한다. 서 대리는 "산주나 인근 주민들도 날이 더워서 벌레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재선충병에 감염된 경우와 더불어 고온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목 졸리듯 바짝 말라 죽는 나무가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하반기에 일정을 당겼다. 9월 중순부터 시작해 이달 말까지 재선충 의심 고사목을 조사하고 있다. 죽은 나무들이 많아 예년보다는 좀 더 일찍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구를 비롯해 동해안 산림으로 가면 말라 죽은 소나무가 너무 많다고 방제 담당자들은 말했다. 방제 작업을 넘어서는 확산이어서 재선충 피해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기후변화로 창궐하는 산림 병충해 전국적으로 소나무재선충 피해가 확산하는 가운데 대구와 경북 지역의 피해가 특히 더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교(국민의힘) 의원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20~2024년 9월) 소나무재선충병 발생 현황에 따르면, 이 기간 감염 소나무는 모두 305만7천344그루로 집계됐다. 이중 경북이 123만7천495그루(40.5%)로 가장 많다. 대구는 11만4천233그루로 특별‧광역시 중에서 울산(26만7천697그루) 다음으로 많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지역의 확산세는 더욱 뚜렷하다. 특히 경북의 상황은 최악이다. 2002년 1천655그루의 피해가 처음 보고된 이후 2016년 38만 그루 이상 치솟았다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47만6천710그루로 역대 가장 큰 피해가 발생했다. 올해(9월 기준)는 39만8천915그루의 피해가 집계됐다. 잠재 감염 나무까지 더하면 피해는 70만 그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는 2005년 처음 150그루의 재선충 피해가 발생한 뒤 매년 피해가 이어져 왔으며, 2020~2023년 사이 3천258→3천136→1만1천729→5만2천171그루로 급증했다. 올해(9월 기준)는 4만3천939그루로 지난해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산림청은 소나무재선충 피해 정도를 '극심·심·중·경·경미' 5등급으로 나눈다. 올해의 경우 고사목 5만 그루 이상인 '극심 지역'에 경북의 포항과 경주, 안동이 포함됐다. 3만~5만 그루 미만인 '심 지역'에는 경북 구미가 지정됐다. 1만~3만 그루 미만의 '중 지역'에는 대구의 북구와 달성군, 경북의 영덕과 성주도 이름을 올렸다. 대구에선 달성군의 피해가 특히 심하고, 팔공산 방면으로도 고사목 피해가 번지고 있다. 천연기념물 1호인 동구의 '도동 측백나무 숲' 인근 지역과 달성군 매곡정수장과 도시철도 문양역 주변 야산은 곳곳에 말라 죽은 소나무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의 재선충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가 손꼽힌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등이 활동을 멈추는 시기다. 문제는 여름이 길어지면서 매개충 활동 시기가 덩달아 늘어났다는 것이다. 무더위 탓에 재선충의 활동성도 높아져 소나무가 더 빨리 말라 죽고, 마름병 등 다른 이유로 죽는 소나무도 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응용곤충학회지 등은 최근 연구자료에서 기온 상승에 따라 매개충이 점차 북상해 재선충병이 전국으로 퍼질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최원일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은 "재선충병 확산에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온이 상승한 영향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매개충은 변온동물이어서 기온이 올라갈수록 생리작용이 활발해진다. 이에 따라 기온 변화에 따른 매개충 활동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방제, 대책과 전략은?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하는 가운데 대구·경북에선 본격적인 방제 작업에 돌입했다. 산림청과 각 지자체들은 소나무 멸종을 막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구시는 이달부터 방제 활동 시작했다.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알을 낳고 부화하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집중적으로 방제 작업을 벌인다. 시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방제를 통해 6만7천300그루를 제거하고, 4만6천712그루에 예방주사를 놓았다. 드론을 활용한 '정밀 드론 방제'도 올해 135㏊ 진행했다. 예방주사나 드론 방제의 경우는 약품 효과의 지속 기간이 2~3년이어서 주기적인 관리 필요하다. 경북도는 항공‧지상 예찰을 마무리 짓고 내년 3월까지 지역별 맞춤형 방제 사업에 돌입한다. 지난 14일 지역협의회를 열어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대구 달성군과 경북 포항시 등 재선충 확산이 심한 지역의 경우 올해 초 산림청이 특별 방제 구역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이곳들은 인근의 나무들까지 제거하는 '모두 베기' 작업을 진행한다. 이후 대체 수종으로 편백 등을 새롭게 심는다. 대구·경북은 완전한 방제보다는 팔공산과 비슬산 등 주요 산림으로 번지는 것을 방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수종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 앞서 1905년 재선충이 처음 발생한 일본의 경우 완전한 방제는 사실상 실패했고, 현재는 편백이나 삼나무 등 다른 수종으로 전환하고 있다. 소나무는 '지켜야 할 곳'을 막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박상준 경북대 산림과학조경학부 교수는 "고사목을 잘라낸 뒤 방치하기보다 열병합발전소 등의 연료로 사용하거나 후처리를 통해 가구 제작 등에 활용해야 한다"며 "재선충 확산이 빨라짐에 따라 적극적인 방제와 수종 전환에 따른 전략적 숲 가꾸기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만표 대구시 산림녹지과장은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5년간 연료용 목재로 재선충 방제 나무를 열병합발전소에 공급하는 등 자원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방제를 안 하면 20~30년 내로 소나무는 멸종된다. 방제에 손을 놓을 수 없다. 피해확산 저지와 특별관리구역 설정, 첨단 장비 활용 등 다양한 방제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끝〉 기획탐사팀

    2024-10-20 18:38:00

  • [기후변화 경고등] 가을에도 대구경북 곳곳서 신음…산‧바다‧들 '온난화 직격탄'

    [기후변화 경고등] 가을에도 대구경북 곳곳서 신음…산‧바다‧들 '온난화 직격탄'

    대구경북 곳곳에서 기후변화의 경고음이 울린다. 올여름 역대급 무더위에 이어서 가을에도 온난화의 여파는 식지 않고 있다. 피해는 산과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농작물 수확과 해산물 어획이 감소하고, 산에선 들끓는 병충해로 나무들이 죽고 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지난 3~11일 지역의 이상기후 피해 현장들을 찾았다. 지난 9일 방문한 포항 구룡포수산업협동조합위판장. 5개 남짓한 가판대에서 중매인들이 제철을 맞은 홍게 판매에 한창이었고, 영업하지 않는 가판대들이 20개 가량 있었다. 대게·홍게 중매 경력 25년의 정원숙(54) 씨는 "홍게는 온도에 굉장히 민감한데, 잡은 홍게 10마리 중 7~8마리는 고수온으로 인해 죽는 탓에 신선한 활어 비율이 높지 않다"며 "살아있는 게들은 크기랑 수율에 따라 한 마리에 5천~3만원 정도 하는데, 죽은 게들은 가격이 50~60% 깎여 헐값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립수산과학원의 '한국 연안 수온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관측한 포항(월포) 연안의 수온은 24.8℃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온(23.8도)과 평년 수온(22.4도)보다 각각 1도, 2.4도 더 높았다. 대구 수성구 성동의 포도 직판장 일대. 부스 안에 우두커니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농민들 뒤편으로 포도 상자가 보였다. 노란빛 샤인머스캣과 연두색 거봉이 놓여 있다. 올해 무더위가 9월까지 이어진 데다 폭우 등 기상이변이 겹치며 지역 농가들이 작물 재배와 판매에 난항을 겪었다. 한평생 포도 농사를 지어온 A(70) 씨는 "사람도 견디기 힘든데 포도라고 오죽하겠느냐"며 "올해는 너무 더워 착색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날이 가물었던 적도 많아 포도알도 작은 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산에선 소나무재선충 피해가 역대급으로 진행 중이다. 지난 11일 찾은 대구 달성군 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 주변 산림은 말라 죽은 소나무들로 몸살을 앓았다. 도로를 따라 회색빛이나 붉게 변환 소나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같은 날 동구의 천연기념물 1호 도동 측백나무 숲 주변도 비슷했다. 마치 단풍이 든 것처럼 울긋불긋 고사한 소나무들이 즐비했다. 팔공산 자락 코앞까지 재선충병이 확산된 모습이었다. 경북 포항 천마산 인근 산림은 상황이 더 나빴다. 폭탄은 맞은 듯 죽은 소나무들이 보였다.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 산도 마찬가지였다. 포항 시내와 가까운 곳에서도 고사한 소나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포항과 경주 등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재선충병이 증가하자 경상북도는 방제작업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4일 도청에서 관련 기관 관계자 90여 명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임업진흥원은 최근 기후변화로 매개충 증식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등 재선충병 확산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포항시 녹지과 관계자는 "예년과 비교해 다섯 배 정도 재선충 감염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외곽뿐만 아니라 시내 쪽으로도 퍼지고 있어서 14일부터 방역 작업에 돌입했다. 피해확산 속도가 빨라 연중 방제를 할 수 있도록 예산 확충과 시기 연장을 정부와 도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0-16 18:37:00

  • [기후변화 경고등] 포항서

    [기후변화 경고등] 포항서 "문어 잡는 그물에 제주 자리돔이…오징어는 급감"

    지난 여름 극심한 폭염에 시달린 뒤 맞이한 초가을 9월에도 전례 없던 늦더위가 계속됐다. 바닷물도 식지 않아 동해의 오징어 어획량은 줄어드는 가운데 제주도에서 잡히던 돔이 점차 늘고 있다. 올해 겨울에는 한파 우려도 나오는 등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식지 않는 바다…포항에서 제주도 '자리돔, 붉바리'까지 지난 9일 오전 10시쯤 찾은 포항 남구 구룡포읍 구평포구. 부두 바닥엔 초록색 통발들이 쌓여 있었다. 등대와 방파제 근처 기다란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띄엄띄엄 보였다. 어업에 종사하며 낚시방을 함께 운영하는 조상옥 구평2리 이장은 "이르면 11월 중순부터 문어를 잡기 시작하는데, 점점 수온이 높아지는 탓에 포획하는 문어 양이 해마다 줄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고기가 잘 잡히지 않고, 올해는 날도 너무 더우니까 외지에서 낚시꾼도 감소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대신 3년 전부터 문어 통발에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자리돔이 2~5마리 정도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전남 고흥에서 많이 난다는 '붉바리'도 동네 어민들 사이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다들 처음 본 물고기라 이름도 겨우 알아냈다"고 말했다. 대형 오징어선들이 정박한 구룡포에서도 비슷한 하소연이 나왔다. 50년 넘는 세월을 오징어선에서 보낸 이형남(65) 씨는 "오징어가 3~4년 전의 절반도 잡히지 않는다"며 "한 번 바다로 나가는 데 기름값만 200만원이 드는 등 고정비용이 만만찮아 최소 1천 마리 이상은 잡아야 남는 게 있는데, 요즘은 300마리조차 못 잡을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바다 온도의 상승은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 특히 동해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지난달 국립수산과학원이 발간한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6년간(1968~2023년) 전 지구 표층 수온이 0.7℃ 오르는 동안, 우리나라는 1.44도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해역별로 보면 동해 1.90도, 서해 1.27도, 남해 1.15도씩 상승했다. 동해의 표층 수온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이에 따라 지역의 주요 어종도 급변하고 있다. 특히 동해 주요 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급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북의 오징어 생산량은 2000년대 연평균 7만7천421t에서 2010년대 4만9천64t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더욱 심각하다. 2020~2022년 사이 연간 오징어 생산량은 2만1천768→1만8천922→9천817t으로 빠르게 감소 중이고, 지난해 생산량은 2천709t에 그쳤다. 반면, 난류성 어종으로 분류되는 돔류 생산량은 서서히 늘고 있다. 경북의 돔류(참돔·자리돔·감성돔·돌돔·기타 돔류 합산)는 2000년대 연평균 35t에서 2010년대엔 48t으로 늘었다. 최근 4년간(2020~2023년) 생산량은 84t에 달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온 상승으로 기존 대표적인 대중성 어종인 살오징어, 멸치 등의 어획량은 감소하거나 정체된 반면, 난류성 어종들의 어획량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우리가 알던 가을 아냐…대구 초가을 9월 평균기온 100년 전보다 5도↑ 기상학에선 가을의 시작을 하루 평균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간 뒤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로 본다. 실제 9‧10월 중 가을을 가르는 기준인 '평균기온 20도 미만인 날'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을이 늦게 찾아오는 것이다. 기상청 자료를 바탕으로 대구의 9월 하루 평균기온을 분석했다. 1950년대(1951~1960년) 9월 중 20도 미만 일수는 평균은 13.4일이었다. 이는 1960~2010년대 사이 11.1→9.7→9.6→8.5→7.1→6.7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20년대에 들어선 더욱 심각하다. 2021년 9월 하루 평균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진 날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2022년은 7일, 2023년과 올해도 각각 2일에 그쳤다. 경북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포항의 1950년대 9월 20도 미만 일수는 11.6일이었으나, 1980년대(9.6일)부터 두 자릿수가 무너지더니 1990~2010년대 사이 7.7→6.8→4.5일로 가파르게 하락 중이다. 2021년과 지난해, 올해에는 20도 미만이 포항에서 단 하루도 없었다. 아울러 가을의 월 평균 기온 상승세는 뚜렷했다. 올해 대구 9월 평균기온은 25.4도를 기록했는데, 이는 1909년 이후 가장 높았던 지난해(23.5도)보다 1.9도나 상승한 것이다. 올해 9월 평균 최고기온 역시 30.4도를 기록하며, 29.4도였던 1994년을 넘어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가을 기상이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철 태풍보다 더 강한 '가을 태풍'의 발생 빈도가 늘고 있다. 보통 육지는 7~8월 온도가 가장 높지만, 해수 온도는 바닷물 특성상 9월에 정점을 찍는데,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태풍의 '먹이'인 수증기도 증가해 태풍이 강해지는 것이다. 기상청의 태풍 발생 통계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2019~2023년) 한해 발생 태풍 중 가을철(9~11월) 비율이 2022년(52.0%), 2020년(56.5%), 2019년(55.2%) 모두 절반을 넘었다. 가을 태풍 비율이 50%를 넘은 건 1951년 이래로 18번뿐인데, 이 중 5분의 1이 최근 5년 안에 발생한 셈이다. ◆강한 여름 다음 '강한 겨울'…올해는 한파 우려도 이례적인 가을 더위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라니냐'를 지목한다. 라니냐는 동태평양과 중앙태평양 바닷물 온도가 낮은 상태로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으로, 라니냐일 땐 우리나라에선 여름 더위가 심하고 오래 가며, 가을은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공학과 교수는 "올해 상반기 엘리뇨(적도 부근 동태평양과 중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높은 상태로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가 끝나고 여름부터 라니냐로 옮겨가면서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오래 유지됨에 따라 더위가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해수 온도 상승에 대해선 "온실가스가 증가해서 지구의 잉여열이 만들어지고, 그 잉여열의 90%가 바다로 흡수되면서 바다에 열이 엄청나게 많아지기 때문"이라며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니 육지까지 더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고수온은 위력이 강한 가을 태풍 발생의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다가오는 겨울도 걱정이다. 라니냐 시기엔 시베리아 찬 공기가 동아시아로 강하게 들어오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 폭설과 극심한 한파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구경북기상청의 중장기 예보에 따르면, 오는 12월 지역의 평균기온은 평년(1991~2020년)인 0.5~1.7도보다 낮거나 비슷할 전망이다. 차가운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하락 폭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안현진 대구경북기상청 기후서비스과 주무관은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는 사흘간 춥다가 나흘 동안은 약간 회복돼 따뜻한 '삼한사온'으로 대변되는데, 2022년 겨울엔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추운 날씨가 2주 넘게 지속됐다. 반대로 지난해엔 남풍이 자주 들어와 비가 많이 오고, 비교적 따뜻한 겨울 날씨를 보이는 등 근래 겨울철 기온 변동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는 12월부터 찬 대륙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질 때가 있고, 기온은 평년보다 대체로 낮을 것으로 전망돼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와 어린이에게 취약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2024-10-16 17:48:00

  • 동티모르 소녀들의 손글씨, '한글 폰트'로 탄생하다

    동티모르 소녀들의 손글씨, '한글 폰트'로 탄생하다

    한글날을 맞아 지역 복지기관과 폰트회사의 합작으로 동티모르 학생들의 손글씨를 바탕으로 한 한글 폰트가 제작돼 화제가 되고 있다. 사단법인 가정복지회 글로벌은 지역 폰트회사인 다온폰트와 함께 동티모르의 고등학생 올림피아(2학년)와 제파니아(1학년)의 손글씨로 '바뚜보루 희망체와 미래체'를 개발해 오는 9일 한글날에 맞춰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라고 7일 밝혔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동남쪽으로 1천200㎞ 떨어진 곳에 있는 동티모르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imor-Leste)은 우리나라 강원도만 한 크기의 작은 섬나라로, 인도네시아의 오랜 지배 끝에 2002년 독립한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이자 60년 전 우리나라를 연상케 할 정도의 최빈국이다. 두 학생이 거주하는 에스더 비전 센터(이하 '센터')는 동티모르 산골 마을 소녀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들이 센터에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지난 2011년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 세워졌다. 현재 대학생 6명, 고등학생 3명, 중학생 2명 등 11명의 학생이 생활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런 동티모르 안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는 산골 마을인 '바뚜보루 와우뿌'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산 아래 있는 학교에 다니려면 왕복 4시간 이상 걸려, 대부분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에 가정복지회와 메트로안과, 그리고 현지 법인인 아가파오 재단은 지난 2020년 2월 와우뿌 마을 내 2천800㎡ 부지에 교무실 1개, 교실 2개, 주방 1개, 화장실 2개 규모로 '바뚜보루 와우뿌 메트로초등학교'를 건립했다. 현재 44명이 재학 중이다. 황석현 다온폰트 대표는 지난해 8월 가정복지회 관계자와 매일신문 취재진이 메트로초를 방문해 교육 봉사를 실시(매일신문 2023년 9월 14일 보도)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아이들의 서체로 폰트를 제작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후 가정복지회와 이대훈 선교사의 협력을 통해 지난 1월부터 메트로초 학생 및 센터에 거주 중인 학생들에게서 서체를 받고, 이 가운데 폰트 개발에 가장 적합한 올림피아와 제파니아 학생의 서체를 선정해 각각 '바뚜보루 희망체'와 '바뚜보루 미래체' 폰트로 제작했다. 센터 설립자이자 동티모르에서 21년째 봉사활을 하는 이대훈(61) 선교사는 "두 아이 모두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로, 계속 공부해서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가거나 일하길 바라는 코리아 드림을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뚜보루 희망체와 미래체'는 고등학교에서 공부 중인 올림피아와 제파니아처럼 메트로초 학생들 또한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탄생했다. 폰트는 오는 9일 출시될 예정이며, 가정복지회 홈페이지(https://www.fwa.or.kr)를 통해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변상길 사단법인 가정복지회 글로벌 이사장은 "바뚜보루 희망체와 미래체를 통해 열악한 환경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바뚜보루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건립, 스쿨버스 운영 등 여러 사업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2024-10-08 14:38:51

  • [그린벨트의 명암] 다시 불붙은 GB개발…대체지 실효성 확· 녹지 훼손 부작용 최소화

    [그린벨트의 명암] 다시 불붙은 GB개발…대체지 실효성 확· 녹지 훼손 부작용 최소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개발을 둘러싼 관심이 올해 들어 다시 커지고 있다. 정부가 20년 만에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고 밝혀서다. 비수도권의 경우 해제 가능 총량과 무관하게 그린벨트를 풀 수 있고, 필요에 따라 1‧2등급지의 해제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환경 보존과 더불어 대체지 마련의 낮은 실효성 등은 여전히 풀어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급격한 땅값 상승 등 해제 이후 벌어질 문제들에 대한 대책도 요구된다. ◆'1, 2등급 대체지' 실효성 낮아…"요건 완화 필요" 정부가 올해 발표한 그린벨트 규제 완화방안에서 '대체지 확보'에 대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완화방안에 따르면 그린벨트 해제를 위해선 지역 전략사업 지정과 함께 해제될 구역과 동일 면적의 대체지 제시가 필수 요건이다. 특히 환경평가 1·2등급지의 대체지를 지정해야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구권 그린벨트의 경우 전체 면적 515㎢ 중 87%가 1‧2등급지에 해당한다. 울산·창원·대전권 등도 1‧2등급지가 78~88%에 이른다. 결국 비수도권 지자체 대부분이 그린벨트 해제 개발 시 대체지를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대체지 선정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체지 선정 자체가 어려워 아예 신규 개발 사업 계획을 철회하는 등 제도 개선의 의미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구시 관계자는 "1‧2등급지 해제 후 대체지를 찾아 그린벨트로 지정하려면 사실상 사유지에는 불가능하다. 결국 국·공유지에 신규로 지정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가능한 대체지가 있을지는 미지수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영·호남 8개 시도지사는 지난 7월 그린벨트 지역전략사업 대체지 지정 요건의 완화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린벨트 개선 연구를 진행 중인 국토연구원에선 지자체들 의견을 수합하고 있다. 국토연구원 관계자는 "대체지 지정과 관련해 지자체마다 설명회를 열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정부에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번 제도 개선에서 대체지 확보가 중요한 조건인 만큼 완전히 제외할 수는 없다. 대체지 인정 범위를 조율해나가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천시장 등 향후 개발…"환경등급 재조정 요청" 지자체가 보유한 해제 가능 총량 역시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제 가능 총량은 2008년 설정된 이후 지금까지 변동 없이 유지 중인 가운데, 총량을 거의 다 사용한 지자체가 있는가 하면 아직 절반도 소화하지 못한 곳들도 있다. 해제 가능 총량은 2004~2007년 '2020년 광역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권역별로 부여됐다. 2009~2012년 광역도시계획 변경으로 기존 총량의 10~30% 정도 추가 배정됐다. 전국 총량은 531.6㎢로, 이중 대구권은 40.9㎢를 부여받았다. 국토교통부와 대구시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2021년 기준 대구권은 25.9㎢(63%)를 소진해 약 15㎢의 해제 가능 총량을 남겨두고 있다. 부산권은 80.5㎢ 중 64.4㎢(79.9%)를 이미 사용했다. 이어 수도권은 79.3%, 광주권은 70.7% 순으로 해제 가능 총량을 개발했다. 대구시는 우선 해제 가능 총량과 상관없는 지역전략사업으로 '대구매천농산물도매시장 이전지'를 신청했다. 다만 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인 K-2와 제2작전사령부 등 군부대 이전과 관련해서는 아직 지역전략사업으로 신청하지 않았다. 해당 사업에 대해선 보유한 해제 가능 총량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대구시의 입장이다. 대구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농수산물도매시장 이전지는 달성군 하빈지역 27만㎡ 부지로, 지역전략사업으로 정부에 신청했다"며 "대구는 약 15㎢의 해제 가능 총량이 있다. 군부대 부지 개발 등과 관련해 6.8㎢의 부지가 필요한데 해제 가능 총량으로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구는 산지가 많고 그린벨트 내 1‧2등급지 비중이 87%나 될 정도로 넓다. 전국적으로 총량을 계속 늘려주는 것보다 환경등급을 지자체 상황에 맞춰 재조정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2040 도시계획 수립 중…"환경훼손 최소화" 그린벨트 해제·개발계획은 광역도시계획과 도시기본계획안에 담긴다. 대구시는 현재 '2040대구도시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그린벨트 규제 완화 등 달라진 제도에 발맞춘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다. 그린벨트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개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과의 균형을 찾으면서 제도적 허점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난개발을 막고 환경 훼손을 줄이는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한국환경연구원은 2021년 '개발제한구역 해제 문제점 분석 및 개선방안'을 통해 개발사업 입지 선정에 대한 기준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지자체마다 해제 가능 총량을 사용해 그린벨트를 무분별하게 개발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린벨트 환상형(둥근 고리 모양으로 연결되는 형태) 녹지 축 단절, 팽창으로 인한 도시연담화(다른 행정구역과 맞닿는 것)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환경성과 경제성을 사전에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앞서 지난해 8월 국토연구원은 국민 2천 명과 도시계획·환경 분야 전문가 100명, 권역별 개발제한구역 담당 부서 팀장급 이상 공무원 55명을 대상으로 그린벨트 관련 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에선 응답자 중 72%가 그린벨트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60% 이상이 공공의 목적에 의한 제한적 개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기후 위기가 심각한 현재 이를 방어하는 하나의 전선이 그린벨트다"며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한 규제 완화에는 개발 사업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탄소배출 등 생태적인 관점의 조사나 연구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환경보전에 끼칠 영향에 대한 생태학적 조사도 우선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2024-10-07 18:43:00

  • [그린벨트의 명암] 해외 GB제도의 어제와 오늘…원조는 영국, 프랑스‧스페인‧미국 도입

    [그린벨트의 명암] 해외 GB제도의 어제와 오늘…원조는 영국, 프랑스‧스페인‧미국 도입

    도시의 무분별한 팽창을 억제하고 자연녹지 공간 보존을 위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제도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토연구원 등에 따르면 그린벨트 제도를 처음 도입한 영국을 필두로 한국과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20여 개국에서 그린벨트나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다. 영국은 1950년대 런던 주변에 그린벨트 지정을 시작한 이래 국토 면적의 약 13%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린벨트 내 주요 토지 대부분이 국가 소유다. 영국은 개발 제한권을 정부가 갖는 대신 3억 파운드(약 80조 원)을 들여 보상했다. 영국에선 최근 그린벨트 해제 논란이 떠오르고 있다. 올해 정권을 잡은 노동당은 부동산 공급 부족을 해결하고자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할 방침이다. 다만 보전 가치가 떨어지는 '그레이벨트(회색지대)'를 활용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프랑스는 1970년대 일드프랑스 레지옹을 대상으로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했다. 1983년부터 그린벨트 확대를 위해 사유지를 매입해 산림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7년에는 녹지생성계획을 수립, 주민들에게 녹색공간을 제공한다. 스페인도 대도시권의 녹지공간을 확보하고자 2001년부터 아넬라 베르다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국립공원축을 행성해 자연을 보호‧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일부 주에서 농업전용지역을 만드는 등 그린벨트와 유사한 방식의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도 메릴랜드, 위스콘신주, 오하이오주 등에서는 그린벨트, 그린힐 등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그린벨트 제도가 없다. 일본은 2차 대전 이후 기존 시가지의 무질서한 개발을 억제하고자 근교지대와 시가화 조정구역을 설정했지만, 지주들의 반발로 현재는 사실상 없어진 제도가 됐다. 기획탐사팀

    2024-10-07 18: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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