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9일 오후 6시(한국시간)쯤 발표된다.
올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정확히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거론되는 이름 가운데 하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자신이 여러 국제분쟁 해결에 기여했다며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캄보디아·이스라엘·파키스탄 등의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추천했거나 추천 의사를 밝힌 사실도 알려졌다. 이번엔 과연?
다만 노벨위원회는 후보 명단을 50년 동안 공개하지 않는다. 올해 접수된 후보는 개인과 단체를 합쳐 287건이며 이 가운데 79건이 단체다. 따라서 외부에 알려진 '후보'는 추천권자가 스스로 공개한 경우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공식일 수 있는 비공식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후보가 등장했다. '대한민국 시민들'이다.
◆트럼프만 있는 게 아니다…'대한민국 시민 전체'도 후보로 추천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주변에 모여 군 병력의 진입을 막고 이후 비폭력적 집회를 통해 민주주의 회복에 참여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등 국내외 정치학자들은 올해 1월 '대한민국 시민 집단'(Citizen Collective)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추천한 것.
추천자들은 계엄이라는 헌정 위기를 대규모 유혈 충돌 없이 시민 행동과 헌법·법률 절차를 통해 극복한 점을 국제적인 비폭력 민주주의 사례로 평가했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계엄 1주년 담화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만약 이런 형태의 집단이 실제 수상자가 된다면 노벨평화상의 범위가 한 명의 정치지도자나 특정 시민단체에서 한 국가의 시민 집단 전체를 상징하는 수준으로 넓어지는 매우 드문 장면이 된다. 특히 특정 시민단체나 조직이 아니라 헌정 위기 당시 행동한 대한민국 시민 전체를 수상 주체로 인정하는 방식이라면 노벨평화상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한 집단 수상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시민이 받는다면? DJ 이후 다시 쓰는 '한국의 평화상'
한국인의 첫 노벨평화상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노벨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의 한국과 동아시아 민주주의·인권을 위한 활동, 특히 북한과의 평화·화해 노력을 수상 이유로 제시했다. 그해 6월에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남북 화해 분위기가 절정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가 계속 평화의 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북핵 문제가 다시 악화됐고 남북관계는 여러 차례 단절과 충돌을 반복했다. 더구나 올해 노벨평화상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DMZ 지뢰 사고를 둘러싼 남북 긴장이 다시 부각됐다. 26년 전 김대중 대통령에게 평화상을 안겼던 '남북 화해'라는 과제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교롭게 다시 보여주는 장면이 됐다.
물론 그렇다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이 의미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오랜 활동 자체가 중요한 수상 이유였고, 남북정상회담 역시 한국 현대사에 남은 사건이다.
다만 노벨평화상이 이후의 평화까지 보증해주는 상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아라파트·라빈·페레스도 함께 받았지만…'수상 이후'가 더 어려웠다
더 극적인 사례는 중동에 있다. 1994년 노벨평화상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에게 공동 수여됐다. 세 사람은 오슬로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려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선택이 중동에서 전쟁과 증오를 평화와 협력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라빈 총리는 이듬해 암살됐고 오슬로 평화 프로세스는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분쟁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김대중 대통령 수상 이후의 남북관계와도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평화를 향한 역사적 합의나 정상 간 결단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큼 큰 의미를 가질 수는 있지만, 그 순간의 성과가 이후 수십 년의 평화를 자동으로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노벨평화상이 평화를 만들어낸다기보다, 평화를 향해 막 시작된 정치적 선택에 힘을 실어주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취임 8개월 만에 받은 오바마…'선지급 평화상' 논란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수상은 또 다른 유형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한 지 8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국제외교와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한 노력,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비전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실제로 이룬 성과보다 앞으로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먼저 보상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실은 노벨위원회 설명에도 그런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표하는 국제정책과 태도를 "장려하려 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벨평화상이 과거의 업적만 평가하는 상이 아니라 미래의 행동을 촉진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인에서 시민 전체까지…노벨평화상이 선택하는 '평화의 주체'
최근 수상자들을 보면 평화상의 주인공이 반드시 국가 정상이나 유명 정치인일 필요도 없다. 2020년에는 세계식량계획(WFP), 2022년에는 인권운동가 알레스 비알리아츠키와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 우크라이나 시민자유센터가 공동 수상했다. 2024년에는 일본 원폭 피해자 단체 니혼히단쿄가 수상했다.
노벨평화상 역사 전체에서도 1901년부터 2025년까지 112명의 개인과 31개의 단체가 수상자로 기록됐다. 개인의 영웅적 행동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집단적 행동을 평화의 주체로 인정해온 셈이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올해 공개적으로 추천 사실이 알려진 '대한민국 시민 집단'은 상당히 독특한 후보군이다. 특정 단체의 회원이 아니라 헌정 위기 당시 행동한 시민 전체를 하나의 집단적 주체로 묶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은 때로는 이미 완성된 평화에 주는 훈장이라기보다, 세계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기를 바라는지를 보여주는 메시지에 가깝다. 다른 노벨상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받는다면 국제분쟁을 중재하려는 정치적 노력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대한민국 시민 집단이 받는다면 헌정 위기를 비폭력적 시민 행동과 제도로 극복한 방식에 세계가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이 될 것이다.
누가 받든 노벨평화상이 말하는 것은 "이미 충분히 잘했다"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더 잘해보라"는 주문에 가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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